2016년 삼가동 용인신문사 사옥(현재) 2022년 제68회 경기도체육대회 2022 용인 2012년 용인포은아트홀 개관식 2014년 용인마라톤대회 2014년 용인경전철 수도권 환승할인 기념식 2013년 용인경전철 개통식 2005년 용인행정타운시대 개막 1996년 용인시승격 현판식 1998년 용인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 1982년 용인군청사 준공식(현 처인구청사) 1992년 창간시기 개발광풍 문제점 진단 1995년 지방선거 민선군수 부활 기쁨 함께 이듬해 인구 25만명 도시 성장 ‘시 승격’ 창간 10돌, 난개발 후폭풍 속 대안 제시 2014년 3월24일 지령 1000호 발행 ‘금자탑’ 창간 30돌 동안 ‘지역문화 살리기’ 앞장 용인신문을 통해 본 ‘용인 30년’ [용인신문] 용인신문은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용인의 역사를 기록해오며 풀뿌리 언론의 사명을 다해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30년의 세월은 한 세대를 넘어서 역사가 바뀔 만큼의 긴 세월이었습니다. 용인군 시절부터 시로 승격되고 다시 특례시로 지정되기까지 용인신문이 직필정론(直筆正論)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애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변함없는 성원 덕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창간 30주년을 맞
1992 - 2022 [용인신문] 30년 전 용인신문은 「향토문화창달」·「지역발전선도」·「왜곡보도불식」이라는 창간 이념을 공표했습니다. 제호는 변경했으나 창간 이념은 단 한 번도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봐도 창간 이념이야말로 지역 언론의 의미와 가치를 가장 충실히 대변해온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는 1988년 언론자유화와 1991년 7월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시작됐습니다. 용인신문은 관선 군수 시절이었던 1992년 『주간 성산신문』이라는 제호로 창간되었습니다. 이후 『용인연합신문』을 거쳐 서른 살의 청년 『용인신문』이 되었습니다. 30년이면 전국 지역신문 역사에서도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필자 나이 서른 전부터 카메라를 메고 용인의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매주 마감 때만 되면 밤을 새워가며 원고지에 기사를 쓰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벌써 세 번이나 변했으니 미디어 환경은 또 얼마나 급변했겠습니까? 종이신문의 위기라는 말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미디어의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어 교란 수준을 뛰어넘는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습니다. 30년 전 기대했던 미디어의 순
[용인신문] 지금 일반 국민은 최악의 민생고에 시달리고 있다. 나라 경제는 물론 용인시의 지역경제도 IMF 경제위기에 버금가는 분위기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보다 훨씬 심각하다. 용인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그동안 경제 사정이 조금은 나은 편이었다. 필자는 용인신문 기자와 발행인으로 30년간 지역경제를 취재해왔다. 경제가 어려웠던 적은 수없이 많지만 지금처럼 대책없이 어려웠던 적은 처음 겪는다. 환율은 곧 1달러에 1500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해 보이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대출자들은 고율의 금리에 짓눌리고 있다. 이렇게 민생이 도탄 지경에 빠졌는데도 정치권은 사정 정국을 둘러싼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원내 다수당이 불참했다. 이러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80분간 생중계되는 가운데 민생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공허했다. 당장 야당의 협조도 끌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수십 번 ‘대책회의’를 해도 그 대책은 법률로 제정되어 시행되지 못한다. 윤 대통령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때다. ‘재닛 옐런’ 미 연방정부 재무장관은 ‘IRA(인플레 감축법)’ 시행은 최
[용인신문] 용인 처인구 운학동(집)에서 출발해 마평동~김량장동~삼가동(용인신문사) 구간이 기자의 출퇴근 코스다. 출근길은 13~14km(시내 구간은 우회도로 선택 가능)로 승용차의 경우 20~25분이 소요된다. 퇴근길 소요시간도 비슷하다. 기자 입장에서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한산하다. 하지만 같은 시간, 반대 차선으로 출퇴근하는 운전자들은 교통지옥을 체험한다. 바로 마평동~운학동~원삼면으로 이어지는 국지도 57호선은 인도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다. 출근 시간대인 오전 7~9시 전후까지 마평동에서 원삼면으로 가는 57호선 수 킬로미터 구간은 정체와 서행을 거듭한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역광 방향이라 운전자들의 눈살까지 찌푸리게 한다. 과거 같으면 명절 전후나 황금연휴에나 보았던 풍경이지만, 몇 년 전부터는 매일 아침저녁 연출되고 있다. 만성적으로 정체와 서행을 거듭하는 출퇴근길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이들 차량은 원삼면이나 백암면 외에도 인접 지역인 일죽, 장호원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은 특히 대형화물차들의 통행량이 급증하는 추세다. 운학동 구간에는 예비군 훈련장 1곳과 신병 교육대 1곳이 있어서 입소 시간과 맞물리면 정체가 더 심각해진다. 오죽하면 교통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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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농촌의 들녘이 수확 시기를 맞아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벼수확에 나선 콤바인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일 드론으로 본 용인 처인구 원삼면 사암저수지 일원의 들녘 풍경이다. 머지 않아 인근 지역에 SK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점점 사라질 위기에 처한 농촌 풍경이기에 더욱 정겹고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글: 김종경 발행인/ 사진: 김성덕 본지 객원 사진기자>
[용인신문] 용인의 문화 정체성은 무엇일까? 용인특례시 원년을 맞아 법정 문화도시 지정을 위해 내세웠던 비전은 ‘사람·자연·일상이 어우러진 문화공생도시’였다. 문화도시 비전의 핵심 키워드가 ‘도심 숲과 공원’이었던 셈이다. 궁극적으로는 도심 숲과 공원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자연과 문화가 공생하는 도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용인시에 있는 도심 숲과 공원들을 보면서 용인의 대표적 문화콘텐츠라고 여길 만한 시민들이 얼마나 있을지, 또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용인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시민 여론조사 결과 가장 높게 나온 컨셉을 선정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정작 중요한 설문의 목적과 조사방법이 얼마나 세밀하고 타당했느냐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반 시민여론도 중요하지만, 도농복합시인 도시 특성을 고려한다면 유구한 용인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 도심 숲과 공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용인시의 문화 정체성을 대표하려면 공원 역시 고유한 역사성과 탁월한 독창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무런 역사성과 독창성이 없는 공원을 용인 문화도시 비전으로 확대시킨 것은 무리한 비약으로밖에 볼 수
[용인신문] 조선 세종 시대에 강희맹(姜希孟)이란 문신이 있었다. 이 사람은 중국의 대 문장가 정치가 문필가에 비유되면서 당시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던 희대의 인물이다. 이분은 벼슬아치의 경우 대개 세 종류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대저, 벼슬살이에 3품(三品)이 있으니, 내 한 몸의 진퇴를 세상 형편에 따라 가벼이도 하고 무겁게도 하는 사람은 상품(上品)이요, 도덕은 비록 성현(聖賢)에는 미흡하나 문무(文武)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어짊을 감추지 않고 절개를 지켜서 굽히지 않는 사람은 그다음(中品)이며, 공손하고 근검하며 스스로를 재고 날마다 받을 것이나 계산하는 자는 벼슬살이로서 하치(下品)에 속하는 것이다.』< 해동잡록 권2> 이상의 기준으로서 1, 2품에 비견될 만한 역사적 인물을 찾는다면, 고려 말의 포은 정몽주, 조선시대의 세종대왕, 맹사성, 이순신, 다산 정약용, 안중근 급의 위인이라면 무탈할 것 같다. 이외에 다수의 인물이 있겠지만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이나 관료사회에서는 하품에 드는 정도만 하더라도 양반 소리 들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영도하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지도자로 추앙을 받을 만한 위정자가
[용인신문] 민선 8기 임기 초 골든타임의 중요성에 대해 지난 호 칼럼에 썼다. 이번엔 용인신문을 통해 지속해서 보도해온 지역 현안 몇 가지를 되짚어본다. 1982년 용인군청사로 개청한 현재의 처인구청. 2006년 안전진단 D등급, 공공청사 사용 불가 판정. 하지만 16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설물 보강 예산 30억 원을 투입한 후 운영 중이다.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해서 돌아나가는 민원인이 부지기수다. 민선 시장 후보마다 신축 또는 이전을 단골 공약 메뉴로 발표하는 문화재급 공공청사다. 용인 육군항공대, 일명 포곡항공대 이전문제가 불거진 건 20년 전. 포곡읍 전대리 일대 30만㎡(10만여 평) 부지에 47년째 주둔 중으로 부대 반경 4㎞ 내 지역은 군사시설보호법 적용 구역이다. 국내 최대 위락시설인 에버랜드가 옆이지만, 관광객 낙수 효과가 거의 없다. 2001년부터 이전을 요구하는 시민청원이 시작됐다. 2015년 용인시와 국방부가 ‘기부 대 양여사업’ 협의를 진행했지만, 민선 7기 들어 중단됐다. 이 문제도 역대 국회의원과 시장 후보들의 선거 공약 1순위였다. 대표적 선심성 행정은 ‘공원일몰제’다. 2019년, 당시 백군기 시장은 2025년까지 실효를 앞둔 장
[용인신문] 수원중앙침례교회(원로목사 김장환, 담임목사 고명진)는 수원시 교동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성전 건축을 결정했다. 2022년 9월 25일 오후 5시, 교동 성전 현장에서는 수원시 국회의원인 김영진, 박광원, 김승원, 백혜련 의원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등이 참석해 테이프 커팅 및 기공시삽과 함께 기공 감사예배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고명진 담임목사는 신명기 12장 11절-14절 성경 말씀을 본문으로 “성전 건축은 축제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짓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서로 권면하고 열심히 섬기는 것은 바로 기쁨이자 축제라고 했다. 또한, 고 목사는 교동 성전 이 자리에서 70여 년이 넘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중앙교회가 더욱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함께하는 중앙교회가 되기 위해서 그 사명을 담당하고자 한다고 했다. 중앙교회가 있는 한 수원에서 다시는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없게끔 하나님의 복음전파와 성경 말씀대로 과부, 장애인, 고아, 등등 사회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욱 다가가고 함께하는 교회가 이 성전을 통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고 했다. 이어서, 중앙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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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마트료시카 이설야 나는 몇 개의 거울을 들고서 달렸다 똑같은 것들이 슬퍼보였다 죽은 지 오래된 얼굴들은 더 안쪽 깊은 곳에 있다. 이설야는 196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산문학대상, 박영은 작품상을 받았다.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의 나무로 깎은 인형인데 인형 속에 인형이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러시아 여행객은 이 목각인형을 하나씩은 사가지고 귀국 한다. 이설야의 서정적 자아가 마트로시카에 투영된 시로 분열된 자아가 있음을 고백 한다. 똑 같아서 슬퍼 보이는 인형은 곧 그녀 자신이다. 죽은 자들을 모두 기억 한다. 기억의 깊은 곳에 있는 죽은 자는 오래 전에 죽은 자이다. 창비 간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