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용인댁은 국악계에서 내게 붙여준 닉네임이다.
오래전 용인에 입성하려면 나를 거쳐야 한다(?)는 재미난 얘기들을 하곤 했다.
1960~80년대 국가 인간문화재인 선친 덕분에 인간문화재, 국악과교수, 저명인사들이 우리집 왕래가 많아 최고의 눈호강, 귀호강을 하며 살았었던 나는 용인에 처음와서 참으로 놀랐다. 평소 선친에게 들었던 민속촌이 있는 도시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척박한 문화예술 황무지였다.
민속촌 자문관계로 선친은 보성제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정권진 명창등과 신갈에 거처를 두고 수시로 용인을 다니셨고 나중에 용인으로 가자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1998년 용인예술단을 창단했을 당시 용인 최초의 전문 국악단으로 이슈가 되었고 곧 시립국악단이 탄생할 줄 착각했다. 용인의 문화 예술인들은 참으로 인내심 많고 무던한 것 같다.
그들의 노력으로 꾸준히 달려왔고 문화재단이 생겨 용인시 전반에 걸친 문화 향유 수준은 향상되었으나 실제 예술인들에겐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진 못한 것 같다.
2001년 녹야 국악단을 창단하고 용인시의 지원을 받아 매년 정기공연을 하며 국악 전문 단체로서 품격 있는 국악 관현악, 창극, 실내악, 가야금 앙상블 등의 멋진 연주로 성황을 이뤘다.
그 사이 녹야도 녹야 김윤덕 명인 기념사업회라는 큰옷을 입고 국악계에서 일가를 이루시고 큰 획을 그리신 녹야 선생님의 음악적 업적과 음악정신을 잘 보존하고 계승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평택의 지영희홀, 산청의 박헌봉 기념관, 칠곡에 향사 박귀희 기념관에 이어 용인에 녹야 김윤덕 기념관이 생긴다면 글로벌한 동북아 거점으로 보았을 때 참으로 용인의 문화 컨텐츠의 위상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용인시는 108만이 넘는 도시로 곧 경기도에서 가장 큰 시가 되리라 예상된다.
용인에서 녹야 김윤덕 명인을 조명하는 세미나와 명인의 국보급 유품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뜻있는 한 기업체가 녹야 기념관 부지를 기부하겠다고 공식 발표를 한 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가끔 문득 나는 뼛속까지 용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용인으로 왔고 아이들이 3~4세부터 자라나 30세가 넘어 용인에 터를 잡아 3대째 국악 새싹들을 키우고 있고 내 부모님도 용인에 유택을 두셨으니 그럴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진정한 용인댁으로 용인시 문화예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익을 담당하여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전 세계인이 용인으로 몰려와 예술로 하나가 되는 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