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추석이 지났다.
어스름이 일찍 내려앉기 시작했다.
탄천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느덧 횟수로 3년.
늦은 나이에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용인으로 이사를 왔다.
7년 전.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5년이라는 시간을 병과 싸워야 했다. 다행히 약으로 치료되었지만, 약의 부작용은 사람(여자)으로서 견디기 힘든 심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얼굴은 호빵맨이 되었고, 머리카락은 다 끊어졌다. 건강과 함께 나의 40대가 사라졌다.
나의 배움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가을 단풍이 예쁘게 내리는 날.
딸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탄천 걸어 볼까, 엄마.”
밖의 공기는 시원했다. 천천히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탄천 변으로 내려가는 길의 벚나무에서 단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붉은 노을과 함께하는 용인의 탄천은 장관을 연출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고, 매미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하천에는 물고기들이 가득했고 유유히 걷고 있는 왜가리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산들바람에 갈대와 억새풀이 하늘거리고, 창포, 애기부들, 줄 등 수생식물이 즐비했다. 탄천 변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도 곳곳에 피어 있었다. 메뚜기, 무당벌레, 방아깨비가 노닐고, 키 작은 나뭇잎이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드는 본격적인 가을이 탄천의 문을 두드렸다.
버드나무 아래 흔들 그네에 앉았다.
베타-엔도르핀, 때문일까?
가을의 따스한 햇살과 산들바람,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음악도 듣고 싶어졌다. 숨어 있던 나의 감성이,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이 길에서 탄천의 자연은 여유로웠다. 정리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곰곰 생각했다.
탄천은 여백이구나. 생명이 만들어 내는 가득 찬 여백.
그날, 내가 살아나고 있었다. 내 안의 욕망 DNA가 다시 꿈틀거림을 느꼈다.
건강을 찾은 지금 나는 걷고 또 걷는다.
탄천의 생명은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이곳을 걷는 나는 재밌다. 희열도 느낀다. 하고 싶다는 열정과 욕망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동화에 대한 열정도 솟구친다.
탄천의 생명이 만들고 있는 여백 속에 내가 있다.
삶의 여백을 주는 곳, 여기 용인의 탄천을 동화 속에 담으려 한다.
나는 그곳을 향해 매일 걷는다.
안수연(010 2841 4533),yasi4971@naver.com 동화작가. 문학박사. 스토리텔링 연구자. 매체비평가로 활동. 2011년 아동문학평론 동화부문 「무지개 구슬」신인상. 2012년 제5회 「괴물 난동 사건의 진실」로 웅진문학상 단편 동화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모험을 끝내는 법』,「괴물 난동사건의 진실」(The Truth Behind the Revolt of the Monsters)은 영어로 번역. 2017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7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마음나라 외계인』이 선정되어 출간.
2019년 애니메이션 영화 초기 기획지원사업『괴물난동사건의 진실 - 검은구름의 습격) 선정.
「무지개 구슬」,「안녕, 명탐정」, 「꼬마정령과 외뿔이」, 「달기」, 등 많은 동화를 발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