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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 명배우 열전

무성영화 황금기 개척한 위대한 아티스트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

 

 

[용인신문] 20세기를 대표하는 명감독, 명배우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찰리 채플린(1889~1977)이다. 찰리 채플린은 무려 75년간이나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무성영화 시대의 찰리 채플린은 1919년 메리 픽퍼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D.W. 그리피스와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설립하여 자신의 영화를 제작·배급할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최초의 장편영화인 키드(1921)를 시작으로 파리의 여인(1923), 황금광 시대(1925), 서커스(1928)를 발표하고 1926년 유성영화 시대가 개막되자 이를 혐오하여 무성영화를 고수했다.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스(1936)는 무성영화로 유성영화를 압도한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특히 모던 타임스는 자본주의 대량생산 체제가 갖춰지면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신세를 풍자하여 발표된 지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불멸의 걸작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모던 타임스를 발표하면서 찰리 채플린은 자본가들이 기피하는 영화인 제1호가 되었고 FBI의 감시대상에 올랐다. 모던 타임스 이후 찰리 채플린은 정치적인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여 1940년 아돌프 히틀러를 풍자한 ‘위대한 독재자’를 발표하여 선풍적인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위대한 독재자를 기획하고 촬영에 들어가자 정부의 제작 중단 압력을 받았는데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그러나 FBI는 찰리 채플린을 공산주의자로 의심했고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동부전선을 맡아 유럽전쟁의 90%를 담당했던 소비에트연방을 돕자는 연설을 하면서 동무(Comrad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여 빨갱이로 몰리게 되었다.

 

당시 미국을 강타한 매카시즘의 광풍은 위대한 천재를 빨갱이 사냥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1952년 ‘라임라이트’의 홍보차 런던을 방문한 그에게 미국 정부는 재입국 금지 명령을 내려 추방했다. 찰리 채플린은 유럽으로 거점을 옮겨 1972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때까지 미국 땅을 밟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