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간염백신과 세계최초 완전액상 5가 혼합백신 완제의약품 수출 1위를 기록한 자랑스런 기업 베르나바이오텍 코리아(대표이사 안상점·이하 베르나). 세계적인 생명공학 전문기업 크루셀(Crucell, 네덜란드) 그룹의 일원인 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주)는 지난해 1월 2일 안상점 사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한 후 수출 1000억 돌파의 신화를 목표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3대 B형 간염 백신의 생산 기업인 베르나는 지난 2000년부터 용인시 기흥구에 회사를 설립 한 후 지난 7년 간 무려 1680억원 규모의 금액을 지속적으로 투자, B형 간염백신과 세계최초 완전액상 5가 혼합백신을 완제의약품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세계 의약품 시장이 유럽과 미국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을 감안 할 때 한국 기업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베르나는 B형 간염백신 헤파박스 진(Hepavax-Gene�)으로 2002년에 산업자원부가 주최한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에는 혼합백신 퀸박셈(Quinvaxem)으로 두 개의 세계일류상품을 보유하는 쾌거를 거둔 바 있다. 베르나의 퀸박샘은 세계최초이며 세계 유일의 완전액상
“용인시의 모든 어머니들이 예절 선생님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취직도 잘되고…. 그러면 용인시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있습니다”. 20여년을 예절 강사로 일해 온 윤귀래(65) 선생의 말이다. 기본적인 예절을 갖춘 사람이 성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윤 선생은 “요즘 아이들에게 하루에 인사를 몇 번하는지 물어보면 2번 정도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어머니, 아버지께 문안인사를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학원에서도 인사를 해야 하고 하루에 12번을 해도 모자라는 것이 인산데…” 그는 이어 “인사를 잘하면 인사가 잘 풀린다”는 뼈 있는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예절교육관에서는 특히 아이들의 예절교육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더불어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어머니들의 예절교육에도 만전을 기한다. 아이들이 올바른 예절을 배우려면 어머니들이 먼저 예의바른 행동을 보여야 자연스럽게 예절을 익힌다는 것이 윤 선생의 지론이다. 그동안 용인시예절교육관에서는 초·중·고등학생부터 유치원 아이들 또한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고려한 예절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다. 방학을 맞이한 초
“언어가 다르면 문화도 달라집니다. 생활 속 모든 것에 자막을 넣어 주세요” “농아인들은 영화를 보거나 TV를 봐도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며 수화를 통해 말하는 경기도농아인협회 용인시지부 이영식 지부장(이하 농아인협회). 농아인협회에서는 4명의 수화통역사를 두고 수화통역센터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2000여명이 넘는 농아인들을 대변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언어가 틀리면 문화도 틀리 듯 비장애인들과의 쉽지 않은 의사소통으로 이들은 하루하루 눈코뜰새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닌다. 수화 통역사 박영복(33·여)씨는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과의 대화도 직장 상사와의 대화도 불가능한 농아인들이 용인장날 같은 경우에 이곳으로 찾아와 통역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용인시의 사정상 농아인들의 복지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50~60대 농아인들은 수화를 배울 방법이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나마 인터넷, 핸드폰, 영상전화 등 의사전달 수단과 교통의 발달로 서울이나 수원 농아인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그저 손짓, 몸짓, 표정 이외에 자신을 표현 할 방법이 없었다. 농아인협회에는 지금도 수화를 배우지 못
노인들의 권익신장과 복지 증진, 다양한 봉사활동 등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사)대한노인회 용인시 처인구지회의 류강희(74) 지회장. 류 지회장은 지금처럼 경제 강대국이 되기까지는 젊은 시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어르신들이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이라고 강조한다. 류 옹은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 배골아 가면서 열심히 일한 것이 지금 처럼 우리나라가 잘 살수 있는 바탕이었다”며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것을 잊지 말고 노인들을 공경하고 배워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예절교육이나 인성 교육 등은 인생 경험이 많은 노인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류 옹은 “삐르게 고령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노인들이 설 자리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방법을 노인들 스스로가 찾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인구 노인회에는 6월 30일 현재 65세 이상 노인 1만7555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활동하고 있다.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에게 충효예절 및 한문교육을 실시하고 처인구 곳곳을 돌며 길거리 청소에도 솔선수범한다. 특히 노인회에서는 노인취업
‘24시간 내내 불이 밝혀져 있는 곳. 24시간 내내 출동 준비 태세가 완비된 곳.’ 한국전력공사 용인지점(지점장 이유호) 설비관리팀 배전운영실. 이들은 1년 365일 불꺼지지 않는 용인을 위해 항상 초긴장 상태로 근무중이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배전선로 계통도와 사고지점을 확인 할 수 있는 단말기들은 배전운영실의 분위기를 단번에 대변해준다. 대화 도중 울리는 경보음. 사무실 근무자들이 단말기 앞으로 뛰어간다. 사고는 아니었다. 누군가 배전판문을 열어서 울리는 소리였다. 사고도 아닌, 작은 움직임까지도 감지하는 위기 관리 시스템은 전기와 관련해서는 안심해도 된다는 믿음을 준다. “전기와 관련된 사고, 정전, 고장 등... 신고하세요. 전화는 전국 국번 없이 123번입니다.” 전기에 이상이 생기면 배전운영실에서 감지해 쏜살같이 바깥 현장 패트롤 팀에 연락해 모든 사고는 20분 내에 마무리한다. 이들의 출동은 24시간 대기상태에서 선로에 이상이 생기면 출동하는 자체출동과 123번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신고출동 등 크게 두 가지. 신속한 정전복구를 위해 패트롤 팀을 용인시 3개구에 나누어 배치해 긴급 출동을 가능하게 한다. 사고
용인교회에 권영호(56) 담임목사가 새로 취임했다. 올해로 102년 된 용인교회에 새로 취임한 권 목사는 17년 전 이미 용인교회에서 전도사, 준목, 부목사를 했던 인연이 있다. 용인교회는 그가 3년간 있으면서 목사 안수를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향 같은 용인교회에 다시 목사로 취임한 권 목사. 그는 용인교회 성도들의 간절한 바램으로 한달 전 다시 이곳을 찾았다. “목사님이 오셔야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청빙하는 간절한 요구에 권 목사가 힘든 결심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불과 한달 전 까지 미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교 교수 및 대학원장으로 재직중이었으며, 미국 소재 교회의 담임 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교 교직원이나 교회 성도들이 나를 떠나보낼 때 다들 울었어요. 오랜 세월동안 정들이 듬뿍 들었었지요.” 그렇지만 그는 과감히 용인교회를 선택했다. “17년전 좋은 기억이 있었거든요. 하나님이 부르시니까 거부할 수 없었어요. 사랑하는 용인교회 교우들에게 은총이 단비처럼 내리길 바라고 있어요.” 원래 권 목사는 서울대 사범대 과학교육학과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 이화여고 교직생활 중 교재를
항아리에서 보글보글대는 숙성의 시간이 곧 인생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와 함께 하며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탁주 또는 탁배기로도 불리는 막걸리. 막걸리에는 이름도 많다. 희다해서 백주, 탁해서 탁주, 가가호호 담가 먹지 않는 집이 없어서 가주, 농사 지을 때 새참이라 해서 농주, 제사지낼 때 제상에 올린다 해서 제주, 백성이 가장 많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고 해서 향주,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고 해서 국주. 용인시를 대표하는 막걸리는 백암양조장을 비롯, 원삼양조장, 지난 2002년에 도시계획에 밀려난 역삼동 용인주조와 합쳐진 포곡읍 금어리 용인합동양조장, 수지합동양조장 등 4개의 양조장이 용인의 막걸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충원(79)옹과 아들인 김용진(50)씨가 25년째 제조하고 있는 원삼막걸리는 매니아층까지 생길 정도로 용인의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 막걸리와 함께 한 37년 인생 과천에서 태어난 김충원(79)옹은 1929년생이다. 군대를 다녀와서 정미소와 목장일을 근 30년간 돌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막걸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1년, 용인시 남사면에서 남사양조장을 형(고 김용희)과 함께 운영하면서이다.
삭발한 바람이 불고 산사(山寺)는 동안거에 들었는지 조용하다. 갓 산문(山門)에 들었을까 바깥 세상에 두고 온 이름을 떠올리는지 젊은 스님 걸어온 길을 접으며 속세에서부터 동행했을 흰 눈을 털고 있다. 모든 것을 털어 낸 나무들, 몸속에 질긴 몇 겹의 적막을 심고 있다. 이제 말들이 빠져나간 몸은 적멸에 든다. 얼마나 더 깊이 가라앉아야 침전에 이를 수 있을까 무형의 몸만 더듬다 풀어버리는 어깨 위로 딱! 얹혔던 졸음이 가늠조차 어려운 저 아래로 떨어지고 관절은 누구도 믿지 않을 사리 같은 응고의 말씀을 키우고 있다. 세상의 기별은 은둔의 주소지를 잘도 찾아든다. 그저, 몇 통의 번뇌를 던져놓고 절 아래로 사라지면 기억의 밖으로 눈을 쓸며 길을 열어 가는 저 마음 돌아보면 쓸려나간 자리마다 잔설이 또 그만큼 화두같이 덮이고 있다. 그새 눈은 깊어져 함부로 찍어놓은 어리석음 걷으며 산을 내려오는 길 길 잃은 몇이 바랑을 싸는지 말씀의 끝자락이 보일 듯 말 듯 눈에 덥혀가고 있다.
“삼도통제사를 지낸 이수민 할아버지가 나라로 부터 사패지를 하사받은 곳이 이동면 묵리”라고 말하는 청해이씨 송계공파 총무 이주용씨는 양지바른 묵리의 산 아래를 가리키며 “저기가 살던 곳”이라고 손짓한다. 지금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어 을씨년스러워 보이기만 한 곳이다. 이문주, 이수민, 이효강의 묘소는 맞은 편 산의 꼭대기에 모셔져 있다. “저희 청해이씨 송계공파, 청해이씨는 희한한 풍습아닌 풍습이 있어요. 바로 대부분의 청해이씨 선조들이 지금은 당연한 얘기지만 후실을 들이지 않는 다는 것이죠. 곧 일부일처제를 고집한다는 것이죠. 왕족을 비롯한 다른 양반들이 많게는 10명이 넘는 후실들을 두기도 했지만 저희는 100%는 아니더라고 대부분 일부일처로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족보를 보면 종중끼리 양자를 들인 일들이 다른 종중보다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한명의 부인만을 둔 이유는 가족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후손들이 많이 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용인에 거주하는 인원은 아이들까지 합쳐서 200여 명 남짓 될 것입니다” 가정을 중시하는 일부일처제의 전통은 가훈에서도 드러난다. 바로 충청효근(忠
청해이씨는 조선개국 공신 이지란의 후손들 청해이씨는 조선 개국시 태조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이 된 청해백(靑海伯) 이지란(李之蘭)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청해백 이지란은 본래 여진족(女眞族)으로, 툰두란으로 불렸다. 그의 아버지 아라부카[阿羅不花]는 여진(女眞)의 금패천호(金牌千戶)였다. 툰두란도 아버지에 이어 천호가 되었다. 원(元)나라 말기, 고려 공민왕 때 많은 부하를 이끌고 귀화하여 북청(北靑)에 거주하였다. 툰두란은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많은 공을 세웠으며, 특히 조선개국의 일등공신으로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이씨(李氏) 성을 하사 받았는가 하면, 이름도 지란(之蘭)으로 호칭하였다. 조선개국공신 1등급으로 책록된 작호(爵號)도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다. 청해는 북청의 다른 이름이다. 지란의 아들 화영(和英)은 세종 때 우군부판사(右軍府判事)에 이르렀고, 9세손 인기(麟奇)는 선조∼인조대에 벼슬하여 중추부동지사에 이르렀다. 이밖에 인기의 아들 중로(重老), 중추부첨지사 핵의 아들 유민(裕民),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수민(壽民) 등이 많은 공적을 세워 유명하다. 청해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이눌린’ 성분 다량 함유…당뇨 식품 많은 관심 이른 봄철 뒷동산에 올라 너른 대지를 보자면 어김없이 올해도 그 너른 땅이 흙먼지 안개에 휩싸여 대지를 뿌옇게 흐려 놓는 것을 체감 하셨을 것입니다. 심할 때는 입안에 모래 알갱이가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것 같은 중국의 황사 모래 바람. 참 계절도 잘 찾아 꼭 우리에게 오지요. 우리에게 엄청 난 피해를 주고 있답니다. 중국의 서쪽 지방이 차차 황폐화 되어 사막이 넓어 져 가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중국의 수도 북경 근처까지 거의 다 와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도에서 본 곳 같은데. 21C 중국이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는 첨단 과학 시대에 살면서 모래 바람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것 입니다. 사람이 어찌 자연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 중국 사막엔 뚱딴지를 심는다 독자 여러분 엉뚱한 뚱딴지같은 말을 해 올리겠습니다. 이 자연을 대항하는 야생초를 자랑하려 합니다. 야생화로 그 모래바람을 잠재 울 것 입니다. 다시는 모래 바람이 일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 뚱딴지같은 저의 말이 너무 황당 하사다구요. 함은요, 너무 비현실적이구 황당하다 못해 거짓말 같지요. 허나 현실이고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이후 가족여행지로 부상 움치려들기 쉬운 겨울,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며 나를 깨우는 여행을 떠나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도 좋고,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색다른 맛과 기대로 더욱 좋을것이다. 서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마량포구를 품고 있는 충남 서천은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찾는 이들의 발길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바다와 산과 강이 어울린 풍광이 뛰어난 고장이다. * 마량포구의 해돋이와 황홀한 낙조 서해안 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을 나와 우선 찾아볼곳은 서면에 위치한 마량포구이다. 해돋이 하면 동해나 정동진등을 연상 하지만, 이곳 서해의 작은포구 마량에서 맞는 일출의 정경은 신비감을 넘어 경이로움 자체이다. 리아스식 해안구조와 지구의 공·자전 현상에 의하여 11월 하순부터 2월중순까지 마량리의 동남향방향에서 떠오르는 황홀한 해돋이와 함께, 같은 장소에서 낙조까지도 감상할수 있어 일석이조의 감동을 안겨준다. 일출과 일몰 감상 장소는 마량포구 를 거처 돌출된 방파제 주변이다. 포구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해안 드라이브코스나 정박된 어선, 뱃고동소리,갈매기떼,활력넘치는 어시장의 정경 등 하나하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