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 이전 1980년대 중국과 소통 창구
안금환 이사장 난 사랑 아시아서 인정
용인 본부. . . 중국 . 일본 . 대만에 지부
“중국이 한국을 한국이라 못 부르고 남조선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전이지요. 그 당시 일본과 대만, 중국을 오가며 난 수출입상으로 각국의 난 문화를 전했습니다. 수교전이라 홍콩에서 기차를 이용해야만 중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수출이었습니다. 어쩌면 최초로 시작된 중국과의 문화수교라 할 수 있지요. 당시 중국은 난을 국가 자원으로 취급했습니다.”
처인구 낙은로 94-5(역북동 245-9)에는 (재)국제난문화재단이란 작은 문패와 함께 안금환 이사장이 하우스로 온실을 꾸미고 상업용이 아닌 작품용 난을 키우고 있다.
난을 사랑했던 안 이사장은 1980년대 말부터 외국을 드나들며 난 수출입상이란 직업으로 외국인들과 무역을 성사시켰고 그런 안 이사장을 아직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던 중국의 경우 한국과의 대화 창구로 삼을 정도였다.
필요한 일이 있어 중국에서 안 이사장을 초청이라도 하려면 방문비용 일체를 부담하면서라도 모시다시피 하는 초청 형식을 취했다. 당시 아직 수교 전이라 나라와 나라간 소통 창구가 없었기에 안 이사장을 이용한 결과다. 아마 1992년 한국과 중국 수교의 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중국에서 ‘남조선 안금환 선생’에게 전하는 감사패를 전달한 것만 봐도 그들의 안 이사장에 대한 생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활발한 교류로 각국의 난 마니아들과 친분을 유지하다보니 거금의 자비를 들여 (재)국제난문화재단을 설립하게 됐고 일본, 중국, 대만 등에 지부를 설치하게 됐다.
안 이사장은 “(재)국제난문화재단은 일본, 중국, 대만에 지부들이 있고 한국에 본부가 있는, 한국에서는 유일한 국제단체”라며 “그런 국제단체가 특별히 용인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점차 세계가 한 가족처럼 가까워지는 현실을 적용해 용인을 부각시키는데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현재 서양난은 하향세지만 동양난은 상승세다. 특히 난 박물관의 활성화로 성공적 사례를 남긴 스리랑카의 경우 대외무역 흑자의 40%가 난 박물관에서의 수입일 정도다. 이를 보고 일본과 중국에서는 동양난 박물관을 준비 중에 있다. 재단에서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서 난 경매를 진행하는 팀이 있기에 알 수 있는 정보다.
그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용인만큼 화훼단지에 적합한 지역이 없다”며 “난 재배를 위해 필요한 약간 고지대인 자연환경을 비롯해 호기심 많은 세계 아이들의 체험, 잘 자란 난의 수출 등 꼭 필요한 교통의 월등한 사통팔달 등 뭐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난 키우기를 우리의 고유문화라고 강조하는 그는 그에 어울리는 서각, 국악, 서예, 한풀이춤, 칠, 차 등의 인간문화제를 포함한 각 분야 문화전문가 50여명과 함께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회장 안금환)를 창립했다.
각자 자신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갖는 전문가들 앞에서도 안 이사장은 확실하게 말한다. “난은 자연”이라고... 결국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지거나 표현되는 것은 자연 앞에서만큼은 작아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뜻이다.
외국인들은 난을 귀하게 여긴다. 난으로 맺은 인연도 귀하다. 올해 초, 안 이사장은 재단본부가 위치한 용인에서 신년회를 계획하고 전 세계에 설치된 각 지부로 초청장을 발송했다.
신년회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나라의 벽을 넘어 참석한 100여명 난 애호가들의 잔치가 됐다. 특히 나중에 창립됐지만 문화라는 같은 분야의 길을 걷는 문화인들도 합세하니 그야말로 글로벌 큰 잔치가 됐다.
지난 2013년, 용인농촌테마파크에서 용인봄꽃축제와 함께 열린 제19회 대한민국난전시회는 유례가 없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또 인성회복과 힐링 나눔 축제란 주제로 지난해 10월 용인시의회 로비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반려식물미술품전시회는 아이들에겐 인성교육의 장으로, 어른들에겐 인성회복의 장으로 모두가 힐링을 나누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날 참석한 장애인들과의 소통의 장으로 큰 의미를 담아냈다.
일본의 ‘전통 원예취미’란 격월 잡지에는 (재)국제난문화재단 소식이 실린다. 안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두 쪽을 할애해 빠지지 않고 실린다. 한국에서의 활동도 모두 실렸다.
안 이사장은 “모든 소통이 서로의 미흡한 점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며 “일본은 우리의 활동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우리는 일본을 보며 그들에게 배워야할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왜 같은 용인이면서 수지사람, 기흥사람이라고 하는지 마치 분당 거주민들이 성남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절대 분당사람임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며 “문화로 하나 되는 순간 그것도 글로벌문화로 하나 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용인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