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저런 기념관이 있기도 하지만 도시는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는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베를린은 유대인 학살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분단의 민낯을 사장시키지 않고 도시 구석구석 유산으로 남겨 두었다. 『기억하는 인간』은 이처럼 과거의 수치를 기억하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짚어 나가는 책이다.
고급스런 프린팅과 디자인 덕분에 이 책은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사실은 슬픈 인간의 역사이자 기록이 도서의 주요 내용이다. 어떤 이는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을 기억한다. 유대인, 여성, 비국민 같이 타자로 낙인찍힌 이들을 기억한다. 어떤 이는 실패를 기억한다. 실패로부터 진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한다. 그 시간은 사랑을 완성하고 사람을 살리는 아름다운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실패로부터 진보를 길어올린다는 부분에서 생각할 점이 많은 책이다. 가령 대구지하철 참사를 경험한 것은 우리지만 일본은 다른 나라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의 결과 일본은 자국의 지하철을 개선했다. 미국에 있다는 실패 박문관이나 프리모 레비의 묘비에 써 있다는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20쪽)라는 기억의 노력들.
연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소식으로 인한 축하 소식이 전해지지만 한편에서 그것이 날조된 역사의식을 생산해 내는 도구라며 비난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