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신경숙
혀꽃은 기침을 숨겨놓고 핀 여자의 허파다
중양절(重陽節)에 꺽어야 할 구절초 10월에 만났다
대숲에 흉터를 남기고 간 이름들 안녕한지
수선하게 흔들어 놓고 바람은 지나가는 거지
정해진 답이 없이 흐린 발자국을 데리고 대숲을
빠져나가다 갇힌 안개, 추령천에 몸을 씻는다
눈에 밟혀 시들해진 구절초 꽃들이 모인 능선
만지작거리다 놓고 나온 파장한 판매대의 야채처럼
축제가 끝난 현수막처럼 시들하고 스산하다
발목을 붙잡는 스피커에서
몸의 수식어를 해독하며 찾아내는
가을 사랑
그 계절, 바람을 건너가면 도착하지 못한 날이 기다리지
갤러리에 갇힌 구절초 열었다 닫는다
패턴을 그리면 다시 피어나는 구절초
아쉬움의 순간은 화심(花心)에 꽂아두고 왔다
신경숙
당진 출생. 2002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비처럼 내리고 싶다』 『남자의 방』이 있다. 제 17회 서울시인상을 수상했고, 2014년 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용인문학회 회원, 시나모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