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각도
정연희
산수책 손에 쥔 적 없는 어머니는
숫자나 도형의 각도는 모르지만
가을의 각도는 달달 외운다
뒤로 젖힌 목 15도와
125도로 굽혀야 하는 허리
따거나 찾을 수 있는 각도에 익숙하다
벌어진 각도를 벗어난 작은 산밤을
금세 한 움큼 찾아낸다
알밤 두세 개 주워 들고 좋아하던
유년의 나만큼 작아진 어머니
동그랗게 키를 말고
푸른빛 설가신 질경이 잎 사이사이를 더듬고 있다
도둑 풀 사이에서도 하나
개미취나물 사이에서도 하나,
가을보다 먼저 노랗게 변해버린
이름 모를 풀숲을
빼놓지 않고 곁을 트며 가신다
벌써, 밤묵 내놓으실 생각에 이마의 주름이 출렁댄다
자식들 얼레던 오래된 기울기와
무량대수로 쏟았던 모정의 숫자에
앞산이 벌겋게 타오르고
어머니는 지금 작아진 엉덩이로
파랗게 질린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정연희 약력
전남 보성 출생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귀촌」 당선
201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잔등노을」당선
2017년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2023년 용인문화재단 출간기금
용인문학회 회원, 동서문학상 수상자 모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