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용인시가 추진 중인 (가칭)‘용인항일독립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거세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항일독립기념관을 지역사회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립 예정지 또한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기념사업 취지와는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편집자 주
용인시가 시의회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용인독립운동탐험대’의 제안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용인항일독립기념관’(이하 독립기념관) 예정 부지는 3‧1 만세운동 기념공원이 있는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 산 21-1번지 일원이다.
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2024년 4월까지 기존 7만 1550㎡ 규모의 만세운동 기념공원에 36억 4000만 원을 들여 3만 4035㎡ 부지에 지상 2층, 연면적 800㎡의 기념관을 지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본계획을 수립한 상태고, 5월 중에 지방재정투자심사와 공유재산심의, 추경예산 편성 후 도시계획변경절차 등을 거쳐 내년 10월 착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용인향토사학계를 비롯해 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들조차 용인시가 공론화 과정 없이 추진하는 것 아니냐며 추진배경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시의원들의 연구모임인 ‘용인독립운동탐험대’가 정치적 성과물을 위해 전시성 졸속행정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또 예정부지에 대한 접근성에 문제가 많고, 기념관을 채울 콘텐츠가 없는 상태에서 타 지역 사례를 표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 “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심사숙고해야”
지난 28일 오후 5시, 국도 42호선 양지~원삼 방면으로 내리막길인 좌천고개 중간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산기슭 쪽으로 60여m 올라간 기념공원 주차장 안엔 차량 두 대가 있었다. 차량안엔 참배객이 아닌 아베크족들로 보였다. 기념공원엔 공식행사 때와 유적답사를 위한 소수의 방문객 외에는 데이트족들의 휴게공간으로 이용되는 상황이지만, 관리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곳 기념공원은 용인 시내와 매우 동떨어져 있어 차량이 없는 노인이나 학생들은 사실상 방문이 쉽지 않다. 게다가 높은 기념탑조차 우거진 산림에 가려져 큰길가에서는 아예 보이질 않는다. 좌찬고개는 용인시청에서 15km 떨어진 곳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시는 지난 2011년 3월, 용인 최초의 3.1만세운동 발상지라는 이유로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가 중심이 되어 약 55억 원을 투입, 기념공원과 기념탑(탑명: 숭고한 빛)을 조성했다. 이후 매년 3.1만세운동 기념사업과 만세운동을 재현해 왔다. 하지만, 매년 참석자들은 단체장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 그리고 행사동원 관계자들이 고작이다.
그런데 용인지역엔 원삼면 3.1만세운동 기념탑보다 16년 전에 세원진 ‘독립항쟁기념탑’이 있다. 현재 처인구 김량장동 326번지 통일공원에 있는 독립항쟁기념탑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고,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용인군 시절이었던 1995년 8월 15일 건립했다.
이곳은 용인시청과 처인구청 사이 42번 국도 삼거리로 조망권은 물론 접근성이 탁월하고, 체육시설까지 모두 개방돼 있어 노인‧ 청소년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24시간 출입이 많은 곳이다. 부설 주차장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도보를 비롯해 버스와 경전철 등 대중교통 편리성 등이 장점이다.
따라서 항일독립기념관은 차라리 통일공원을 이곳에 짓던지, 아니면 대중의 접근성 좋은 인근 공공건물 혹은 민간 건물 등을 이용할 경우 기존 예정부지보다는 월등한 홍보 효과와 예산 절감까지 할수 있다.
한편, 이보다 20년 전인 1975년 6월 6일 처인구 김량장동 산 36번지 용인중앙공원에는 한국전쟁 전사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현충탑이 건립됐다. 매년 1월 1일과 현충일 등 주요 기념일에는 용인시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과 일부 사회단체장들이 참배한다.
#각계 인사들의 비판 봇물
3·1 만세운동 기념행사장에서 시 관계자의 브리핑을 통해 독립기념관 건립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 들었다는 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들조차 목소리가 격앙됐다. 그동안 용인향토사와 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을 주도했던 지역어르신들조차 금시초문이라며,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 이덕균 지사 후손으로 3.1만세운동 기념탑 건립을 주도했던 향토사학자 이석순씨는 “용인시에는 원주민보다 외부 유입 인구가 더 많아서 독립운동사를 포함한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며, 기존부지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만세운동 기념 참배 현장에서 용인시 담당 과장 브리핑을 통해 항일독립기념관 건립 추진 사실을 처음 들었다”면서 “시와 시의원들이 독립운동기념사업에 관심을 갖는 건 좋지만, 공론화 과정없이 탁상행정식으로 생색내기식의 추진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기문화재단 김성태 수석연구원 역시 “용인독립운동사 현양 사업을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마스터플랜을 세운 후 다양한 사전작업을 통해 운영과 투자 대비 효과 등을 고려해서 추진해야지 자칫 혈세만 낭비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아날로그 시대가 아닌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상징적인 전통시장이나 공공시설물의 일부를 이용한다면 저비용으로도 내실 있는 기념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1995년도에 독립항쟁기념탑 건립을 주도했던 이인영 전 용인문화원장도 본 기자에게 이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다며 “별도의 항일독립운동기념관 건립보다는 용인역사박물관을 짓고, 독립운동자료실 또는 자료관을 부속시켜 독립운동자료의 조사, 연구, 전시 기능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의원 연구모임 ‘용인독립운동탐험대?’
용인시의회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용인독립운동탐험대’는 지난 2019년 용인지역 항일독립만세운동 및 독립운동가의 역사와 유적을 토대로 교육, 문화, 도시재생 등 컨텐츠 발굴과 접목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이 모임은 대표 유진선 의원 외 4명이 포함됐다.
용인독립운동탐험대 대표를 맡고 있는 유진선 의원은 지난 3월 오리엔테이션에서 “2019년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시작한 연구단체 활동이 올해로 3년째 이어지고 있다”면서 “올해는 용인항일독립기념관 건립계획을 구체화하고, 독립기념관 공간활용 구상을 위한 벤치마킹과 3개구 만세운동과 만세길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밝힌바 있다.
한편, 2011년부터 시작된 시의원들의 연구모임은 올해 5개에서 8개 단체로 늘어났다. 연구모임 경력이 시의원들의 재공천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단체수 증가에도 한몫 했다는 분석이다. 연구모임에는 매년 연구용역비 1억 1000만원을 비롯, 단체마다 55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