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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삶의 낙서

<박소현 삶의 낙서>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말보다 행동이

빛바랜 우정

긴잠을 깨운다 

 

잘 지냈니?”

몇 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황함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마음 때문에 잠시 동안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머뭇거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친구는 전화가 끊겼다고 생각했는지 여보세요를 몇 번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얼떨결에 끊어진 전화기를 쳐다보다가 다시 발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가 바뀐 줄 알고순간 당황했네친구는 안도의 목소리로 반가움을 전했다.

10년이 더 흘렀던 것같다. 오래 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그 친구는 상처가 컸던지 아무 말도 없이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마음을 터놓던 친구가 많지 않았던 그녀에게 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에 하나였다. 섭섭함에 나도 몇 년을 소식 없이 지냈던 것 같다.

, 이게 얼마만이니?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거야?”

별 일 있는 건 아니지?”

별 일은 무슨……그냥 생각나서 전화한거야.”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다음에 한번 꼭 만나자는 것이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친구에게는 별 일이 있었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짜내서 생각난 친구가 나였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었다. 10년 만에 연락을 한 친구에게 별 일 있는 건 아니지라고 물었던 나는 어쩌면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장 만나자고 하지 않고 그 친구의 입을 통해 별 일 없다고 대답을 얻어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우정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배우가 있다. ‘만인의 연인으로 귀여운 미소로 사랑받았던 그 배우는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나갔다. 무엇이 그녀의 삶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것일까.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도 많았다. 비록 개인사에는 상처가 있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은 배우였다. 그런데 그녀는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녀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 선배 배우는 토크쇼에 나와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새벽에 걸려온 그녀의 전화를 술에 취해 한 전화인 줄 알고 선배로서 화를 내고 끊었다고 한다. 그 선배 배우도 그 당시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가 된다면서 그녀의 선배는 한동안 고개를 숙였다.

친구가 많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한사람만 있어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주변에 많은 친구가 있어도 문득 그리워서 불러내려고 하면 무조건 달려 나올 수 있는 친구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수백 개의 전화번호를 훑어내면서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풍요속의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친구 맺기를 통해서 전 세계로 친구를 만드는 시대이다. 하지만 갈수록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참 모순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친구 간에도 예의가 있다. 늘 먼저 연락하는 친구라고 해도 한번쯤은 나도 그 친구의 안부를 궁금해 해야 한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에게 우리는 흔히 별일 있는 건 아니지라고 묻는다. 이제 그런 질문은 하지 말고 언제 만날지를 물어야 한다. 설사 그 친구가 별일이 정말 없다고 해도 만나서 별일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후회가 된다.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을 하면 베르테르 효과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모방 자살이 급증하게 되는 현상으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잠시라도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요를 누르면서 공감하고 친구 맺기를 통해서 관계를 만들어가지만 사람들은 늘 외로움을 힘들어한다. 친구는 오래 될수록 좋다는 옛말이 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관계에 한 번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내가 너무 좋아했던 그 배우가 생을 달리했을 때 나 역시도 너무나 슬펐다. 며칠을 우울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우울감은 전화 한통화로 없어져 버렸다. 나에겐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새벽 3시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잠을 깼다.

살아있네그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

새벽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승무원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무뚝뚝한 그 친구의 전화 한통에 나는 한참을 깨어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감수성이 예민한 나에게 설마 하면서도 베르테르 효과를 걱정했던 것이다.

가을은 좀 쓸쓸한 계절이다. 잊혀진 줄 알았던 첫사랑도 생각나고 옛 친구도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무심코 걸려온 첫사랑의 전화에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무심코 걸려온 첫사랑의 전화보다 더 중요한 전화는 옛 친구의 전화일 수도 있다. 아무리 바빠도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라고 묻지 말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당신의 우정은 당신의 첫사랑보다 아름답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