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의 추억
“언니, 저 애기랑 서울에 놀러왔어요”
“그래? 지금 어딘데?”
“한강가서 오랜만에 유람선이나 탈려구요”
“그래 그럼 7시에 만나서 같이 유람선타고 저녁먹자!”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지방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 63빌딩을 더 자주 가고 오히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63빌딩을 자주 가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용인에 살고 있는 저도 유명한 놀이공원 근처에 살고 있지만 올 해는 한 번도 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거리가 주는 여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강 유람선도 그렇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서울은 가깝고 언제든지 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저 역시도 거의 10년 만에 다시 타보는 한강 유람선이었습니다.
고등학교 후배는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녀서 그때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며 설레여했습니다. 5살짜리 어린 딸의 손을 꼭 붙잡고 유람선을 기다리는 표정은 초등학교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했습니다. 저도 하루 종일 바쁜 일과를 마치고 유람선 안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니 어느덧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습니다.
유람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풍경은 다양했습니다. 대부분 부모님을 모시고 왔거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였습니다. 어찌보면 유람선은 특별한 날 부모님께 하루정도 효도하기 좋은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떠들썩하게 자리 정돈이 끝나고 뱃고동 소리와 함께 유람선은 출발했습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유람선 내부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강의 다리가 야경에 불빛을 내뿜고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유람선 요금이 야간에 더 비싼 건가 잠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유람선은 잠실 선착장을 출발하여 여의도에서 다시 돌아오는 경로였습니다. 그런데 유람선의 풍경은 오래 전 추억에 남아있던 풍경이 아닌 듯했습니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이기도 했을 겁니다. 정말 한강의 사방으로 보이는 풍경은 높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것도 한강의 다리보다 더 화려한 조명을 내뿜는 아파트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그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언니, 저 아파트는 무슨 동에 있는거예요?”
“청담동인가?..”
“아, 강남!..정말 예쁘다”
후배는 아파트가 예쁘다는 소리인지 강남이 예쁘다는 소리인지 탄성을 질렀습니다.
“말로만 듣던 대치동이 저 근처인가봐요?”
“대치동?”
후배의 입에서 나온 대치동이라는 말에 대치동은 정말 유명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치동은 모든 엄마들의 꿈인가보지?”
후배와 나는 서로 웃으며 다시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구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배는 유람선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니 유람선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에 넋을 잃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유람선 밖의 풍경이 우리가 생각했던 풍경이 아님을 조금씩 느끼며 말없이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 유람선은 뭐지 언니. 이 유람선이랑 좀 다른데...”
유람선은 이것 말고도 다른 유람선도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뷔페 유람선이었습니다. 언젠가 친구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습니다. 저 유람선 안의 사람들은 우리처럼 아파트 구경을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서로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이쪽에서도 보였습니다. 그 유람선의 식사 값은 특별한 날에도 큰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을 정도로 꽤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은 사람들을 자꾸만 씁쓸하게 합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부럽지 않다고 외쳐도 부러운건 사실이니까요. 큰마음 먹고 기분 좋게 탔던 유람선이었는데 더 멋진 유람선 때문에 행복한 시간을 빼앗긴 것 같았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화려하고 멋진 아파트가 대부분이었으니 그날 하루는 좀 서글펐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씩씩하게 후배와 저는 오징어 불고기를 먹으며 ‘대치동 아이들이라고 다 서울대 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아파트에 살고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더라’라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유람선의 추억을 기분 좋게 끝냈습니다.
부자가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때로는 부자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친한 사람들을 만나서 부자가 너무 부럽다고 한바탕 수다를 떨면 어떨까요?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그 수다가 더 맛있게 느껴지겠죠.
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라 부럽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닌 척 하고 있는 것보다 가끔은 부럽다고 솔직히 말해도 뭐 어떻습니까? 그래도 세상에는 부자보다는 그것이 가끔은 부러운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그게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