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염(정확히 말해서 충수돌기염)은 의사라면 누구나 쉽게 진단할 수 있는 전형적인 맹장염도 있지만, 때로는 경험 많은 외과의사들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특이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병이다. 흔히들 “맹장은(정확하게는 충수돌기) 1000의 얼굴을 갖고 있다.” 고도 하고 “외과가 맹장으로 시작해서 맹장으로 망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쉬운 것 같으면서도 만만히 보다가 큰 코 다치는 어려운 병이라는 말이다.
맹장염이 의심되는 환자들을 보다 보면 애매한 경우가 많이 있고, 여러가지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검사를 해도 속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어 답답한 경우가 있다. 어떤 환자는 매년 한번씩 꼭 맹장염 증상처럼 통증이 와서 병원에 가서? 여러가지 검사를 한 후 이상이 없어 관찰하다가? 증상이 호전되었는데, 한 참 지나서 다시 똑 같은 통증이 재발하여 다시 병원에 갔는데 이번에도 같은 말을 듣기를 매년 반복하는?경우가 있다. 주기는 1 년에 한 번일 수도 있지만 더 자주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과거 외과의사들이 만성맹장염이라고 부르던 질환으로 생각된다. 이런 환자들이 바로 충수돌기 산통(충수돌기 즉 맹장이 경련을 일으켜 통증이 일어난다는 개념)이 의심되는 환자이며 진단기준은 “우하복부통증이 3 회 이상 발생한 적이 있고, 진찰상 우하복부를 눌렀을 때 통증이 발생되지만 복막자극징후(눌렀다 뗄 때 아프다거나 걸어다닐 때 우하복부가 아픈 징후)는 없으며 바륨관장 검사 상 충수돌기 조영이 불규칙하거나, 24 시간 후에도 바륨이 충수에 충만해 있지 않거나 부분적인 충만만 있거나, 72 시간 후에도 충수에 조영제가 남아 있을 경우” 충수산통으로 진단할 수 있고, 맹장수술(충수돌기절제술)을 하고 나면 통증이 소멸된다. 결국 만성적으로 맹장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 맹장 수술을 하고 나면 통증이 없어진다는 개념으로 만성맹장염을 일정한 진단기준을 제시하여 하나의 질환으로 정착시킨 예이다.
서양의학의 역사는 이처럼 여러 의사들의 생각을 수치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근거와 기준을 제시하여 이론으로 정착시켜 온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질병은 정체해 있는 것이 아니고 전에 몰랐던 개념을 새로 이해해 나가면서 새로운 진단명이 생기기도 하고, 환경과 의술의 발달로 드물어지거나 없어지기도 하는 등 계속 변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반복적인 우하복부 통증으로 불편해 하는 분이 있다면 새로운 개념의 의학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외과 의사와의 상담을 권유해 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