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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응봉산을 다시금 보며

강성구 수지시민연대 공동대표

수지에 살고 있으면 그 누구나 한 번 쯤은 광교산에 올라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의 넉넉함을 자랑하지 않은 이 또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눈 오는 광교산 사진이 자랑스럽게 수지시민연대 홈페이지를 장식하는 것도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광교산은 이를 지켜내기 위한 많은 분들의 목청이 배어 있다. 또 그들의 의지를 가득 담고 지금도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눈에 띠는 사람이 있다. 적잖은 연세를 짊어지고 마치 돈키호테 같이 나타난 성복동 녹지보존위원회의 임병준위원장이 바로 그다.

성복동 골짜기에 자리 잡은 LG3차 아파트. 이곳은 성복천과 응봉산의 풍광이 좋아 노년을 조용히 보내고 있는 입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보금자리다.

그러나 어느 날 응봉산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아파트 주민들은 응봉산의 훼손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응봉산을 살려 난개발로부터 성복동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임위원장은 응봉산녹지보존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위원장으로 추대 받아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 2003년 7월이다. 벌써 5년째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노년을 조용히 그리고 편안하게 살기는커녕 오히려 그 정반대의 투쟁적 역경을 살게 된 것이다. 성복동 어르신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으로 쓴 웃음이 절도 나기도 한다.

임위원장을 중심으로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로 구성된 녹지보존회는 그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아파트 입주민을 감동시킬수 있었고, 그래서 세대별 10만원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약 6200여만 원의 녹지기금을 조성, 용인시청은 물론이고 건설회사와 공사현장을 쫓아다니며 그야말로 가열 찬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지역신문은 물론 중앙일간지와 중앙방송사에 보도되었고, 법적투쟁을 병행하면서 한시도 쉰 날이 없을 정도였다. 녹지위원회는 성명서 등을 통해“맑은 공기를 마시며 쾌적한 환경에서의 삶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간절한 소망이며 헌법적 기본권이다”라며, “용인시의 성복동 개발계획을 철회하라”고 목청을 높여 외쳐댔다.

그러던 재작년 여름 장마철. 응봉산의 개발공사 저지를 위한 행위의 일부를 문제 삼아 법적다툼이 벌어졌고 급기야 임위원장은 65세 평생에 처음으로 경찰서 검찰의 유치장을 오가야 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면서 끈적끈적한 칼잠을 자는 불편부당한 처지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녹지보존의 의지를 지켜냈다.

또한 재판장의 40여억원의 조정권고안을 통보받고도 녹지보존회는 답변자의 절대다수가 녹지공간확보를 위해 권고안을 거부하는 진정한 의지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결국 그 뜻을 당할 자 없어서인지 힘겨운 싸움 끝에 서로가 양보하여 응봉산 자락의 16.530㎡(약5000여 평) 시가 약 670여억 원의 녹지공간을 조성하는데 합의를 이끌어냈다. 결국 응봉산의 훼손을 완전히 저지하지는 못했으나 녹지공간확보를 얻어낸데 대해 이 사건의 주심판사는 “아파트의 일조권, 조망권 침해와는 달리 미리 행정기관의 처분에 이의를 제기한 독특한 사례”라고 설명하였으며 일부언론에서는 이러한 독특한 사례로 행정기관의 처분에 제동을 걸어 녹지보존을 이끌어 낸 것은 쾌거”라고 평했다.

임위원장에게는 험난한 길이었고 다시금 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아름다운 사건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펑펑 쏟아진 눈 덮인 광교산 자락의 응봉산을 다시금 보며 분명 성복동에 살려한 주민들은 광교산의 품속에 안기고 싶어 했던 의지가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전설을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그 전설 속에는 돈키호테같이 시대의 오류를 우회적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간 임병준위원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진 어르신들이 주축이된 녹지보존위원회가 있었고 그래서 성복동은 아름다울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 응봉산으로 셀 수 없이 눈송이가 내려와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