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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용인신문 창간 33주년 기념

장애인 홀로 서기 현장-①해든솔직업지원센터

“두려워 하지마!”… 진정한 자립 동반자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자조회의를 통해 활동처를 찾기 위한 대화를 하고 있다

 

프로그램 참여자가 직접 찾은 활동처에서 여가활동을 실행하고 있다

 

‘자기 주도 활동 프로그램’ 통해
발달장애인 근로자 능동적 변화
직업능력 향상·임금인상 선순환

 

용인신문 | 처인구에 위치한 해든솔직업지원센터(센터장 김명숙). 여느 직업재활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별한 변화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3년간 꾸준히 진행된 ‘자기주도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이 수동적인 참여자에서 능동적인 삶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장소도 알아보고 직접 찾아가서 해보니까 좋아요. 우리가 정해서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한 근로자는 환한 미소로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이제부터는 생각만 하고 못했던 체험들을 직접 찾아 해보고 싶다”며 앞으로의 기대를 드러냈다. 이들의 말 속에는 단순한 만족을 넘어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엿보였다.

 

■ 3년의 땀과 노력, ‘혼자’의 벽을 허물다

대부분 발달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연스럽게 보호자나 직원의 도움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여가 활동이나 사회참여 기회 위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해든솔직업지원센터 근로자들은 3년 전부터 이러한 고정관념에 도전해왔다.

 

센터 직원들의 주도 아래 진행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근로자들이 직접 활동처를 탐색하고 여가 활동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자기주도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워 수동적으로 직원들의 지시를 따르기만 했던 이들. 하지만 직원과 근로자들의 끈질긴 인내와 꾸준한 참여 덕분에 작은 변화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이나 가고 싶은 장소를 직접 조사하고, 동료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체험했다. 활동 후에는 일기를 쓰며 스스로의 경험을 돌아봤다. 나아가 금전 관리까지 스스로 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지민 사회복지사는 프로그램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근로자들만의 ‘좌충우돌 볼링장 첫 방문기’를 꼽았다.

 

지적 발달이 지연된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외부 활동을 홀로 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1년 넘는 시간 동안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소그룹 교육을 반복했다.

 

안전 규칙, 이용료 계산, 활동 에티켓, 버스 노선 주입 등 수십 번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오늘 배운 내용은 내일이면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만의 나들이로 볼링장에 간다고 했을 때 정말 걱정이 많았어요. 혹시라도 들킬까봐 미행하듯이 조용히 뒤를 따랐습니다. 돌아오는 버스를 두 번이나 놓치는 걸 보고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마치 첫 나들이를 나선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 심정이었을 겁니다.”

 

다행히 근로자들은 무사히 볼링장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음 날, 기쁨으로 빛나던 이들의 얼굴과 자랑스러웠던 이야기는 김 사회복지사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이런 작은 성공의 경험은 근로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더 큰 변화의 원동력이 됐다.

 

■ 직업능력·삶의 질 향상 ‘두 마리 토끼 사냥’

자기주도 활동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직업능력 향상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도 이어졌다. 프로그램 참여자 중 일부 직업훈련생들이 ‘근로자’로 전환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뿐만 아니라 참여자 절반 이상이 임금 인상이라는 구체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주체적인 삶의 태도가 형성됐고 자연스럽게 직업적 역량 강화로 이어진 것이다.

 

성과는 지역사회와 현장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져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이 모든 노력의 중심에 있는 김지민 사회복지사는 “이번 프로그램은 발달장애인이 단순히 제공받는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니라 스스로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로 변화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가슴 졸이는 일이 많지만, 이런 노력이 쌓여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들이 ‘홀로’설 수 있는 기회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한편, 해든솔직업지원센터의 자기주도 활동 프로그램은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연합회가 주관하는 경기도 재활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이들의 작은 도전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사회 전체에 ‘진정한 자립’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발달장애인은 혼자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해든솔직업지원센터 근로자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빛나는 발걸음이 더 많은 발달장애인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