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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뇌는 엄마의 발걸음으로 키운다

박숙현의 과학태교

 

 

소파에 앉아 음악 듣는 것보다
천천히 걷기 아기 뇌 발달 도움

 

용인신문 | 창문을 열면 아침 햇살이 거실로 쏟아진다. 한 손으로 둥근 배를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CD 플레이어에 모차르트 음반을 넣는다. 배 속 아기가 천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책상 위에는 임신부 태교 일기장이 펼쳐져 있고, 벽에는 부드러운 파스텔 그림이 걸려 있다. 집 안은 조용하다. 그러나 이 고요한 풍경 속에 결정적으로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움직임이다.

 

의학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아의 뇌 발달을 돕는 가장 과학적인 태교는 다름 아닌 엄마의 발걸음이다.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는 것보다, 신발끈을 매고 골목을 천천히 걸어 나가는 것이 아기 뇌 발달에는 더 직접적인 자극이 된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임신부가 움직이기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혹시 아기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까?”라는 걱정 때문이다. 외래에서 만난 한 산모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기가 혹시 잘못될까 봐 집 밖에 잘 안 나가요.”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정반대다. 가벼운 운동은 태아의 뇌와 몸에 분명한 이득을 준다.

 

첫째는 혈류의 힘이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산모의 심장이 강하게 뛰고 혈액순환이 활발해진다. 그 결과 태반으로 더 많은 산소와 영양분이 흘러 들어간다. 뇌는 인체 기관 중 산소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이다. 따라서 산모가 걷는 순간, 태아의 뇌세포는 산소와 영양을 더 풍부하게 공급받는다. 실제로 하루 30분, 주 3회 걷기만 해도 태아의 뇌파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해외 연구가 있다. 단순히 “엄마가 걸었다”는 사실 하나가 아이의 신경 회로를 더 활기차게 만든다.

 

둘째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다.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이 단백질이 분비된다. BDNF는 뇌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을 강화한다. 성인의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지키는 물질이지만, 태아에게는 더욱 결정적이다. 뇌세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회로를 만들어가는 시기에 BDNF가 풍부할수록 아이의 뇌는 더 정교한 네트워크를 완성한다. 엄마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이의 뇌에는 ‘성장 신호’가 불이 켜지듯 켜진다.

 

셋째는 마음의 안정이다. 임신은 기쁨만큼 불안도 큰 시기다. 호르몬 변화로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몸은 무거워진다. 마치 보고서 마감에 쫓기는 직장인처럼, 임신부의 뇌도 긴장 상태에 머물기 쉽다. 이때 걷기, 요가, 가벼운 스트레칭은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한다. 엄마의 심장이 차분해지면, 아이의 심장도 고요해진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은유가 아니라, 실제 생리학적 연결이다. 결국 산모의 한숨이 가라앉을 때, 아이의 뇌파도 함께 안정된다.

 

물론 주의점은 있다. 무조건적인 운동은 위험하다. 고강도의 운동은 태아의 심박수를 과도하게 높이거나 자궁 수축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기준은 간단하다. “조금 숨이 차지만 대화는 가능한 정도.” 개인의 체력, 임신 주차, 기존 질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 운동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임신부가 여전히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오해 속에 갇혀 있을까? 이는 사회가 만들어온 태교 문화 때문이다. 음악과 독서는 태교로 인정받으면서도, 땀 흘리는 운동은 금기시된다. 임산부를 유리병처럼 다루던 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분명히 말한다. 태아의 뇌를 키우는 건 교향곡이 아니라 엄마의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