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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용인신문 창간 33주년 기념

태아는 클래식보다 엄마의 삶을 듣는다

박숙현의 과학태교2.

용인신문 |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아이 IQ가 올라간다더라.” 임신 중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그래서 태교용 클래식 앨범과 ‘모차르트 효과’라는 이름의 제품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말 그 음악이 태아의 지능을 높여줄까? 아니, 그 소리를 태아가 제대로 듣기나 할까? 뇌과학은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태아는 임신 16~20주경부터 청각세포가 형성되며 외부 자극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를 기준으로 많은 부모들이 “이제 뭔가 들려줘야 할 시기”라 생각하며 음악이나 책을 준비하지만, 중요한 건 ‘무엇을’보다 ‘어떻게’다. 태아는 이 시기에도 저주파 영역의 소리만 감지할 수 있고, 자궁이라는 환경은 양수로 가득한 어두운 수중 공간이다. 외부 소리는 대부분 둔탁하고 흐릿하게 왜곡돼 전달된다. 쉽게 말해, 태아는 욕조 속에 머리를 담근 채 밖에서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과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다.

 

결국 음악이 정교하게 들릴 리 없고, 선율과 가사보다는 일정한 박동이나 리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태아는 소리의 ‘내용’보다 ‘패턴’에 반응하며, 반복되는 리듬, 일정한 주기의 자극이 안정감을 유도한다. 엄마의 심장소리나 혈류 흐름, 규칙적인 말걸기나 노랫소리는 태아에게 ‘예측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주며, 이는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렇듯 태아가 모든 걸 똑똑히 듣고 판단하는 듯한 ‘전지적 태아 시점’은 과학적 근거보다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신화에 가깝다. 그래서 음악을 골라야 할지, 목소리를 어떤 톤으로 내야 할지 고민하는 임신부들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느낀다. 특히 요즘처럼 많은 여성이 직장과 육아, 임신을 동시에 감당하는 시대에는 ‘태교’라는 말조차 부담일 수 있다.

 

 

직업 전선에서 맹활약 중인 여의사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게 최고의 태교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나 자기위안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충분한 근거를 지닌 조언이다.

 

흔히 스트레스는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의 종류에 따라 뇌와 몸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진다. 자발적인 몰입, 보람 있는 긴장, 성취감을 동반한 스트레스는 뇌에 긍정적 자극을 준다. 반대로 강요된 억압, 불안과 자책이 수반된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을 높이고 자율신경계를 교란시킨다. 같은 ‘스트레스’라도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가 다르다는 말이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태반 내 혈류 순환이 저하되고, 이는 곧 산소 공급과 영양 전달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보다, 그 스트레스가 ‘나에게 어떤 감정이었는가’가 태아에게 더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들도 보고된 바 있다. 즐겁게 몰입하는 일이라면, 스트레스가 곧 성장자극일 수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감정 기복이다. 임신 초기 여성의 뇌는 호르몬 격변기에 들어선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급증하며,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특별한 이유 없이 울거나, 쉽게 짜증이 나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많은 여성들이 이를 이상하다고 느끼며 자책하지만, 실은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다. 뇌가 급격하게 변화한 생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과정일 뿐이다.

 

문제는 이 감정을 억누르려는 데 있다. “엄마니까 괜찮아야지”, “이런 기분이면 아기한테 안 좋겠지”라는 생각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억지로 감정을 참을 때 뇌는 더 강하게 경계하고, 스트레스 반응은 커진다. 자율신경계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그 파동은 심박, 호흡, 혈류를 통해 고스란히 태아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필요한 건 억제보다 순화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수 있는 루틴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방법이 감정 일기 쓰기다. 하루 5분만이라도 내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려고 하면, 뇌는 감정 자극을 언어 처리 영역으로 전환하며 흥분을 낮춘다. 명상이나 산책도 효과적이다. 호흡의 리듬은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뇌의 스트레스 회로를 차분히 진정시킨다. 실제로 단 10분의 호흡 명상만으로 코르티솔 수치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도 있다.

 

태교란 정해진 틀을 따르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음악을 고르고, 클래식을 틀고, 명상을 억지로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억지로 웃는 미소보다, 몰입하며 살아가는 진짜 감정이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한다. 태아는 모든 걸 듣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살아가는 호흡의 결, 심장의 리듬, 내면의 평온을 느낀다. 결국 가장 좋은 소리는, 엄마가 행복할 때 흘러나오는 그 잔잔한 숨결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