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용인시 이동‧ 남사읍 일대에 조성되는 5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향후 20년 이상 진행될 초대형 장기 개발 사업이다. 그러나 지난 호 용인신문 보도에 의하면 창3리 ‘화곡마을’의 경우, 이 개발이 현재 얼마나 형식적 준비에 머물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질적인 민·관·기업 협의체 구성 없이는 사회·문화·환경적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일명 ‘꽃골’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단순한 개발 예정지가 아니다. 600년 공동체의 삶이 이어져 왔고, 20여 종중의 400여 기 선영이 있는 공간이다. 조선 개국공신 남은, 고전소설 ‘옥루몽’ 저자 남영로, 나비그림의 대가 남계우 등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그럼에도 현재 개발은 법적 보상 중심으로만 추진되고 있으며, 문화유산(비지정) 보존이나 이전 방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부족한 상황임이 확인됐다.
앞으로 예정된 환경영향평가도 내심 걱정이 앞선다. 주민들에 의하면 현재 이곳엔 맹꽁이, 가재, 민물새우 등이 서식하는 생태계이자, 용인의 ‘산소통’ 역할을 하는 구릉지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는 아직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업은 기정사실화되어 추진 중이다. 국가산업의 특성상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산업단지가 요구하는 막대한 용수, 폐수 처리, 전력 수급 문제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환경 지속가능성의 핵심 문제이기에 용인시민 전체의 관심사다.
주민 공동체의 생존권 문제도 심각하다. 창3리 주민의 95%는 70세 이상 고령층이다. 이들에게 삶의 터전 상실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생존의 위협이다. 법적 보상만으로는 고령층의 사회적·정서적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과의 신뢰다. 지역 주민들은 용인시가 ‘국가산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책은 고사하고, 소통조차 회피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대규모 개발일수록 주민들과 수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적 절차 이행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은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에 따라 정부, 용인시, LH, 대기업 등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민관협의 기구가 시급하다. 이 기구는 문화유산 현지 보존, 환경 관리, 이주 지원 등 각 사안을 총괄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특히 이 개발에 참여하는 삼성과 같은 핵심 기업도 지자체나 LH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을 직접 구성하고 주민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개발은 필요하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이 결여된 대형 프로젝트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꽃골’은 용인지역 곳곳에서 진행 중인 개발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형식적 행정이 아니라, 실질적 조정과 신뢰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