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사회주의 체제의 동독과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서독으로 분리된다. 동독과 서독 사이에는 장벽이 세워졌고, 이 벽을 넘는 이들은 목숨을 잃기도 한다. 1990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이 되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카이로스』는 독일 여성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의 작품이며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날 수상작이기도 하다.
『카이로스』는 1986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카타리나와 한스의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결국 처참하게 무너지는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 아홉의 카타리나는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며 가끔 할머니가 있는 서베를린으로 여행을 다녀온다. 한스는 과거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반파시즘을 내세우는 사회주의 진영을 택했지만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그간 사회주의 체제와 권력자들이 보여준 일련의 상황들이 진정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엇나간 둘의 사랑은 영원할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국에 이른다.
한스가 카타리나에게 사회주의 국가의 국가(國歌)에 부활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 이상하다고 말하자 카타리나가 말한다. “우선 철저히 무너진 다음에라야 비로소 부활이 가능한 것”이라며. 한스와 동독의 몰락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카타리나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문장 속에서 끊임없는 대조의 반복은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카타리나의 성장과 그 상징에 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