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윤석열 대통령의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로 45년 만에 계엄령의 관뚜껑을 열고 나왔다. 국회의 신속한 대응과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결단, 그리고 성숙한 민주시민의 저항으로 12.3 친위 쿠데타는 진압되었다. 대한민국 계엄령의 역사를 살펴본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대통령이 계엄선포권을 가지고 있다. 1948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재건립되고 모두 17차례의 계엄이 선포되었다.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첫 번째 계엄은 여수-순천 사건으로 1948년 10월 21일 선포되어 1949년 2월 5일 해제되었다. 두 번째 계엄은 제주 4.3사건으로 선포되었다. 세 번째는 1950년 7월 8일 6.25전쟁으로, 네 번째 1950년 11월 10일(경비계엄), 다섯 번째 1950년 12월 7일, 여섯 번째 1951년 3월 23일, 일곱 번째 1951년 12월 1일, 여덟 번째 1952년 5월 25일(부산 정치파동), 아홉 번째 1960년 4월 19일(4.19혁명 경비계엄), 열 번째 1960년 4월 19일(4.19혁명 비상계엄), 열한 번째 1961년 5월 16일(5.16군사정변), 열두 번째 1961년 5월 27일(경비계엄 5.16군사정변), 열세 번째 1964년 6월 3일(6.3항쟁), 열네 번째 1972년 10월 17일(10월 유신), 열다섯 번째 1979년 10월 18일(부마민주항쟁), 열여섯 번째 1979년 10월 27일(10.26 사태), 그리고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열일곱 번째의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가 6시간 만에 해제되어 역사상 가장 짧은 계엄으로 기록되었다.
45년 만에 계엄령이라는 녹슨 칼을 휘두른 윤석열은 계엄령에 의해 스스로 몰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윤석열은 내란수괴죄로 수사를 앞두고 있어 역사상 최초로 재임 중 내란죄로 수사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일관하다 정치입문 9개월 만에 0.73%의 근소한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하다 12.3 비상계엄으로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 모두 17번의 계엄 중 비상계엄은 12차례, 경비계엄은 5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