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용인신문] 하루는 공자의 아들이 집 마당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데 아버지인 공자께서 불러 말씀하신다. “얘야. 너는 시를 읽었느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돌연한 물음에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아직 안 읽었습니다.”라고 하니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시를 읽거라. 시를 읽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느니라.” 이에 아들은 물러 나와 시를 읽었다고 논어는 기록한다. 이 문장은 천고의 스승이요, 만세 사표이신 공자님께서 아들을 직접 훈육하신 유일무이의 문장이다. 아들에게 시를 공부하라고 권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생각에 삿됨이 없다.”이다. 이는 시를 읽어두면 “어느 환경과 처지든지 거기에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다.”쯤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루는 공자의 서열 세 번째 제자 자공이 묻는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함이 없다면 어떤지요?” 그러자 공자님께서 말씀하신다. “그쯤이면 괜찮다고 할 수는 있지. 그러나 가난하지만 예악을 공부하고 부자이지만 예를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지” 그러자 자공은 말한다. “그렇다면 공자선생님 말씀인즉슨 말을 할 때 옥을 쪼듯 다듬듯 갈 듯
[용인신문] 훈민정음은 누구나 쉽게 쓰지만 제자원리나 창제배경, 원리 등을 알고 쓰는 이는 많지 않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누구나 볼 수 있게 아주 쉽게 쓴 안내서이다. 훈민정음의 구성은 세종대왕의 서문, 예의편, 해례편, 정인지의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한문을 잘 모르더라도 글의 의미와 의도를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드러내놓고 할 수 없었다. 사대부는 표면적으로 중국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창제를 반대했지만 사실 기득권을 내놓기 싫다는 이유도 있었다. 백성들에게 그간 누리던 특권을 내줘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굴되던 1940년에도 발굴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일본이 지배하던 시기에 우리 말을 지켜줄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훈민정음은 우주를 담고 면면히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훈민정음, 특히 그 창제 원리와 쓰임새를 적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렇게 비밀스럽게 보관되고 전해졌으나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
[용인신문] 조선 세종 시대에 강희맹(姜希孟)이란 문신이 있었다. 이 사람은 중국의 대 문장가 정치가 문필가에 비유되면서 당시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던 희대의 인물이다. 이분은 벼슬아치의 경우 대개 세 종류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대저, 벼슬살이에 3품(三品)이 있으니, 내 한 몸의 진퇴를 세상 형편에 따라 가벼이도 하고 무겁게도 하는 사람은 상품(上品)이요, 도덕은 비록 성현(聖賢)에는 미흡하나 문무(文武)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어짊을 감추지 않고 절개를 지켜서 굽히지 않는 사람은 그다음(中品)이며, 공손하고 근검하며 스스로를 재고 날마다 받을 것이나 계산하는 자는 벼슬살이로서 하치(下品)에 속하는 것이다.』< 해동잡록 권2> 이상의 기준으로서 1, 2품에 비견될 만한 역사적 인물을 찾는다면, 고려 말의 포은 정몽주, 조선시대의 세종대왕, 맹사성, 이순신, 다산 정약용, 안중근 급의 위인이라면 무탈할 것 같다. 이외에 다수의 인물이 있겠지만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이나 관료사회에서는 하품에 드는 정도만 하더라도 양반 소리 들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영도하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지도자로 추앙을 받을 만한 위정자가
시체공작소 이용훈 한 시절 이름을 가진 자들이 머물렀던 곳 찌든 추방의 냄새가 풍겨 비명은 공허해 허공에 맴돌 뿐 음습한 소독내 낡은 철재 침대 흰 벽으로 그자를 묶었지 손 좀 내밀어주오 불러도 누운자는 신원 미상 일어나질 않아 길 위의 생활자는 짙은 그림자 속 내계의 삶이라 이용훈은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도서관과 관련된 분야의 일을 했다. 「시체공작소」는 시체를 보관하는 냉동실의 풍경을 노래한 시다. 냉동보관실은 시취와 음습함이 차 있는 곳이다. 소독액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은 철제 침대와 흰 벽이 전부다. 왜 시체의 손발을 묶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아마도 입관을 했을 수도 있음) 죽은 자는 손을 내밀어 달라고 하는 유족의 울음을 듣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짙은 죽음의 그림자 속의 내 세계를 지니고 산다. 창비 간 『근무일지』 중에서. 김윤배/시인
[용인신문] 마북동 인근 공원에는 몇 마리의 길고양이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중성화 수술이 된 상태입니다. 시는 공원 내에 급식소 1곳을 설치해 주었지만, 이는 현재 살고 있는 개체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때문에 주민 몇 분이 급식소 두어 곳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박스를 등산객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하고 청소 등 관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시 푸른공원사업소는 누군가의 민원을 이유로 주민들이 설치한 시설물을 철거했습니다. 현행법 상 공원 내에 사제 시설물을 설치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반면 경기도 동물보호 조례에 따르면 길고양이 등 동물들의 생명권이 훼손 박탈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사람의 혐오감정으로 야생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 조그만 동물의 급식소와 집을 철거하는 것은 너무 몰인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원관련법에 따라 사적 시설물을 설치가 안 된다면, 추가급식소와 쉼터박스 등을 지자체에서 설치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용인신문] 매년 쌀소비량이 줄고 있다는 뉴스는 꾸준히 들리지만, 정부의 장기대책은 없는 모양이다. 수입쌀이 꾸준히 풀리고 있고, 과잉 생산된 국내 쌀들을 일정 부분 사들여 창고에 보관하는 거 말고는 없단다. 올해 산지 쌀가격은 20년 전 가격으로 회귀했다고 한다. 시름에 찬 농민들이 정부의 후속대책과 근본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익어가는 황금 들판을 보며 마냥 흐뭇해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글·사진: 황윤미 본지 객원사진기자>
[용인신문]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발 욕설과 비속어 파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윤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조문과 장례식 참석, 유엔총회 연설, 캐나다 방문 목적으로 7박 7일간의 외교활동을 마치고 귀국했다. 물론 김건희 여사도 동행했다. 윤 대통령의 외교성과는 초라했다. 여왕의 빈소는 조문하지 못했고 장례식만 참석했다. 기시다 일본 총리와 회담은 윤 대통령이 찾아가 30분간 약식으로 진행하였고 사진만 한 장 찍었다. 일본은 회담 자체를 부인했다. 약식 회담이 아니라 ‘간담’이었다는 것이다. 간담은 차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한국 대통령이 찾아와서 마지못해 차 한잔 마셨다”는 말과도 같다. 일본에 이런 대접을 받은 대통령은 한일수교 이후 처음이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부터 8·15해방까지 40년간 우리 민족과 강토를 강점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협정의 대가로 달랑 3억 달러(4200억 원)를 배상하고 40년 식민 지배를 청산했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트집 잡아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내팽개치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목을 매고 있다. 폴란드는 9월 1일, 독
[용인신문] 민선 8기 임기 초 골든타임의 중요성에 대해 지난 호 칼럼에 썼다. 이번엔 용인신문을 통해 지속해서 보도해온 지역 현안 몇 가지를 되짚어본다. 1982년 용인군청사로 개청한 현재의 처인구청. 2006년 안전진단 D등급, 공공청사 사용 불가 판정. 하지만 16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설물 보강 예산 30억 원을 투입한 후 운영 중이다.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해서 돌아나가는 민원인이 부지기수다. 민선 시장 후보마다 신축 또는 이전을 단골 공약 메뉴로 발표하는 문화재급 공공청사다. 용인 육군항공대, 일명 포곡항공대 이전문제가 불거진 건 20년 전. 포곡읍 전대리 일대 30만㎡(10만여 평) 부지에 47년째 주둔 중으로 부대 반경 4㎞ 내 지역은 군사시설보호법 적용 구역이다. 국내 최대 위락시설인 에버랜드가 옆이지만, 관광객 낙수 효과가 거의 없다. 2001년부터 이전을 요구하는 시민청원이 시작됐다. 2015년 용인시와 국방부가 ‘기부 대 양여사업’ 협의를 진행했지만, 민선 7기 들어 중단됐다. 이 문제도 역대 국회의원과 시장 후보들의 선거 공약 1순위였다. 대표적 선심성 행정은 ‘공원일몰제’다. 2019년, 당시 백군기 시장은 2025년까지 실효를 앞둔 장
[용인신문] 공자는 약소국 정나라에서 26년간 재상을 지내면서 최고의 복지국가로 만든 명재상 자산 공손 국교를 이렇게 평했다. 행동에 공손함이 있으며, 섬김에 공경함이 있으며, 백성에게는 은혜가 있으며, 백성을 부림에는 의가 있었다. 한번은 향리의 촌로가 얕은 강을 사이에 두고 저편 마을로 가기 위해 바짓가랑이를 걷어 건너고자 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수레에 태워 강물을 건네준 일이 있다. 군주 다음가는 2인 자가 그야말로 시골 백성을 자신의 수레에 직접 태워서 강을 건네주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도 남을 미담일 수도 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공자의 평가대로 그는 백성들에게 은혜로운 건 맞다. 그러나 맹자의 시각은 다르다. 정치가는 그러한 사소할 것 같은 저렴한 몸짓이 아니라 다리를 놔 줘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언제고 백성들이 걸어서 혹은 수레로 그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맹자의 징책이다. 맹자가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보여주기식 쇼가 아닌 바른 정치 하라는 거다. 문제는 바른 이라는 게 백성들에게는 쉬운 일상인데 정치하는 저들에게는 그리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사실 정치라는 것은 크게는 남을 다스리는 행위이지만
새벽강 신동호 눈이었던 날이 지나갔다 삼일 밤낮이 걸려 겨우,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서쪽바람이 동쪽 기억을 밀어냈다 강물의 정수리 위로 달빛이 내려와 앉았다 밤낮이 뒤섞이던 세한이었다 신동호는 1965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용악문학상을 수상했다. 「새벽강」은 세한의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눈 내리는 날들이 지나가고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사흘이나 지나서였다. 소식은 아마도 부음이었을 것이다. 강물 위로 달빛이 내려와 앉은 풍경은 차고 시렸다. 밤낮이 뒤섞인 것은 세한 때문이었다.『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중에서. 김윤배/시인
[용인신문] 여왕이 죽었다. 많은 나라의 수장이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고, 어떤 이는 여왕의 죽음에 춤을 추기도 했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의식이기도 하지만 산 자들이 죽은 이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장례식 이야기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7쪽) 이 얼마나 모순적인 발언인가. 아버지가 죽었다면 상실감과 슬픔으로 가득해야 마땅하겠지만 고아리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덤덤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는 너무 진지했고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은 웃었다. 빨치산이었던, 사회주의자였던, 감옥에 갔던, 감시받던 아버지. 죽은 아버지와 조문객을 위해 떡을 비롯해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이고 밥을 차린다. 찾아온 이들은 밥을 먹으며 죽은 이를 추억하고 남은 이야기를 한다. 가장의 자리가 부실했던 가족 이야기나 평생 아버지와 원수로 지낸 작은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의 담배 친구 혹은 술친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장례식은 애도를 거쳐 축제의 분위기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빨치산에서 아버지가 된다. 그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진지하고 무거웠다면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언어는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