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장만옥은 1964년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여배우다. 2005년 중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배우 1위에 뽑혔다. 장만옥은 아시아권의 영화배우로는 드물게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영화제와 칸영화제에서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했다. 베를린영화제에서는 1991년 롼링위(阮玲玉)로 여자연기자상인 은곰상을 받았고 2004년 ‘클린’으로 칸영화제 여자 연기자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영화팬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는 화양연화(2000년)와 첨밀밀(1996년)이다. 장만옥은 화양연화에서 30벌에 달하는 전통의상 치파오를 소화하였다. 가정이 있는 중년 남녀의 애절한 로맨스를 그려낸 화양연화는 불륜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양연화는 유럽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인데 왕가위 감독은 장만옥이 입고 나오는 치파오의 변화로 영화의 촬영씬을 구분하였다. 상대역인 양조위는 화양연화로 2000년 칸영화제 남자 연기자상을 받았다. 장만옥은 아비정전(1990년), 열혈남아(1988년), 동사서독(1994년), 영웅: 천하의 시작(2002년)과 청사(靑蛇: 1
용인신문 | 배우 한효주는 나의 한국어 공부에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다. 러시아에서 음대를 졸업한 나는 한국어 어학당에서 한국어 6급 과정까지 마치고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학년으로 편입학하였다. 이문열의 소설을 집중적으로 보면서 한국어 문장을 공부했고 회화는 TV 드라마 사극(史劇)에 의존했다. 당시 한효주라는 여배우가 나오는 <동이>라는 역사 드라마가 인기였는데 60부작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10여 회부터 본방사수(本放死守)하였고, 이전 회차는 다시 보기로 몰아서 감상했다. 법도를 따져서 말하는 궁중 언어는 내가 고급 한국어를 익히고 한자를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효주는 172cm로 173cm인 나와 키가 거의 같다. 그래서 더 정이 갔는데 2012년 개봉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극장에서 보고 드라마와는 색다른 감동(感動)을 느꼈다. 이병헌의 연기가 특히 좋았고 중전으로 나오는 한효주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도 대단했다. 광해를 보고 한효주가 참 한국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배우라는 것을 실감했다. 한효주가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보았는데 ‘뷰티 인사이드’와 ‘쎄시봉’이 인상 깊었다. 그렇지만 광해
[용인신문] 동양인이 가장 선호하는 미모를 갖춘 ‘미녀의 肖像’ 장쯔이(章子怡) 장쯔이는 1999년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로 전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당시 20세의 장쯔이는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면서 한국의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쯔이는 와호장룡(2000), 영웅(2002), 연인(2004)에 출연하면서 글로벌 월드 스타로 떠올랐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게이샤의 추억’(2005)에 출연하면서 대륙을 대표하는 간판 여배우가 되었다. 장쯔이의 연기는 해맑고 순수하다. 궁리(鞏悧)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보여주지 않지만 장쯔이의 연기를 보면 단아하고 정갈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와호장룡(臥虎藏龍)에서 보여준 장쯔이의 연기는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을 매료시켰고 그녀가 월드스타로 부상하는 데 발판이 되었다. 그에 비해 스티븐 스필버그가 야심차게 제작한 ‘게이샤의 추억’은 영화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이는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감독인 롭 마셜이 일본의 문화의 겉모습에만 심취하여 게이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예고된 결과였다. 장쯔이는 ‘게이샤의 추억‘으로 명성은 얻었지만 연기경력에 오히려 오점을 남겼다. 게이샤의
[용인신문] 일본을 대표하는 신세대 여배우 고마츠 나나(小松菜奈) 고 마츠 나나(Nana Komatsu)는 1996년 2월 16일생으로 올해 만27세다. 요코하마에 인접한 야마나시현(山梨縣) 출신으로 일본 여배우로는 보기 드문 서글서글한 인상에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 새하얀 얼굴에 미소가 상큼하고 매력적이다. 고마츠 나나는 얼핏 보면 백인 혼혈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는 1609년 일본 가고시마의 사쓰마국의 침공으로 복속된 류큐왕국 토착민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류큐왕국은 오키나와섬 일대, 류큐제도(琉球諸島)에 위치했던 일본으로부터 독립된 왕국이었다. 류큐왕국은 일본, 조선,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활발한 교역활동을 벌여 번성했던 소왕국이다. 각지에서 무역상들이 몰려들어 일본 본토인과 별개의 인종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키나와에는 미인이 많다. 고마츠 나나는 일본 여배우로는 큰키인 168cm로 2010년‘비눗방울’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데뷔하여 2014년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와 ‘갈증’에서 부녀지간으로 공연(共演)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거의 1년에 한두 작품씩 출연하면서 2016년 ‘나는 내일, 어제의 너를 만난다
[용인신문] 전지현은 1981년생으로 어느덧 40대 배우가 되었다. 1999년 화이트 발렌타인으로 영화에 데뷔한 전지현은 2000년 만18세의 나이로 ‘시월애’(時越愛)에 출연하면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나는 한국영화 중에 전지현과 이정재가 공연(共演)한 ‘시월애’를 가장 좋아한다. 2001년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에 출연하면서부터 전지현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2003년 ‘4인용 식탁’에 박신양과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그녀는 2004년 곽재용 감독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출연하면서부터 발연기 논란을 부르더니 내리 몇 편의 영화를 말아먹었다. 전지현이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연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영화는 2012년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도둑들’에서 ‘예니콜’역을 맡으면서부터다. ‘도둑들’에서 전지현은 줄타기 묘기를 선보이며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로 거듭났고, 후속작인 2013년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 련정희’역으로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탈북민들이 베를린을 보고 나서 ‘북한사람보다 더 진짜 같다’고 놀랄 정도로 전지현의 연기는 놀라웠다. 나는 베를린을 보고 련정희가 죽는 장면에서 울컥하여
[용인신문]이슬람권의 잉그리드 버그먼, 레일라 하타미 레일라 하타미는 1972년 10월 1일생으로 이란의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201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여배우다. 레일라 하타미는 1997년 영화 <레일라>로 데뷔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176cm의 훤칠한 키에 전설의 명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을 빼어박은 듯 닮은 외모로 이슬람권을 넘어 유럽 영화계에서도 캐스팅 1순위에 올릴 만큼 탐내는 배우가 되었다. 데뷔 이후 이란의 대표적인 영화의 주연배우를 독차지할 정도로 레일라 하타미는 이란 영화계의 국보급 존재로 성장했다. 이슬람권에서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서방의 비판을 받아온 히잡도 그녀에게는 족쇄가 되지 못했다. 프랑스 언론은 ‘그녀가 두르면 히잡도 패션이 된다’고 극찬할 정도로 레일라 하타미는 히잡과 잘 어울리는 여배우다. ‘시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2011년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고 이슬람권 영화에 배타적인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2012년 제84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시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딸에게 보다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민을 희망하는
[용인신문] 꽃미남의 定石(정석)을 보여주는 배우 - 티모시 샬라메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는 1995년생으로 내 아들보다 7살이 많다. 그는 유대계 프랑스인이자 오스트리아계 프랑스인으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복수국적자다. 외가는 러시아계 오스트리아인으로 알려졌다. 나는 티모시 샬라메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른다. 그가 나온 영화는 아역배우로 출연한 ‘인터스텔라’와 ‘듄’을 본 것이 전부다. 그러함에도 남자배우 중 첫 번째로 그를 선정한 이유는 순전히 아들의 압력에 의해서다. 올해 대학 3학년으로 군대에 가기 위해 잠시 휴학 중인 아들이 ‘엄마는 왜? 여자배우와 여류감독만 소개하느냐?’고 항의하면서 티모시 샬라메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세상에 아들을 이길 수 있는 엄마는 없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2021년에 발표된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대작 영화 <듄 DUNE>을 감상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아들이 침을 튀기며 칭찬할 정도로 연기를 잘했고 정말 잘 생겼다. 많은 꽃미남 배우를 보았지만 티모시 샬라메처럼 잘 생기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2019년 영화 <작은 아씨들>에 출연한
[용인신문] 아름다운 모델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미야자와 리에 미야자와 리에(宮澤らえ/1973~)는 11세 때 모델로 데뷔하였다. 미야자와 리에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Santa Fe>라는 누드 화보집을 통해서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필자는 화보집을 볼 기회는 없었고 그녀를 알게 된 것은 2002년 작품, <황혼의 사무라이>라는 일본영화를 통해서다. 황혼의 사무라이(The Twilight Samurai)에서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미야자와 리에의 모습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조신하고 정갈했다. 일본영화는 주로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았는데 ‘황혼의 사무라이’를 보고 나서 극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황혼의 사무라이의 출연으로 미야자와 리에는 2004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2015년 종이달, 2017년 행복목욕탕으로도 여우주연상을 받아 모두 3회에 걸쳐 일본 아카데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필자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종이달’에서 미야자와 리에의 모습을 보고 황혼의 사무라이에 출연했던 아름다운 자태와 너무나 달라 놀랐다. 하지만 연기만큼은 최고라 할만했다. 대학
[용인신문]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해방의 기수 나딘 라바키 감독 나딘 라바키(1974~)는 레바논의 배우에서 시작한 이슬람권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여류감독이다. 2007년 카라멜로 영화배우에 데뷔하여 여러 편에 출연했고 감독으로 전향하여 4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나딘 라다키 감독은 2018년 <가버나움>을 발표하여 2018년 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나딘 라다키 감독의 가버나움은 영화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가버나움은 출연자 100%를 길거리 캐스팅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난민 문제에 대해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 보다 사실적인 영화는 단언코 없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여성이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이슬람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감독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가버나움은 미국과 프랑스 독립영화사의 지원을 받아 4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하여 6,45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영화의 수익금으로 난민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다. 가버나움은 제91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에도 올랐을 정도로 작품성과 흥행성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한 빼어난 걸
[용인신문] 아이슈와리야 라이(1973.11.1.~)는 인도의 대표적인 여배우다. 이이슈와리야 라이는 1994년 미스 월드 우승자로 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그녀는 필름페어상 2회 수상자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의 대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아이슈와리야 라이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말했다. 아이슈와리야 라이의 리즈 시절 작품을 보면 그녀의 미모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이슈와리야 라이는 할리우드 영화에도 여러 편 출연했고 발리우드 블록버스터에도 단골로 캐스팅되어 20여 년 이상 인도 영화계를 주름잡은 대스타다. 아이슈와리야 라이는 인도 카르나타카주 망갈로르에서 생물학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이슈와리야 라이의 남편은 아비쉑 밧찬으로 인도의 유명한 배우다. 인도의 브란젤리나로 불릴 정도로 부부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슈와리야 라이는 1997년 ‘듀오’라는 영화로 배우로 데뷔했다. 1999년 아이슈와리야 라이는 그녀를 인도의 탑스타로 만든 영화 ‘스트레잇 프롬 더 하트’(Hum Dil De Chuke Sanam)에 출연하였다. 2002년 그녀가 출연한 영화 데브다스(De
[용인신문]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Adèle Exarchopoulos, 1993.11.22.~)는 프랑스의 배우로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주연인 아델 역을 맡아 2014년 제66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이하 아델)는 공동 주연인 레아 세이두와 함께 연기자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당시 아델의 나이 만18세로 최연소 황금종려상 수상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황금종려상은 칸영화제 최고의 영화에 수여되는 작품상으로 감독이 받는다. 미국의 아카데미는 작품상을 제작자에게 수여하지만 칸을 비롯한 3대 국제영화제(칸, 베네치아, 베를린)는 오직 감독을 대상으로 수여해왔다. 영화 감독에게는 3대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영예였다. 특히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것은 모든 영화감독의 로망이었다. 이렇게 권위 있는 황금종려상이 연기자에게 수여된 것은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주연배우 두 명에게도 수여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는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다른 부문의 상을 수상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그래서 주연배우들은 최고의 연기를
[용인신문] 여성 해방의 선봉 셀린 시아마 감독 셀린 시아마는 1978년 11월 12일에 태어난 프랑스의 여류감독으로 레즈비언이다. 감독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권리를 행사한다. 셀린 시아마의 대표작은 2019년 칸영화제에서 한국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과 황금종려상을 놓고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de la jenue fille en feu)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이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 감독이었다면 확실하게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에게는 그녀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이 행운이었다. 작품성만 놓고 따지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기생충’보다 뛰어난 것이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도 그 점은 인정하고 있다. 칸영화제 측에서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대신할 동양권의 감독이 필요했고 봉준호가 가장 적합했다. 봉준호의 영화는 칸영화제도 절대 무시할 수 있는 흥행성을 갖추었다. 비슷한 조건이면 굳이 자국(自國)의 영화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수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칸영화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에 이어 동북아시아 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