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소통은 태초부터 불가능했다. 야훼의 말을 듣지 않은 인간의 고통은 창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다. 인간의 몸은 완벽한 소통이 불가능한 개별화된 존재다. 대체 불가한 고유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고유한 존재들이 만나는 세상에서의 언어는 ‘공통의 언어’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바벨탑은 신에 의한 통제를 거부했던 자의적 인간들의 자발적 투쟁의 산물이다. 인류는 단 한 번도 공통어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세계는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 만약에 한가지 의미의 언어만 존재한다면 어떤 세상일까. 완벽한 지배를 생각하는 독재자는 ‘하나의 언어로만 소통’되는 세상을 꿈꿀 것이다. 독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견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단일한 사관을 강조하고, 각종 현안에 관한 국민들의 발언을 ‘개념 없다’, ‘선동이다’ 라며 냉소하며 차단하는 것은 독재적 사고의 발현이다. 원래 소통(疏通)의 소(疎)는 ‘통하다, 막힌 것이 트이다, 친하지 않다, 멀다’라는 양립의 뜻이 있다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친하지 않은 것’의 관계를 넘어 ‘반국가적’으로 몰아간다면 자의적 인간의 자발적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동서고금의
[용인신문]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이 있고, 국민이 표로 몰아준 ‘권력’까지 있으니 나라를 다스리고 국가를 통치하는 일,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대통령도 행정부 수반이기에 행정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를 통치하는 일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니 통치행위임이 틀림없다. 통치행위는 행정행위를 뛰어넘는 공적 역할이기에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막강한 권력을 갖고도 정작 그에게 권력을 부여해준 국민이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춥고 배고프다면 큰일 아닌가. 정치의 기본은 국민의 등이 따습고 배부른 데서 시작된다. 이는 곧 정치가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신뢰라는 말로 통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거시적 계획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현 정권에 대해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식의 사후 확증편향이 강한 느낌이다. 이런 학습의 바탕에는 사람 성품의 기본적 근간이 되는 도덕과 윤리가 있다. 곧 정직하지 못한 정권에 대해서는 국민이 냉소를 보낸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형성된 끼리끼리만 잘 먹고 잘사는 거짓말 정치에 대한
[용인신문] 2년 전 광복절 카자흐스탄에서 유해가 봉환되어 대전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영면에 드신 홍범도 장군의 영혼이 잠 못 이루고 있다. 친일이 훈장이 되고 항일은 시대에 역행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구태로 매도되는 조국의 모습을 보기 위해 철천지원수 일제와 싸웠는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해도 해도 너무한다.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한덕수 국무총리가 밝혔다는 뉴스보도를 봤다.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철거된 자리에 맥아더 흉상을 설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홍범도 장군이 소비에트연방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 때문이라고 한다. 장군은 1895년 명성황후가 일제에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포수가 되었다. 이후 의병 활동에 투신하여 일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쳤다. 장군은 1937년 스탈린의 조선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다 해방되기 2년 전인 1943년 이국땅에서 작고하였다. 장군이 고국을 떠나 항일운동의 근거지를 만주와 연해주로 옮긴 것이 1908년, 장군의 유해는 무려 11
[용인신문] 덥다 더워. 절기는 서늘함 깃드는 처서處暑 넘어 찬 이슬 내린다는 백로白露로 가고 있는데도 더위는 지긋지긋 계속되고 있다. 귀청을 찢어대는 매미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뉴스들이 더욱 덥게 한다. 더 이상 못 참고 막말로 뚜껑이 열릴 지경이다. 폭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지하도 참사와 최후진국 같은 잼버리대회 국제 망신. 연일 터져 나오는 묻지 마 칼부림 사건과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꼴 보기도 역겨운 정쟁政爭 등등이 뚜껑을 열리게 만들고 있다. 계속되는 더위와 흉악한 세태에 창조적 활동은 할 수 없어 일단 접고 우리네 한국인 마음과 문화의 근본은 어떠한가를 다시금 공부하고 살피고 있다. 신라 당대 국제적 지성 최치원은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했다”고 현전하는 우리 최고 역사서 <삼국사기>는 쓰고 있다. 최치원은 풍류를 불교, 도교, 유교 삼교를 본래부터 포괄하고 있으면서 (實乃包含三敎) 우주 만물과 접하여 교감하며 서로서로 살려내는 접화군생接化群生 도라고 했다. 하여 인간은 물론 우주 삼라만상과 더불어 순조롭고 신명 나게 살며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도 풍류에서 나왔을 것이다.
[용인신문] 말(언어)과 몸은 대립하지 않는다. 말(언어)에 의해 몸(물질)은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 행위(말)가 존재(몸)를 가능케 한다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모두 인식의 배설물이다. 배설하는 주체가 몸이므로, 말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집약된 결정체이다. 그런 점에서 78주년 광복절 경축식의 윤석열 대통령 기념사가 몸의 말이 아니길 바란다.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이라고 말한 것은 즉각 곳곳에서 논란이 됐다. 특정세력의 지지를 받는 정파성을 내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역대 대한민국 광복절 기념사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발언이기에 융합의 언어를 얼마나 고민하며 우선했는가를 볼 수밖에 없다. ‘공산 침략에 맞서 유엔군과 함께 싸워 우리의 자유를 지켰다’라는 말을 억압의 일제 치하 35년을 이겨내고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 날에 듣자니 심란했다. 이날은 현충일도, 6‧25 전쟁기념일도 아닌 광복을 경축하는 자리였으니까. 역대 대통령 모두가 주장했던 일본 정부의 과거사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발언도 없었다. 징용과 징병 등의 강제 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화재 약탈과 독도 침탈에 대한 언급 역시 한마디도 없었다. 그간의 분위기
[용인신문] 민주주의의 꽃은 뭐니해도 투표다. 그 정점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 나라의 강성과 사회의 안녕과 국민의 윤택함을 책임질 수 있는 단 한 명의 적임자를 뽑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슴 떨리는 일임이 분명하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백성은 백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뭇 백성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차라리 수퇘지가 새끼 낳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한번 임금이 되면 죽는 날까지를 넘어 자손 대대로 임금이 된다. 천하에 거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자리. 그런 임금일수록 분명하게 아는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공포 외에는 없다”이며, 그 행동강령으로 “가장 무서운 권력은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임금일지라도 홍수만 나도 임금이 무능하여 하늘이 벌을 준다고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쯤에서 임금은 백성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부덕의 소치를 읊조리곤 했다. 참으로 어두웠던 시대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어지간한 홍수쯤이야 충분히 통제권 아래 있다. 그럼에도 나라 안에 물난리로 국민이 화를 당한다면 이는 무엇으로도 발뺌할 수는 있겠으나 인재인 것은 분명하다.
[용인신문] 아주 오래전인 414년.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6.39m 높이에 37t의 거대한 비석은 고구려 역사의 결정체이다. 광개토대왕은 영토확장뿐만 아니라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렸다. 비문에 나와있는 내용의 일부이다. “대왕의 은혜와 혜택이 하늘에까지 이르고, 대왕의 위력은 사해에 떨치셨다. 또한 적들을 쓸어 없애셨으니 백성들은 평안히 자기 직업에 종사했고, 나라가 부강하니 백성이 편안했으며 오곡마저도 풍성하게 익었다.” 고구려인의 평가를 고려하더라도 광개토대왕이 얼마나 백성들에게 사랑받은 임금이었는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누군가에게 맞는 말이고, 누군가에게는 관심도 없는 말이다. 광개토대왕을 알고 있는 국민은 민족을 아는 국민이다. 그렇다고 민족이 국가를 세운 것은 아니다. 역사 속의 우리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을 들먹였다. 다수의 국민은 기꺼이 국가와 민족을 일체 시키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역사를 모르는 것’과 별개로 병역의 의무에 대해서도 국민 대다수는 충실하게 부역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민족주의 기원과 전파>에서 “근대 민족
[용인신문] 오송에서 지하차도에 물이 범람하여 순식간에 14명의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이번 수해로 전국에서 7월 19일 기준으로 50명이 사망·실종하고, 111개 시군구에서 1만 597가구 1만 6490명이 대피했다. 이번 수해는 천재지변에 인재가 겹쳐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천재지변이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은 최악의 폭염이 덮쳐 저소득 노동자가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일상화되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산업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강도 높은 ‘탄소중립정책’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21세기 말이 되면 지구는 종말적 재앙을 맞을 것이 확실하다. 남극대륙은 1만 3660㎢로 오세아니아 대륙의 1.64배 크기다. 남극대륙은 두께 3000여 미터에 달하는 얼음과 눈으로 덮혀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급속하게 녹고 있다. 기후변화를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세기말엔 해수면이 얼마나 올라갈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시대를 마감해야 한다. 문제는 저개발 국가다. 이들에 대한 책임은 선진산
[용인신문] 권력을 즐길 줄 아는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국민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민의 아픔에 위로까지는 아니어도 함께 아파하지 못하는 권력이라면 그건 병든 권력이다. 권력의 가장 큰 실수는 말은 풍성한데 그 말에 대한 증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거다. 이런 권력일수록 자칫 독선이나 아집에 빠질 위험이 크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주권재민의 자유민주공화국이다.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국가가 국가법으로 명시한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 2항은 이렇게 명토 박는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를 바꿔말하면 권력을 가졌다는 말은 국민 개개인으로부터 일정 기간 권력을 대신 행사해 달라고 위임을 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을 대신해서 행사하는 자들을 일러 우리는 선출직 정치인이라 부른다. 선출직 정치인은 위임받은 권력을 잘 사용해야 한다. 권력의 최고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그럼에도 나라의 주인은 여전히 국민이고, 대통령은 국가를 운영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일 뿐이다. 권력의 수장인 동시에 국민에 대한 공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만약에 대통령 이하 기관의 수장
[용인신문] 정부는 시장원리에 따른 교육개혁(안)을 내세워 입시제도의 개편을 모색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고교학점제는 교육부의 명문고 육성정책과 맞물려 있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학입시를 골간으로 하는 교육제도는 누더기가 될 만큼 개악(改惡)을 거듭해왔다. 역대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교육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미국과 일본은 경쟁 원리에 따라 대학과 고등학교의 서열을 인정하는 방향의 입시제도를 채택했다. 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인 유신시절에 고교평준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입시제도도 그에 맞게 개편되었는데 어느 것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뜯어고치기를 거듭해왔다. 미국은 사교육을 육성하기 위해 공교육을 철저하게 희생시킨 나라다. 공교육의 골간인 중등교육제도를 보면 공립학교가 사립학교에 맥을 추지 못하고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시장원리에 따라 교육을 산업(産業)으로 분류하는 나라다. 영국은 수 세기 전부터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여 대학을 대폭 늘리기보다 명문 학교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반면 미국은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면서도 엘리트 교육에 중점을 둔 사립학교의 지원과 육성에 주력했다. 한국은
[용인신문] 할머니는, 내게 역사였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게 된 것의 8할은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는 지나간 것들을 구구절절 읊조렸다. 그녀는 음유시인이었고, 때론 판소리 명창이었다. 손자가 유일한 관객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조각처럼 떠오를 뿐이다. 징용으로 끌려갔던 할아버지와 동학농민운동으로 풍비박산 난 친정. 6.25전쟁때 비행기의 오폭으로 오른팔을 잃은 이야기. 오래전 그 시절부터였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지시살지(然至是殺之), 시년이십육(時年二十六). 조선 성종 때 고령에서 태어나 연산군 때 죽은 박은에 대한 기록이다. 지난 며칠간 박은의 붓과 기록자의 붓을 이해하고자 마음을 쏟았다. 고작 열 글자로 남겨진 박은의 졸기(卒記)가 서러웠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두 덧없기 짝이 없지만, 잔인한 죽음도 있는 법이다. 박은의 붓은 붓으로서 꼿꼿하다. 이 명쾌한 단순성이 그가 지닌 붓의 무서움이었다. 그의 생애가 처절한 아픔으로 다가온 이유를, 이제 겨우 조금 알 것 같다. 기록자의 붓끝이 짧아서가 아니다. 혼탁한 시류 속에 살기를 바라지 않았던 박은에 대해 최고의 찬사
[용인신문] KBS는 ‘오늘 당신 식탁의 60%는 다국적기업이 차렸습니다’라는 뉴스를 내보냈다. 2022년 11월 5일 9시 뉴스를 통해서다. 국제곡물시장은 ABCD라는 4개 메이저기업이 80%를 장악하고 있다. A는 ADM(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B는 BUNGE(벙기), C는 Cargill(카길), D는 LDC(루이드레퓌스)를 말한다. 이중 루이드레퓌스 컴퍼니(LDC)만 프랑스 기업이고 나머지 3개는 미국의 곡물유통기업이다. 이들 곡물기업은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년의 역사를 가졌다. 문제는 이들이 세계 곡물 유통의 80%를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들을 통해 60%를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현지에서 곡물을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운송까지 일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말이 좋아 담당이지 사실상 곡물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쌀이 남으니까 곡물의 자급도가 60~70%는 될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을 차리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곡물은 쌀도 밀도 아닌 옥수수다. 2020년 옥수수 1,165만 톤이 국내에서 소비됐다. 우리나라 연간 곡물 수요량(2,132만 톤)의 55%를 옥수수가 차지하고 있다. 식량으로 소비하는 쌀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