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초반에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그때도 국민감정은 연일 촛불 시위로 이어졌고,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국민심판의 후폭풍을 맞아 총선에서 참패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를 통해 느꼈던 것은 대통령도 잘못하면 정치권이 탄핵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국민감정을 거슬린 정치권은 반드시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필연적 교훈이었다. 대통령직 권한까지 몰수당했던 노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판결로 복귀를 했지만, 그 후유증과 상처는 임기 말까지 계속됐다.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국민적 저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노 전 대통령은 그 이후 미국과의 FTA비준을 체결했고, 남북정상회담 등을 개최했다. 무엇보다 임기 말 터트린 취재선진화방안은 여론을 악화시킨 최고의 악수로 평가됐다. 그럼에도 그때는 특정 집단들과의 다툼이었기에 일반 국민들은 경제문제이외엔 큰 관심도 저항도 없었다. 그는 오직 역사의 평가만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 역시 싸늘했던 민심이 왜 두렵지 않았을까. 입법·사법·행정에 이어 제4부라고 일컫던 언론 눈치 안볼 정치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여론메이커인 조·중·동이 임기 내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으니 정부인
얼마 전 용인 명지대학교 종점에서 광화문 행 5005번 버스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평상시 서울 갈 때는 자가용을 타고 다녔지만, 그날은 버스를 타고 싶었다. 취재차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일행들과 저물녘에 도착한 청계천 광장. 콘크리트 옹벽사이로 네온사인의 물줄기가 흐르는 청계천엔 젊은 연인들과 남녀노소 군중들이 물길을 따라 거닐었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의 남자들도 보였다. 그런데 기자는 청계천 풍경을 볼 때마다 완벽한 인공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프랑스 파리를 관류하는 센 강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용인의 경안천만 보다가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청계천이 아름다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서울의 밤은 더욱 현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토요일 밤이기도 했지만, 촛불문화제 행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거리를 걷다보니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기갑 의원이 단식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막사 앞에서 군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이 유명세를 실감케 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던 서울역으로 자리를 옮기던 중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바이올린 대신 쥐덫
바야흐로 지역축제의 시대다. 2006년 말 기준으로 전국 16개 시·도 지자체 내에서 개최하는 지역축제는 1176개였다. 1996년 민선 도입이후 무려 800여개가 새로 만들어졌고, 올해까지 더하면 총 1300개가 넘을 것으로 문화관광체육부는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후죽순 늘고 있는 지역 축제들이 민선 단체장들의 선심성 행사로 전락하는 등 소모성 예산낭비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참가 방문객수가 1000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다른 지역과 소재와 내용이 흡사해 축제의미를 상실한 지역축제들도 허다하다. 이렇게 ‘동네잔치’로 전락한 곳만도 무려 100여 곳에 이른다. 문체부 분석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행사는 10%도 안된다. 민선단체장들은 그럼에도 다음 선거를 의식한 탓인지 지역특성과 지자체 이미지를 홍보한다는 측면에서 끊임없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지역축제로 분류되지 않는 전국 혹은 시군단위 체육·문화·예술행사도 엄청나다. 문제는 지역민들의 참여도다. 매번 주최측만의 잔치로 끝나거나 중복성 논란이 많은 행사들도 부지기수다. 과연 그 많은 행사가 지역민들의 참여도와 삶의 질 향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검증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
12·12 쿠데타를 일으켰던 신군부가 언론 통폐합을 시도했던 기본 목적은 부패 언론인 추방이었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언론의 체질을 저항 체질에서 순응 체질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권력 유지를 위해 박정희 정권 시절보다 더 조직적이고 가혹한 언론 통제를 시도했다. 1980년 11월14일 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채택했던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 은 자율 형식을 가장한 언론 통폐합으로 한국 언론의 전반적인 구조를 바꾸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중앙지는 6개로 한정했고, 지방지는 1도 1사의 원칙에 따라 1개도에 신문 1개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통폐합시켰다. 무려 5개였던 통신사도 연합통신(현 연합뉴스)한개만 남겼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뉴스 통제를 강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은 정통성없는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언론의 굴종만으로도 모자라 적극적인 정권 홍보까지 요구했던 것이다. 신군부는 언론통폐합에 이어 대대적인 언론인 숙청 작업까지 단행했다. 정부의 언론인 숙청 기준은 △부패 언론인 △정치 성향이 강한 언론인 △시국관에 오도된 언론인 △언론 검열 거부 운동에 앞장선 언론인 등이었다. 신군부의 제5공화국은 또 언론기본법을 통해 언론을
광우병을 바라보는 정부나 보수언론이 참 딱해 보인다. 갑작스럽게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타결해 놓고, 광우병 파문이 번지니까 불온한 여론의 근원지를 ‘살처분’하겠다고 난리다. 연일 개최되는 대규모 촛불 집회를 국론 분열, 또는 불순한 배후 세력들의 장난으로 몰아가는 물 타기 식 언론보도도 있다. 정부는 차라리 섣부른 협상 타결이었다며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정부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언론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안과 광우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는 오히려 총구를 거꾸로 국민이나 TV방송, 또는 진보 언론들을 향해 겨누는 느낌이다. 어쩌다 TV 방송보다 신문이 더 소극적이 됐는지, 또 권언 유착양상을 띠기 시작했는지 안타깝다. 특히 중앙일간지들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패싸움 하듯 광우병 문제를 엇갈리게 보도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광우병 파문을 잠재우려는 정부와 미국 쪽 주장을 집중 대변한다. 심지어 정부는 신문에서 제일 비싼 1면 광고로 정부와 미국 측 입장을 수차례 대변하다가 국회에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우병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만약에 광
- 백남준 아트센터 준공 기념식에 즈음해 - 백남준 아트센터가 우여곡절 끝에 준공식을 가졌다. 7년 전 백 선생 생전에 시작된 사업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사후에 빛을 보게 됐다. 백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분명히 영구 귀국한 후 부인 구보다 시케코 손을 꼭 잡고, 기념식장을 찾아 매우 기뻐하셨으리라.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는 지난해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아트센터 공사현장을 찾아와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녀는 예술적 동지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던 백 선생을 회상하며 천진난만한 회한의 웃음과 눈물을 흘렸었다. 비록 개관식이 늦은 감은 있지만 백 선생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백 선생의 영혼도 이날 준공 기념식장을 찾으셨을 게 분명하다. 백남준의 새로운 탄생은 이제 시작이다. 그의 예술세계를 통해 용인시는 이제 ‘상상력의 도시’로 바뀌어야 한다. 경기문화재단과 백남준 아트센터는 오는 10월 세계최고의 ‘백남준 비엔날레’를 계획하고 있다. 그의 예술적 광기와 천재성이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고,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20세기를 이끌었던 천재 예술가 백남준이 살아생전 선택한 곳이 용인시다. 경기도만도
새 정부가 ‘강부자 내각’에 이어 ‘강부자 청와대’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강남 땅 부자’를 일컫는 신조어 ‘강부자’. 오죽했으면 유명 연예인 이름이 신조어가 됐을까. 청와대 핵심 간부들의 평균 재산액은 35억 원. 이중 건물과 토지 등 부동산이 26억원으로 74%에 이른다. 현금만 수억 원씩 보유 중인 재력가들도 있다. 물론 돈이 많다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직자들의 재산증식 방법이 얼마나 정상적이었는지,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초반부터 ‘강부자 내각’ 때문에 국민감정을 거슬러 곤욕을 치른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강부자 청와대’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여기에 일부 비서관들이 각종 투기 의혹을 받으면서 재산공개 사태가 일파만파 번졌다. 요즘은 부동산 투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투기’라는 부정적 용어를 ‘재테크’라는 말로 바꿔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청와대 인사들조차 재테크와 투기를 명확히 구분할 줄 모르는 듯 하다. 고위 공직자들이 실정법이 무엇인지, 국민감정이 어떤지 몰랐다고 말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그 와중에 몇몇 청와대 비서관들은 부동산 투기 의혹뿐만 아니라 탈세 혐의도 받고 있다. 절세를 빌
1992년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후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마라톤. 이 땅에 ‘마라톤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개최하는 마라톤대회에 일반인들이 대거 참가하기 시작한 1997년께부터라고 한다. 그 후 불과 10여년 만에 매년 400여개의 마라톤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마라톤 달리미 숫자만도 300만~4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전 인구 4700만 명을 기준 한다면 9%를 육박하는 숫자다. 이는 성인 10명중 1명이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달리기를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했다. ‘5㎞에서 42.195㎞까지 마라톤’의 저자 제프 겔러 웨이는 “나는 13살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곧 초보자의 열정 즉, 힘든 운동에 대한 매우 특별한 스릴과 내 몸이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에 중독됐다”면서 “일 주일을 달리고 움직일 수도 없이 아팠지만 몸이 회복되자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며 그 후 달리기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달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일종의 중독임을 뜻한다. 설사 본능과 중독은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달리는 현대인들은 점점 늘
미국과 우리나라의 선거법이 크게 틀린 점이 있다면 여론조사 발표 시기와 언론사의 노골적인 후보지지 선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거일에 임박하면 여론조사 결과를 언론에 공표하지 못한다.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은 틀리다. 물론 기사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진 않는다. 사실 보도는 아주 객관적이고 심층적으로 보도한다. 미국 신문의 초창기 역사는 특정 정당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파 신문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100여 년 전부터는 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보도기사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주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문 형식을 취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 신문들은 어떤가. 선거철만 되면 위험하리만큼 교묘하게 특정 정파나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다. 중앙 언론부터 지역 언론까지 이미 정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교묘하리만큼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비일비재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법을 바꿔 공개적 지지를 허가해도 좋을 듯 싶다. 족쇄를 채운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언론보도기사를 아주 객관적이라고 믿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정권교체를 완성한다며 ‘안정론’을,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일당 독주는 역사의 퇴보라며 ‘견제론’을 펼치고 있다. 안정론이든 견제론이든 문제는 ‘부동층’이다. 대선이 끝 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권교체를 희망했던 절반의 국민들조차 불안감에 휩싸이는 분위기다. 새 정부는 설익은 정책으로 비판과 논란을 불러왔다. 그리고 경제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총선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국정 운영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청와대 분석이다. 반면, 야당은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정책을 총선 핫이슈로 등장시키며, 총선 결과 과반 이상 의석을 내줄 경우엔 역사가 퇴보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조바심과는 달리 30~40대의 직장인들이 선거 종반까지 정당이나 후보자 선택을 못하는 등 방관자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부동층이라 불리는 이들은 주권 포기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인다. 부동층이 많다는 것은 이전투구만을 일삼는 정치 혐오증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 활동 인구의 허리 층인 30~40대 직장인들이 부동층이란 점이다. 20대와 50대 이상 부동층도 문제지만,
18대 총선 공식 선거전이 시작됐다. 여야 17개 정당과 무소속 후보 1119명이 지역구 245석과 비례대표 54석 등 총 299개 의석을 놓고 득표 경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유권자들은 헷갈린다. 후보자들은 물론 정당 색깔 구분조차 어렵다. 대선전부터 총선 준비를 해왔던 정당 공천 낙선자들이 대거 친박 연대와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4당 4색을 연출하며, 유권자들을 혼란속으로 빠뜨렸다. 그로인해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가 바뀌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결 구도에서 친박 연대와 무소속 출마자들의 흥행 여부 쪽으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득표력은 당락을 떠나 선거구도 전체를 뒤 흔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여야는 집권 초기를 의식해 안정론과 견제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정당은 모두 권력 투쟁과 공천 후유증으로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젠 정책 부재 정당으로 낙인까지 찍힐 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당 무용론이 인물론을 불러온 것이리라. 유권자들 역시 예년과는 달리 정당보다 후보 개개인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거물급 인사들이 출마하는 서울 지역의 경우 정당 지지
4·9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선거구별 후보 공천을 마무리 했다. 공천 탈락자들은 제3의 정당을 택했거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냥 소속 정당에 백의종군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예상대로 후진성을 면치 못한 한국형 정치판이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정책 대결없이 권력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보스정치의 대결만 남게 됐다는 판단이 앞선다. 한나라당은 대선 승리 후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정권 창출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계파 간에 쌓였던 갈등과 불신은 자유선진당과 친박 연대 등 3개 정당으로 급격히 세포분열을 이뤘다. 여기에 무소속과 제3의 정당을 선택한 집단까지 합치면 4분5열 양상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정책보다는 패거리 정치를 해온 계파주의 정당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집권초기의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역시 불안감이 크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 여부에 회의적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내각 인선 파동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리고 내각과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 코드 뽑기와 한나라당 공천갈등으로 당 분위기를 악화일로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여기에 엎친데 겹친격인 것은 경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