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공공디자인(도시디자인, 경관디자인, 환경디자인) 전쟁 중이다. 아름답고 차별화된 도시를 만들어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관광객 유치 등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가난한 어촌으로 모래 바람만 불던 황량한 두바이. 이젠 사막 한 가운데 스키장이 들어서고 해변에 인공섬을 건설해 해변의 길이가 65㎞에서 1500㎞로 늘어났다.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사막 속의 뉴욕’을 건설한 것이다. ‘늙은’ 유럽도 다시 태어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프로젝트’를 통해 파리를 유럽 관광과 산업의 중심도시로 만들었다. 프랑스는 맥도널드 간판색이 도시디자인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간판조차 달지 않았다. 바로 이 같은 고집이 파리를 세계적 관광지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현란한 간판문화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시는 쇠락한 공업도시에서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술관 주변은 대형 호텔과 컨벤션 센터, 그리고 공연장 등이 집약된 ‘문화벨트’로 탈바꿈하고 있다. 아시아에도 도시디자인 바람은 뜨겁다. 중국 상하이시의 푸둥은 차별화된 도시디자인 덕분에 세계적인 경제도시로 성장했다. 그런데 정작
얼마 전 서울 강남에서 시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술 한 잔 하자고 갔던 곳은 양재천 변. 평소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지나갔던 기억밖에 없던 양재천을 내가 직접 야밤에 걷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으악’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밤 10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늦봄, 아니 초여름 분위기를 만끽하며 양재천을 걷고 있었다. 운동복 혹은 평상복 차림의 수많은 남녀노소들이 양재천의 밤을 누비고 있는 것이었다. 싱그런 수목 사이를 지나 큼직한 징검다리를 건너 양재천 변 즐비한 카페 거리까지 거닐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쭉쭉 뻗어 더욱 아름다운 초록의 메타세콰이어들을 바라보니 씩씩하고 늠름한 도시의 병정들처럼 느껴졌다. 불현 듯 가을단풍 속을 거니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양재천은 이미 연인과 가족나들이의 명소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란다. 그날 밤 나는 무엇보다 천변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전남 담양에서 보았던 그 가로수 길 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양재천의 총 연장은 15.6km.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해 과천을 지나 서울 강남을 흐르는 한강 지류 중의 하나다. 현재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양재천의 생태계는 자연형 하천공법을 적용해 하
정말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눈먼 돈인가? 전국 지자체들은 민·관변 단체를 비롯해 기업· 학교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지방의회의 심의를 받았으니 꼭 필요한 사업에 적절한 예산배정을 했겠지만, 일각에서는 선심성 또는 낭비성 예산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자체들은 지역 연고의 각 대학들과 관학 협력 사업을 많이 펼치고 있다. 용인시 역시 관학 협력을 빌미로 각 대학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 시는 형평성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대학마다 특색에 맞는 사업을 찾아 적게는 수 억 원에서 많게는 수 백 억원에 이르기까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가 미래교육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 등 공익을 목적으로 대학에 사업예산을 지원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객관적인 명분과 공감만 충분하다면 오히려 적극 권장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대학들은 교육보다는 기업적 본질을 우선시하고 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들은 관학 협력을 빌미로 지자체 예산을 끌어낸다. 수많은 국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는 작은 용역사업부터 대규모 프로젝트까지 대학과 연계할 수 있는 사업이 많다. 그러니 지자체들 역시 대학과 손을 잡아야만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한 실
‘잔인한 4월’의 마지막 날 밤, 이 땅의 역사는 또 다시 비극을 맞았다. 오랫동안 검찰과 언론이 주도한 여론재판에 뭇매를 맞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격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일은 공교롭게도 한나라당이 4·29 재· 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국내외 유력 언론들은 새벽부터 김해 봉하 마을에서 실시간 중계를 시작했고, 충격에 휩싸인 국민들의 눈과 귀는 노 전 대통령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던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 하루였다. 많은 언론들이 보도를 했기에 전직 대통령들의 사법 심판 역사를 되짚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1~3대, 1948~1960년)은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인한 4·19 혁명이 일어나자 하와이로 망명을 해야 했다. 최인규 내무부장관을 비롯한 당시 측근들은 사형을 비롯한 중형에 처해 졌다. 윤보선(4대, 1960~1962)전 대통령은 1974년 민청학련 배후 지원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1976년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3·1 구국선언에 참여한 혐의로 징역 8년 등을 선고 받았다. 장기 집권을 했던 박정희(5~9대,
최근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 외 13명이 기초의원 선거구제에 대해 현행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환원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앞으로 1년 여 앞으로 다가온 2010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것으로 보여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다. 현행 기초의원 선거구는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중선거구제로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선거구별로 거의 대부분 1명씩 뽑았다. 그런데 이때부터 작은 선거구를 합친 다음 의원 2~4명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폐해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겨우 한번 선거를 치른 다음 한나라당이 나서서 다시 소선거구제 환원을 추진하는 것이다. 대표발의에 나선 김 의원은 “기초의원 선거에서 중선거구제를 시행하는 것은 선거비용의 증대를 가져오고, 특별히 합리적인 사유 없이 선거구제도의 일관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고 한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기초의원 소선거구제 환원 움직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기초의원 소선거구제 환원 입법안을 즉각 철회하라는 것이다. 애당초 중선거구제로 바뀐 이유는 여야 합의로 망국
《논어의 자치학》을 쓴 강형기씨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를 자원과 예산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즉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예산을 소화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의미다. 기존 지방자치단체들의 활동을 경영이 아닌 운영으로 평가한 대목이다. 지역 주권의 관점에서 볼 때, 지방자치단체에서 전개하는 사업은 지역의 자원과 경제력을 늘려 나가는 경영 활동임에 틀림없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의 기본 임무가 단순 운영자가 아닌 기업행정가라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흔히 공무원들은 스스로 “법을 팔아먹고 사는 직업”고 말한다. 모든 행정 행위를 법률적 테두리에서 진행하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처럼 창조적이고 공세적인 모습보다는 경직되고 소극적이란 의미다. 물론 요즘은 기업이나 전문 기관에 용역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기업지원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기업행정을 전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기업운영을 위해서는 실패와 성공의 노하우를 습득하고 실천해야 한다. 또 기술과 경영, 그리고 영업까지 적극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역발전의 열쇠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 즉 문화적이고 환경을 고려한 지역을 만
4월은 역시 잔인한 달인 모양이다. 2009년 한국의 4월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분야까지 모두 잔인한 달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까지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휘청거렸고, 최근엔 북한 미사일(위성) 발사 때문에 전 세계 이목이 한반도를 겨냥했다. 전 세계가 북한 미사일 문제를 비판했지만, 자력으로 인공위성하나 쏘아 올리지 못하는 대한민국을 보면 분노보다 자괴감에 빠져드는 4월이다. 어디 그 뿐인가. 고 장자연과 박연차 리스트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했다. 고 장자연은 우리 연예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죽음으로 폭로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며 비웃는다. 이 문제만큼은 검·경도 언론도 모두 자애로운 분위기다. 어쩌면 자기 식구 감싸기의 일환인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검찰은 광우병 문제를 다뤘던 제작진을 체포했고, MBC방송국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까지 시도했다. 이에 영국 시사주간지 는 이명박 정부의 기자·PD 체포 등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언론 상황을 ‘희한한 일’로 규정한 후 신랄하게 질타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주목한 이춘근 PD·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체포 사건은 정작 한국 언론이 외면했다. 큰 신문사일수록
100년 전 용인(龍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용인신문이 10년 전 보도했던 을 다시 보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보도 근거자료는 개화기 용인을 기록한 일본어판 사진첩이었다. 작고하신 서지학자 이종학(초대 독도박물관장) 선생께서 제공했던 자료다. 경기도내 수원· 용인· 이천· 여주 등 4개 군에 대한 명승고적 해설과 통계연보 비슷한 내용들이다. 총 60페이지에 52개의 사진이 있었고, 그중 용인자료는 25~30페이지에 걸쳐 사진 4장과 함께 게재됐다. 누가 찍었는진 모르지만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용인군세 약설’이라는 2페이지 기록엔 용인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당시 일문 번역은 고 박용익 선생께서 맡아주셨고, 신문보도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군청소재지인 수여면(현 김량장동)엔 200여 호에 1000여명이 거주했고, 장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장사도 비교적 잘 됐다. 호구 수는 조선인 1만 4000호에 7만 2000여명, 일본인 200호에 400여명이 살았다.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행정구역은 12개 면, 245개리였다. 군 당국은 농업 장려와 연도식림(길가에 나무심기)에 힘을 써 실적을 올렸다. 그밖의
도민들이 직접 뽑는 첫 번째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오는 4월 8일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선거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해 보인다. 대신 지역별로 정치권 인사들이 선거운동에 앞장서고 있어 자칫 정당 대리전 양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기도 선관위에 따르면 유권자 1000명에게 교육감선거 투표여부 의지를 물은 결과 ‘반드시 투표 하겠다’는 응답자는 25.8%에 불과했다. 또 ‘아직 모르겠다’는 50.4%, ‘투표하지 않겠다’는 23.8%였다. 또 4월8일이 도 교육감 선거일임을 처음 들었다는 응답도 52.4%에 달했다고 한다. 그나마도 투표하겠다는 응답률만 보면 부산·전북·충남·대전교육감 선거투표율(15.3~21.0%)보단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해 실시한 서울시교육감 선거 여론조사 투표응답률은 27.9%였지만, 실제 투표율이 15.5%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경기도교육감 선거 투표율도 더 높아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에 잔여임기 1년2개월을 채우기 위한 선거라는 점 또한 유권자들을 더욱 힘 빠지게 만든다. 다음 선거부터 도지사와 시장군수, 그리고 시도의원 등 4대 지방선거와 같은 날 투표하기 위해 만든 고육지책에 불과하기 때문이
세계적인 경제 석학들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끝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도 정부의 재정적자가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경기침체가 심각해지면 국가 역시 빚을 지게 마련이다. 국가의 빚은 미래의 세대들이 떠안는 부담이다. 국채 이자율이 올라가면 경제 안정도 어렵고, 빚을 못 갚으면 나라도 망한다.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경제학 교수는 “정부 채무가 두 배 정도 늘어나면 이후 3년 안에 인플레이션으로 조정 된다”면서 “전 세계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1990년대 초, 일본 정부는 거품 경제가 붕괴되자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책을 펼쳤다. 물론 재원은 나랏빚이었다. 이때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의 200%에 육박했지만, 이후 원금상환은커녕 이자를 갚기 위해 빚을 더 내야 하는 상황까지 됐다. 다행히 현재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은 32.9%로 건전한 편이다. 참여정부 5년간 나라살림 적자는 18조3000억원. 외환위기 수습을 위해 투입했던 공적자금 가운데 회수하지 못한 부분을 국채로 메우면서 생긴 빚이다. 그런데 세계 경제 불황 속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임기 5년간 주로 부자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위기 상황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공직사회의 월급 반납 운동이다. 그런데 자발성보다는 정부정책의 일환인 강제성이 엿보이기에 감동은커녕 공감하기조차 힘들다.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이 같은 이벤트 성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소외계층 지원을 명분으로 3200여명의 공무원 가운데 5급 이상 1000여명만 보수의 1~5%를 반납해도 그 총액은 월평균 약 5600만 원 정도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건복지가족부도 직책별로 2%~5% 범위 안에서 기부를 결의했다. 그에 뒤질세라. 행정부 장·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 약 280명도 1년간 봉급 10%를 뗄 예정이고, 인천시 공무원 550명도 임금 1~5%를 반납한단다. 서울시 역시 공무원들의 봉급 일부와 경상비 등을 절약해 100억 원을 만들 예정이고, 이 돈으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단다. 다른 중앙부처나 지자체, 공기업들도 고통 분담에 동참할 분위기다. 용인시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직, 계약직, 청원경찰 등 전 공무원 2075명을 대상으로 5급 이상 간부 공무원은 본봉의 3%를, 6급 이하 공무원은 연가보상비 5일을 반납해 총 5억8800만원을 반납할 계획이란다. 또 여비와 급양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의 개통식이 열린 대구. 개통식 사진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그리고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등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어느새 40여 년이 지났다. 처음엔 “부유층 유람로를 만들려느냐”, “1인당 GNP(국민총생산)142달러인 나라에서 그게 왜 필요하냐”는 등 국민들이 반대가 심했다. 야당도 반대했고, 외국에서도 시기상조라며 비아냥거렸던 사업이다. 박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던 1964년, 1932년 건설된 본~쾰른 간 아우토반(autobahn)을 시속 180km로 달리며 처음 고속도로를 꿈꿨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출마 선거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건설부 장관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해 12월엔 ‘국가기간고속도로건설계획조사단’이 출범했다. 박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에게 고속도로 건설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었고, 정 회장 역시 박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공기를 앞당기자. 평생 부르짖은 첫 번째 구호이자 전략이다. 나는 당시로는 천문적이라 할 수 있는 800만 달러어치, 1989대의 중장비를 투입했다. 1965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