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3 이면의 무늬 홍일표 개가 개의 꿈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파도의 자세를 이해하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 공원의 가로등은 아무것도 결심하지 않았는데 불이 켜지네 겨울이 명백한 휴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은 내리고 가로등은 끊임없이 어둠의 중얼거림을 거절할 뿐이네 발꿈치에 다른 계절이 눈물처럼 스미는 것 천 년 전 바람이 남긴 말의 각질을 뜯어내며 질기고 딱딱한 공기의 살과 해후하네 나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너의 노래를 들으며 여기는 최소한 거기가 아닌 곳이라고 중얼거리지만 여전히 촛불은 미완의 음악 따듯하게 응고된 슬픔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견디는 것 그 사이 수차례 다녀간 눈과 비 봄과 겨울도 모르는 또 다른 목청의 노래가 발바닥이나 겨드랑이에 서식하는 걸 아직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파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네 5분간, 내가 읽지 않은 파도의 표정이 거듭 쓸쓸해지네 ----------------------------------------------------------------------------- 송년, 홍일표 시인의 시집 『매혹의 지도』를 펼쳐 봅니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명왕성에 라일락이 피는, 혹은 457년 만의 두
오룡의 역사 타파(90) 매천 황현, 그는 애국적 보수주의자 였지 고루한 양반은 아니었다.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국가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러왔는데, 나라가 망할 때에 국난을 당하여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어찌 원통치 않은가?” 내가 위로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고 영원히 잠든다면 참으로 통쾌할 것이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1910년 8월29일, 5백년 왕조의 역사는 허망하게 몰락했다. 황현은 ‘절명시’4수를 남기고 음독 자결한다. 그는 9월 8일 ‘절명시’와 유서를 쓰기 시작하였고, 9일 소주에 아편을 타서 마시고 다음날인 10일 사망했다. 이때 그의 나이 56세였다. 황현은 평생 벼슬하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 과거에 응시하기도 했다. 그는 28세때 보거과(保擧科)에 응시했다. 보거과는 뛰어난 인재를 추천받아 시험을 치르는 별시다. 그는 초시에서 1등으로 뽑혔지만, 시험관은 그가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2등으로 정했다. 민씨세력의 부패를 절감한 그는 그 뒤의 시험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3년 뒤 황현은 가족과 함께 구례로 이주했다. 2년 뒤 황현은 아
아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5년 유독 말잔치가 풍성했던 한해였다. 그만큼 사회적 이슈와 사건사고가 많았다는 반증이다. 긍정보다는 부정이 많았고, 희망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는 게 중론이다. 2015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했던 말은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혼용무도’일 것이다. 신조어 ‘헬조선’과도 일맥상통한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이 합쳐진 말,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뜻한다. 좀처럼 쓰지 않는 최악의 의미를 함축한 말이다. 지난해에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뽑혔다. 세월호 참사와 십상시 국정개입 의혹 등을 빗댄 것이다. 올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지만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 그리고 후반기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 낭비를 초래한 정치지도자의 무능력을 꼬집고 있다. 사자성어는 2001년도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교수진들이 뽑고 있다. 촌철살인의
용인만평
10년의 명불허전 남자의 인생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가슴을 에이는 반전이 있어야 한다. 육조시대 진(晋)나라 좌사(左思)는 자(字)가 태충(太衝)으로 공부도 음악도 뭣하나 빼어난 데가 없다. 당시 하급관리인 아버지 ‘좌희’의 성화로 시를 조금은 쓰게 된 후 1년여에 걸쳐 완성했다는 부가 있는데 제나라 도읍이자 제 고향인 임치를 운문으로 노래한 제도 부제도부(齊都賦)다. 당시 좌사의 부를 접한 묵객들은 “곰도 궁구르는 재주가 있더라.”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말이 오갔다. 못내 서운했던 좌사는 나지막한 소리로 분노를 대신한다. “쳇, 글쟁이가 글로 말하면 됐지(寧書癡唯言書耳)” 그러고서 10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 삼도의 부삼도부(三都賦)다. 좌사가 삼도의 부를 쓴다는 말을 낙양에 와서 벼슬을 살고 있는 육기가 듣는다. 육기(陸機)는 삼국시대 오(吳)나라 승상(丞相) 육손(陸遜) 손자이며, 군사령관 육항(陸抗)의 넷째 아들이다. 동생 육운(陸雲)과 함께 이륙(二陸)으로 불렸고, 고영(顧榮)과 더불어 낙양삼준(洛陽三俊)으로 태강지영(太康之英)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 그였기에 일찍이 그도 삼도의 부를 구상 중에 좌사의 삼도 부 소식을 들은 것이다. 고향에
길눈이
최은진의 BOOK소리 52 사랑은 가까운 곳에서, 거래는 전 세계적으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저자 : 러셀 로버츠(애덤 스미스 원저) /출판사 : 세계사 /정가 : 15,000원 250년 전 쓰여진 애덤 스미스의 의 핵심적인 내용을 현대인의 삶에 맞게 러셀 로버츠가 풀어쓴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서 있는 지금 행복한 삶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그 유명한 이 아닌 에 주목했고, 그 해답을 제시할 책이라 판단한 듯하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이지만 돈을 추구하는 삶의 헛됨에 대해서 설파했다는 점에 의문과 흥미를 가진 저자는 퍼즐을 풀 듯 이 책을 통해서 낱낱이 파헤쳐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모두 담아낸 이 책에는 행복의 추구, 우정, 그리고 미덕에 대한 스미스의 풍부한 식견을 접근하기 쉽게 담아냈다. 애덤 스미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지(1장), 행복의 위한 우선순위는 무엇인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가고 오는 세월도 너그러이 품으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예년에 비해 올핸 첫 눈이 참 늦었다. 11월 말 들어서야 새벽에 빗속의 눈발, 진눈개비가 관측됐다. 기상청은 첫눈으로 공식 확인했다 밝히면서도 첫눈이라 하기엔 쑥스럽다 할 정도로 미미한 눈이었다. 올핸 첫눈이 참 기다려졌다. 가을이 온산을 단풍으로 환장하게 하더니만 여름에 그토록 목말라 했던 비가 늦가을 내내 내렸다. 가을이면 추적추적 무너져 내리는 마음, 그래서 남자들을 추남(秋男)이라 했던가. 유난히 그런 가을을 타는 내게 올핸 더 심했다. 어머니 여윈 고아의식에, 중년을 넘기는 갱년기에,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상심의 삼각파도에 마음은 자꾸자꾸 무너져 내렸다. 그래 우울증으로 빠져드는 이 내 마음을 눈이 내려 가을을 끝내고 하얗게 하얗게 덮어주길 바랬는데. 그러다 12월 3일 이른 새벽부터 펑펑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 초부리 우리 집 베란다에 쌓인 눈을 재보니 벌써 10센티를 넘고 있었다. 이날 전국 곳곳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종일 함박눈이 내렸다. 앞마당 소나무들이 솔가지에 쌓인 눈을 어쩌지 못하고 부르르 떨며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고라(Agora)와 ‘시민소통광장’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2500년 전 고대 도시국가인 그리스 로마의 역사를 곱씹으며 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소통일 것이다. 그 시절에도 공적인 의사소통이나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말이 ‘광장’ 즉, 아고라(Agora)였다. ‘아고라’의 어원은 ‘모이다’로 ‘시장에 나오다’, ‘사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아고라조(Agorazo)’에서 비롯된 ‘시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와 굳이 비교한다면 오일장과의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광장은 시장의 기능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일상생활의 중심이다. 바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2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화두가 왜 또 다시 ‘광장’이어야 하는가. 서울시청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를 둘러싼 충돌과 갈등, 이념 색깔 논쟁 등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 도시국가만도 못한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민주의의가 퇴보하고, 상식보다는 비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회귀를 미래 세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
용인만평
길눈이
최은진의 BOOK소리 51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에 숨겨진 날카로운 비평!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저자 : 움베르토 에코 / 출판사 : 열린책들 / 정가 : 13,000원 에코에게 지적 촉수가 미치지 않은 분야가 있긴 할까? 현존하는 최고의 석학으로 손꼽히는 움베르토 에코가 문학잡지에 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과 그 외의 여러 칼럼들을 모아 놓은 책. 심각하고 진지할 것만 같은 그가 삐딱한 시선으로 빈정대는, 인터넷 논객처럼 웃기는 아저씨로 변신했다.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에세이 형식이라 평소 어렵기로 유명한 그의 책들과는 달리 접근하기 쉬운 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어눌한 말투의 패러디 뒤에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에코 특유의 비판과 역설이 숨겨져 있으니 지적 유희를 마음껏 느껴볼 수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단순히 불평불만에 그쳤던 불합리한 점을 그는 방대한 지식을 총동원해서 제대로 짚어낸다. 모든 순간을 허투루 보는 법 없이 관찰하고 파고 비틀고 표현하고 소통한다. 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