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이 불량한 자세로 공자를 맞았다<원양이사原壤夷俟>. 이 모습을 본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어려서는 껄렁껄렁하더니만<유이불손제幼而不孫弟> 커서는 이룬 게 없으며<장이무술언長而無述焉> 늙어서도 죽지도 않으니<노이불사老而不死> 저런 걸 도적이라 한다<시위적是爲賊>. 이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본 본 자공은 이렇게 후주를 달면서 문장을 끝맺는다. 선생님께서는 작대기로 원양의 정강이를 툭툭 치셨다<이장고기경以杖叩其脛>. 이 글은 논어 헌문 편 46문장에 나오는 전문이다. 공자가 일생을 살면서 제자를 포함해 한 인간을 이 지경까지 몰아 부친 경우는 논어 499문장 중 일곱 문장쯤에 달하는데 그중 단연 압권일 것이다. “네깟 것이 논어를 알기나 하랴” 라며 이등박문에게 소리쳤다는 고홍명의 말 중에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는 독설이 있다 한다. 공자가 원양에게 했다는 헌문46문장의 말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으리. 얼마나 막돼먹고 돼먹지 못했으면 나무 작대기로 정강이를 툭툭 쳐가면서까지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와 같은 일이 공자의 그 사건이 있은 지 장장 2500년이 훨씬 지난
선거법 개정과 함께 검찰개혁의 핵심인 ‘공수처설립’과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패스트트랙(긴급처리제도)’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는 본회의까지 330일 이내에 상정된 안건을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공수처 설립과 검찰개혁입법이 실현되면 검찰 권한은 축소된다. 조직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검찰의 반발도 극심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공수처설립’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상정된 것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평검사들도 검찰의 권한 축소에 조직적인 저항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사’는 개개인이 독립된 ‘준사법기관’이다. 제1공화국 이래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경찰을 지배해 왔다. 수사권의 검경 분리는 줄곧 필요성을 절감해왔고, 논의되었으나 번번이 검찰의 조직적 저항에 흐지부지 되었다. 검찰의 권한은 정보기관과 군부의 권력을 압도한다. 정치권도 검찰의 눈치를 살핀다. 심지어 정권도 검찰의 칼날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 정권 초기에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지만 말기가 되면 그동안 축적된 정보로 칼을 휘둘러 왔기 때문이다. 검찰 권한이 이처럼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린', 입의 호사 ‘다린’은 죽전 단국대 앞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입니다.곳곳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없는 곳이 없지만 ‘다린’은 분위기부터 특별한 곳이랍니다. 단국대 정문을 등지고 첫 번째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모퉁이 단독 건물 ‘다린’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앞에는 낮은 산자락과 맞닿아 있어 계절 따라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요. 아주 가까운 단대 앞 골목인데 멀리 외곽으로 나들이 간 듯 힐링되는 느낌이더라구요.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분위기 너무 좋은 곳입니다. 요즘 어디를 가나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인데 ‘다린’은 주차도 매장 앞 골목에 편안하게 할 수 있어 아주 좋아요. 먼저 주차하고 예쁜 꽃 가득한 골목길 산책하고 식사하면 더 맛있더라구요. 커다란 창 덕분에 실내는 채광도 좋구요,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곳곳이 예술적이에요. 봄이라 여기저기 꽃들이 흐드러지고 봄바람은 솔솔 붑니다. 근교 꽃놀이라도 하고 싶은데 너무 바빠 짬도 안 나고 하루하루 지나는 봄이 안타까웠는데 죽전 ‘다린’이 생각나 다녀왔습니다. ‘다린’은 원래 고암 이응노 화백의 손녀가 운영하던 ‘리경’이라는 갤러리 카페였다가 사장님도 바뀌시
최은진의 BOOK소리 142 평범한 할머니의 세상을 향한 역습!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 저자 : 도로시 길먼 / 출판사 : 북로드 / 정가 : 13,800원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다 갖춰진, 불필요한 폭력 없는 흥미진진한 서스펜스. 이렇게 허당기 넘치는 실수투성이의 귀여운 할머니를 다 봤나? 요즘 말로 병맛같은 스토리로 ‘시간순삭’이라는 말이 뭔지 알게 해 주는 폴리팩스 부인의 매력에 풍덩! 빠질 준비 되셨는가? ‘웃음을 원하건, 스릴을 원하건 폴리팩스 부인이 정답’이라는 뉴욕타임즈의 한줄 평이 팍 꽂힌다. 웃다가 가슴 졸이다가 결국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당신의 시간을 도둑질하게 될 것이다. 요즘처럼 속시원한 해결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답답한 뉴스만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짜릿한 반전이 있는 악의 소탕작전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에드거상 그랜드마스터 도로시 길먼의 대표작.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은 1970년과 1999년에 영화화되었을만큼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35년 전 작품이라 지금의 시각에선 스토리가 어쩐지 익숙하고 새롭진 않을 수 있다. 최첨단 장비와 혀를 내두르는 추리력과 번득이는 발상으로 우릴
<용인신문>
내죄는 무엇일까 김사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주고 흙을 다지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따닥따닥 붙은 콜센터에서 상냥하게 친절하게 보이지 않아도 웃고 보이지 않아도 참아서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직업소개소를 찾으니 학력 미달 경력 없고 나이 많고 애도 있어 손가락 하나로 끌려나왔다 끌려나가도 그 자리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나가지 못한다 네가 죽어도 일을 해야 해서 누가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해서 기약 없는 먼 훗날을 끌어당겨서라도 지금 살아야 해서 촛불을 들 수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쪼들려서, 악착같이, 외로움에, 지책감으로 찌든 수척한 감정들이 들러붙어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는 파란색일까 까만색일까 붉은색일까 내가 여자를 입었는지 여자가 나를 입었는지 나를 찾아 출구를 더듬거리며 오늘을 걷는다만 여자의 시간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김사이는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 공부를 했다. 그의 시가 삶과 밀착되어 있는 것은 그의 젊은 날의 가난과 착취와 분노와 절망과 실의를 견디어 낸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각 연에 배치된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혹자가 노자老子의보원이덕報怨以德에 대한 말을 듣고 공자에게 묻는다. “덕으로 원수를 갚는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공자 답한다. “원수에 대해서 덕으로 원수를 갚아버리면 누군가로부터 덕을 입었을 때는 그 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그러면서 그 답을 주기를 “원한은 내가 바르고 곧게 사는 것, 즉 곧음으로 원수에게 보답하고 내가 입은 덕은 베풀어 주는 덕으로 갚아야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를 후끈 달구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탄핵으로 중도하차한 후 감옥에 있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석방문제다. 더군다나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감옥을 들락하는 지경이다 보니 그쪽을 지지하는 당과 그 추종자들의 입장에서 볼 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에서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논어 자로子路편에 섭공葉公이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孔子가 답한다.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이들은 오게 하면 된다<近者悅, 遠者來>”라는 말이다. 선문답 같은 이 말속에는 관자가 말하는 정치의 요체가 들어 있다. 관자 목민 편에서 ‘정치가 흥하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따르는 데 있고, 정치가 망하는 것
용인신문이 지난 2월 ‘3·1운동 ·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위’ 더불어 민주당 집행위원인 이우현(용인병) 지역위원장을 동행 취재 보도한 중앙아시아 독립운동가와 고려인들이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통해 다시 한 번 집중 조명됐다. 본지는 ‘3.1운동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획 특집으로 일제 강점기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주역인 홍범도 장군이 잠들어있는 카자흐스탄 묘역을 방문 취재했다. 또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1세대와 민족지도자 고 황만금과 둘째 아들 황스타니슬라브씨, 고 김병화와 장에밀리아 할머니를 만났다. 1937년 스탈린 시절,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을 보도하기 위해서였다. 두 달 후 문재인 대통령은 7박8일간의 일정으로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다녀왔다. 문 대통령은 이때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겠다는 뜻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밝혔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크즐오르다에서 서거한 홍범도 장군은 우리 독립 운동사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인물”이라며 “총사령관으로서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고, 내년이면 100년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토카예프 대통령은 “외교·법률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용인동부지사(지사장 오성근)는 지난 17일 대회의실에서 반부패 및 청렴실천 의지를 제고하기 위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행사는 지사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청렴 현수막 게시, 윤리경영실천 결의문 낭독, 시청각 교육 등이 진행됐다. 오성근 지사장은 “인권이 존중되는 건강사회를 실현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윤리·인권경영이 필수”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업무처리로 부패 없는 깨끗한 공단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단은 청렴도 4년 연속 최상위기관으로 선정됐으며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하는 2018년 부패방지 시책평가에서도 1등급을 받아 명실상부한 청렴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용인신문 - 박기현 기자>
계강자는 계손씨로 노나라의 권문세도가 삼가문三家門 중 가장 세력이 강한 집안으로 애공을 도운 공자와는 이를 북북 갈 정도의 원수지간이다. 그렇다고 공자의 사회적 위상이 감히 함부로도, 그렇다고 멀리 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그 어느 것도 마뜩찮게 할 수 없는 그런 관계인데 하필 애공哀公 3년 7월 계강자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다. 당시 계씨 집안의 최고 실권자 兄계손사가 첫 아들이 막 태어남과 동시에 비명횡사한다. 이에 동생 계강자는 이때를 틈타 이제 막 태어난 형의 아들이자 장차 계손씨 집안의 실권자가 될 조카마저 죽이고, 계손씨 집안의 실권자가 된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껄끄러운 관계의 공자를 초빙해 정치에 대해 묻는다<계강자문정어공자왈季康子問政於孔子曰>. “만약 도가 없는 사람을 죽여서<여살무도如殺無道> 도가 있는 사람을 성공시켜준다면<이취유도以就有道> 괜찮지 않겠습니까?<하여何如>” 공자 답하길<공자대왈孔子對曰> “정치를 하면서<자위정子爲政> 사람까지 죽일 필요가 있겠는가?<언용살焉用殺. 論語顔淵>”. 어린 조카를 죽인 것에 대한 공자의 일침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벽제화원 빅소란 죽어가는 꽃 곁에 살아요 긴긴낮 그늘 속에 못 박혀 어떤 혼자 연습하듯이 아무도 예쁘다 말하지 못해요 최선을 다해 병들 테니까 꽃은 사람을 묻는 사람처럼 사람을 묻고도 미처 울지 못한 사람처럼 쉼 없이 공중을 휘도는 나비 한 마리 그 주린 입에 상한 씨앗 같은 모이나 던져 주어요 죽은 자를 위하여 나는 살아요 나를 죽이고 또 시간을 죽여요 박소란은 도시를 배경으로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는 시인이다. 그녀는 사회적 약자와 시대적 아픔을 개성적인 어법으로 끌어안는다. 독자들이 그녀의 시를 즐겨 읽는 이유다. 「벽제화원」은 죽은 자를 위한 화원이다. 산자 들은 죽은 자를 위해 꽃을 바친다. 그러므로 벽제화원의 꽃들은 죽어가는 꽃, 혹은 죽은 자들 곁에 피어 있는 꽃이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떠나고 나서 살아남은 자들이 혼자를 연습하듯이 그렇게 ‘긴긴날 그늘 속에 못 박혀’ 피어 있는 꽃이 벽제화원의 꽃이다. 벽제화원의 꽃을 두고 ‘아무도 예쁘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꽃들도 사람처럼 생로병사의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벽제화원의 꽃은 사람이다. 최선을 다해서 병들어 떨어지는 꽃이어서 아름다운 사람인 것이다.
앵 무 이기인 앵무는 몇 개의 단어로 하루치의 버릇을 벗는다 너는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라지는 농담이야 말을 버리고 소리를 배우는 조롱 속에서 머리를 가슴에 수수께끼를 모이통에 넣어주듯이 오랫동안 가르치지 않는 말을 쏟아 놓는다 너는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라지는 농담이야 농담이 이어붙이는 앵무가 이상하다 안녕하세요 진짜로 안녕하세요 사라지는 느낌도 안녕하세요 안녕은 두 마리로 갈라지는 농담이야 이기인은 시적 실험을 치열하게 하는 시인이다. 그는 언어의 알쏭달쏭한 의미의 추구와 알쏭달쏭한 표현으로 언어규범의 해체를 시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시적 감각과 시적 의미의 의도적인 교란을 통해 착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언어의 규범을 부수려는 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앵무」는 그의 착란이 난센스에 이르는 도정의 시편으로 읽힌다. 이 때의 착란은 사실적이어서 그의 감각과 의미가 뿌리 깊은 착란임을 보여준다. 앵무는 시적 화자와 동격이니 시인이 곧 앵무라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앵무의 말이거나 시적 화자의 말이거나 시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시문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 시문이 수많은 이미지들을 거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