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가 재단 전체 예산의 절반 육박… 연간 100억 원 수준 문화예술 전문인력은 극소수… 대부분 행정직·기능직이 차지 [용인신문] 연간 2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용인문화재단. 직원 140여 명의 인건비와 사업비다. 용인시 산하기관으로 거대 조직인 용인문화재단. 이제 재단 출범 10년 차로 접어드는 문화재단의 역할과 정체성 문제에 대해 긴급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편집자 주> 최근 용인시와 지역문화예술계, 그리고 용인문화재단(이하 문화재단) 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화재단은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전문기관이라기보다는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현재 문화재단 소속 직원들의 인건비는 문화재단 전체 예산의 절반인 연간 100억 원을 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화예술 전문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행정직과 기능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문인력보다는 계약직으로 시작한 정규직으로 인건비 비중만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용문제는 현행 노동법상 현실적으로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 문화재단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전면적인 조직 및 경영진단을 통한 뼈를 깍는 고통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용인신문]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문화도시’ 조성사업 공모에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런데 용인시는 왜 ‘문화도시’ 사업에 공모조차 못한 것인지 안한 것인지 궁금하다. 현재까지도 용인시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공모사업이 필요 없을 만큼 문화인프라가 충분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기에 씁쓸한 마음으로 전국의 문화도시 추진과정을 알아봤다. ‘문화도시’ 사업은 지자체 스스로 문화 환경을 기획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문체부가 포괄적 예산을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2018년도에 발표됐다. 문화도시로 지정되면 도시별 특성에 따라 최대 100억 원과 문체부로부터 자문을 받을 수 있다. 2019년 12월, 1차로 지정된 문화도시로는 경기 부천시, 강원 원주시, 충북 청주시, 충남 천안시, 경북 포항시, 제주 서귀포시, 부산 영도구 등 7곳이다. 또 2차는 12곳 중 예비사업 추진 실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인천 부평구, 강원 춘천시, 강릉시, 전북 완주군, 경남 김해시 등 5곳이 지정됐다. 3차는 역사 전통, 예술, 문화산업, 사회문화, 지역 자율 등 지정 분야를 선택해 문화도시 조성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그 결과, 무려 전국에서
강릉 순두부 맛집을 용인서 만나다 [용인신문]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순두부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까지 모두 만족시키지요. 이번엔 용인에 맛 좋은 순두부집이 있어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강릉 맛집으로 아주 유명한 ‘동화가든’입니다. 용인 ‘동화가든’은 강릉 본점 직영점으로 신갈동에 위치해 있다가 작년 기흥구청 앞으로 이전한 새로운 곳이 위치도 좋고 깔끔해서 훨씬 마음에 들더라구요. 메뉴는 예전 그대로에 굴 순두부만 추가되었는데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다고 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일 유명한 짬뽕 순두부는 적당히 얼큰한 짬뽕에 면 대신 순두부가 들어있는데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으로도 아주 그만입니다. 개인적으로 면을 좋아해서 쫄면이나 우동사리 추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네요. 특허 받았다는 청국장은 무난했는데 밥을 비벼 먹을 수 있게 그릇에 참기름과 김가루가 함께 나와서 강된장 비빔밥처럼 청국장을 적당량 넣고 쓱쓱 비벼 먹으니 밥 한 공기 추가를 안 할 수가 없었답니다. 신메뉴 굴 순두부는 고소한 맛이 일품인 새하얀 순두부가 굴 덕분에 시원한 맛까지 더해져 최애 메뉴로 갈 때마다 시켜 먹을 것 같아요. 그 외에 꼬막 비빔밥도
[용인신문] “투자는 어렵습니다. 멀리서 보면 로맨틱, 가까이서 보면 추리극, 금융 위기 땐 스릴러였다가 결국 본전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코미디가 됩니다. 당신의 투자는 늘 엔딩을 알 수 없는 시나리오 같았습니다. 각본 있는 투자, 시나리오로 완성하다.” 금융투자회사의 유튜브 광고내용이다. 최근 대한민국 40대 월급만으론 부족 44%가 금융투자를 늘렸다는 뉴스가 있다. 우리나라가 금융선진국으로 갈 것인지 투자 광풍이 될 것인지는 ‘개미’들의 몫이 될 것 같다. 워런 버핏은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라고 했다.<본지 객원사진기자>
고독을 낚다 박이도 언제부터였는지 등에 들메어진 괴나리봇짐이 버거웠구나 차면 비우고 또 차면 비워내며 달려온 한 세월 무엇을 그리 많이 짊어졌는지 한적한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다 오늘은 다 내려놓고, 고독의 정체를 명상하자 물안개 피어오르는 수초에 붙어 꼼짝 않는 잠자리도 보인다 첨벙 뛰어드는 개구리 한바탕 저들의 합창이 시작되려나 살랑대는 미풍이 내 귓가를 맴도는구나. 박이도는 1938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의 시에는 비의가 없다. 상징이나 알레고리나 은유도 보이지 않는다. 일상어로 쉽게 읽히는 시를 써왔다. 그것도 60여 년을 한결 같은 작업을 해온 것이다. 「고독을 낚다」 또한 잘 읽히고 이해하기 어려움이 없는 시다. 그가 등에 짊어지고 살아왔던 세월의 무게를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란 속에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하는 과정의 신산함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제 8순에 이른 그가 그 등짐을 다 벗어버리고 한적한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것이다. 그 풍경만으로 사는 일이 족하다. 그는 지금 행복한 고독을 낚고 있는 것이다. 물가에 등장하는 잠자리나
[용인신문] 노자의 도덕경은 인생구단의 노회한 역사가가 도망(?)이라는 절체절명 적 시점에서 철학적 시각을 빌어 극도의 정제된 어조語調를 운문韻文으로 끌어와 경책과 상징의 경구로 써내려 간 서사이다. 노자의 무위無爲와 한비자의 법치法治는 동전에 붙은 양면으로 노자의 무위에는 반드시 한비자의 법치가 요구된다. 한비자는 전국戰國칠웅七雄시대에 가장 작은 한韓나라의 왕손이지만 서자이며, 지독한 말더듬이로 제나라에 유학하여 조나라 철인 순자에게서 사사했다. 또한 진나라 개인 사설 감옥에서 동문의 벗 이사로부터 절명한 꽤나 문제의 인물이다. 그의 죽음을 재촉하는 데는 자신의 글들이 한몫했다. 10만여 자로 써내려간 그의 글들은 훗날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인 한퇴지에 의해 한비자라 불렸고, 이 책은 삼국지 배송지주에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으며 어리석기 그지없는 후주 유선에게 읽기를 권했다는 것으로 이후 유선은 40년간이나 촉나라를 수성했다는 일화가 붙은 책이기도 하다. 반면 조선왕조 오백 년사를 지켜온 것은 한비자의 법가가 아니라 성리학이다. 그 기본도서 또한 인성론의 중심이 되는 대학, 맹자, 논어, 중용, 사서에서 출발하며 어린이 인성 교과서로는 유자징의 소학으로 시작해
[용인신문] 처인구 고림동 진덕지구 도시개발사업부지 내에 계획됐던 도서관 부지를 공공청사 부지로 변경한다는 고시를 보았습니다. 어찌하여 도서관이 아니라 주민생활편의시설 확충이라는 명목하에 행정복지센터로 변경됐는지궁금합니다. 계획되어 있던 걸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덕지구 인근에는 진덕 힐스테이트를 포함해 고림지구 양우1‧2‧3차, 고림지구 신성, 보평1지구 서희스타힐스, 보평2지구 둔전 힐스테이트 등 약 9800세대가 입주 했거나 예정입니다. 용인시는 이 많은 세대들이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타 지역으로 한 시간씩 이동하길 원하시나요? 과거 연령대가 고림동 지역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젊은층 유입이 늘 것으로 예상되고, 그에 따라 미니 신도시급으로 발전하게 될 지역에 교육적인 환경 조성과 생활복리시설들이 꼭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용인시는 이미 많은 공원과 녹지가 있음에도 또 공원 조성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가 정말 필요하다면, 용인시에서 추진 중인 가칭 용인센트럴파크나 다른 곳에 짓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고림진덕지구에 도서관 설립은 꼭 필요하며, 기존 도시개발계획 그대로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용인신문]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이후 가장 중요한 방역의 핵심 세 가지로는 마스크 쓰기, 서로 서로 거리두기, 손 잘 씻기 등으로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코로나 팬데믹에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3가지 핵심 방역 수칙처럼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3가지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첫 번째는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걱정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한다고 우리의 삶이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니 젤린스키는 그의 책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인간의 염려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통계를 적고 있다. “우리 인간이 갖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아주 사소한 고민이다. 나머지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며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라고. 결국 한마디로 걱정이라는 것은 100%가 쓸데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생활의 염려가 우리 마음을 둔하게 한다고 말씀
이 길 용 서울예스병원 대표원장 척추센터/신경외과 전문의 [용인신문]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활은 편리해졌으나 인구 노령화, 디지털기기 사용으로 인한 자세불량, 운동부족 등으로 척추질환 환자는 가파른 증가추세다. 특히 척추관협착증 환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5~17년 허리통증 내원 환자의 척추관협착증 진단율은 62%로 척추디스크(추간판탈출증) 진단율 21%에 비해 3배 가까이 높다. 이렇듯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지만 대부분 허리통증보다는 다리 저린감이나 골반통증 증세만 나타나다 보니 척추 질환 의심보다는 혈액순환이나 고관절 문제로 생각한다. 결국 민간요법이나 정확한 진단없이 약물이나 물리치료 등에만 의지하면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척추관협착증은 자연치유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척추디스크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병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은 통증이 심해지면 그제야 치료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하지만 온라인 미디어발달의 부작용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난다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에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까지 소개되고 의료광고에서는 마치 하나의 치료법으로 모든 척추질환을 낫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한다. 의학 지식이 충분하지
때려 부수는 획일적 재개발 제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새롭게 변신 마을 정체성 살리는 똑똑한 개발 [용인신문] 현재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일원 제8구역 재개발사업지역에서는 건축물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2007년 만들어진 ‘2020 도시주거환경정비주택’ 기본계획에 반영된 8곳 중 하나다. 당초 대상지는 처인구 4개동 일원으로 총 23만 9351㎡의 2500여 세대였다. 하지만 부동산경기 하락과 지가상승 등 사업성이 저하되고 ‘민민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제8구역외엔 사실상 모두 해제됐다. 게다가 용인시청 일원 역삼지구 개발이 10년 이상 미뤄 지면서 용인의 원(구)도심 주택지는 노후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처인 4개동 일원 원도심 지역의 재개발 희망은 이제 물거품이 된 것인가? 주택재개발을 주도해온 대형 건설사들은 아파트 공급과잉 현상과 부동산시장 눈치를 보면서 공시지가가 높은 구도심의 주택재개발사업을 꺼리고 있다. 사업부지 매입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계약을 했다가도 쉽게 포기한다. 설사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빨라야 15년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주택공급정책 중 재개발문제
[용인신문] 1991년 2월 15일. 딱 삼십 년 전, 그날은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진천행 버스를 타고 무려 네 시간도 넘게 걸려 도착한 곳이 용인군 내사면(현재 양지면) 양지리. 그날은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따라 내 인생의 첫 직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물론 약속 시간보다 한참은 늦은 시간이었다. 첫 직장인 학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선생님들은 모두 퇴근한 뒤였다. 그날 밤 벌판을 가로지르는 칼바람을 피해 시골 중학교 숙직실에서 불편한 잠을 아주 달콤하게 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는 이리 오래도록 용인과 인연을 맺을 것이라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용인과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행여 놓칠세라 더 꽉 움켜쥐고 있었는지도 모르리라. 이십 대의 청춘이 오십 대의 중년으로 멋지게 익어갈 수 있었던 터전이 바로 용인이었으니 말이다. 용인에 정착한 후 한 십 년쯤 지났을까. 시인이 되고 싶다던 청춘의 꿈이 점점 식어갈 때쯤 용인은 무심한 척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용인문학회와의 이십 년 동고동락. 그
[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