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할아버지는 미나리를 즐겨 드셨다. 미나리꽝에서 뽑아 잘게 썬 뒤 고추장과 식초, 참기름을 넣어 버무려 드셨다. 간을 맑게 한다고 했다. 말년의 할아버지는 미나리로 간에 찌든 주독을 몰아냈다. 난 안 먹었다. 미나리에 거머리가 심심치 않게 꼬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억지로 떠먹인 날 밤. 뱃속 거머리에게 피를 쪽쪽 빨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깨끗한 물보다 더러운 물에서 더 잘 자란다. 물을 정화시키면서 제 줄기와 잎에 향을 키운다. 자연하수처리장이라는 별명의 이 채소는 맑은 생선탕에 어울린다. 비린내를 뚫고 특유의 향으로 입맛을 돋게 한다. 봄날, 삼겹살에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 용인5일장에 가면 한 단에 3000원밖에 안한다. 영화 ‘미나리’가 영미권에서 관심을 받자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낯선 땅에서 차별을 딛고 꿋꿋하게 뿌리내리는 한국인 가족은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와 단짝이다. 아내는 미나리 친척뻘인 고수를 좋아한다. 야근에 지쳐 찡그린 얼굴로 귀가했다가도 고수 곁들인 배달음식을 마주하면 웃는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한 아내에게 고수는 아마 미나리 같은 존재. 고수는 한때 중국이나 동남아 음식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도
악귀 쫓는 수호신 역할 가능성… 풍요 기원 농경 풍습과 밀접 [용인신문]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 거석문화의 일부인 선돌은 자연석이나 일부만 다듬은 큰 돌을 마을에 세운것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보통 단독으로 한 개가 세워지지만 여러 개의 돌을 열을 지워 세우거나 원형으로 배치하기도 했고 고인돌 옆에 세우기도 했다. 용인은 곳곳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인 선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크게 5지역에 11개의 선돌이 있는 것으로 보고 돼 있다. 용인시청쪽에서 원삼 방향으로 곱든 고개를 내려오면서 좌회전 방향으로 달리다 용인시농촌테마파크 진입입구 못 미쳐 우측 논 가장자리 부분에 세 개의 선돌이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암리 선돌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1990년에 용인시 향토유적 제22호로 지정됐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 부분을 선돌뱅이라고 부른다. 사암리 선돌은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커다란 하나의 돌을 세 개로 쪼갠 것으로 보인다. 보통 선돌이 한 기나 두기 서 있는데 비해 사암리 선돌은 세기가 나란히 서있어 이채로우며 더우기 주변 논바닥에 더 있던 2개의 선돌 가운데 하나는 마을 입구에 ‘안꼴물구리’라고 새겨 마을
코로나에 따른 매출감소로 운행에 나서지 못한 마을버스들이 차고지에 주차돼 있다. 코로나 이후 매출 60%↓… 업계 ‘고사위기’ 하루 운행 1000회 감차에도 ‘경영난’ 가속 [용인신문] “그동안 은행 대출로 회사를 운영해 왔는데, 이제는 빚을 낼 수도 없는 지경입니다.” ‘시민의 발’인 용인지역의 마을버스 업체 상현운수 박병훈 대표의 한숨 섞인 말이다. 마을버스 업계는 1년 여 전인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이용객이 대폭 줄었고,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웠던 마을버스 업계는 고사 위기에 처했다. 마을버스는 시내버스가 갈 수 없는 골목 골목을 누비는 서민 교통의 ‘실핏줄’ 같은 존재다. 대형 노선버스가 들어가기 힘든 지역 구석구석을 운행하면서 서민들의 교통 사각지대를 채워주는 노선이 대부분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생존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시민들의 외출이 줄고, 직장인의 재택근무와 학생들의 등교 수업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마을버스 업계 매출은 곤두박질 쳤다. 지난 10일 상현운수 차고지에서 만난 박 대표는 “버스 운행횟수를 줄이고, 운전기사 등 종사자 수를 줄였지만, 더 이상 버티기조차 힘든 상황”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1년 동안 금융권
[용인신문]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성숙한 시민의식과 높은 투표율로 제20대 국회의원선거를 무사히 치루고 2021년 신축년에 들어섰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20년만에 돌아오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두 개 선거의 동시실시 해를 앞두고 오는 4. 7.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통상 재·보궐선거는 단순히 선출직 공직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의 척도를 중간 점검할 수 있는 선거다. 더구나 이번 재·보궐선거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여론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니 대선’이라고 불리며, 언론 및 유권자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 역시 이번 선거에서 2개 지역을(구리시, 파주시) 대상으로 지방의원 보궐 선거를 실시한다.(구리시 : 도의원, 파주시 : 시의원) 이번 선거로 당선될 사람들의 임기는 내년 6월 말까지로 1년 남짓한 시간으로 짧다면 짧지만 지역사회의 문제점과 관심사를 발굴하고 개선·발전시키는 데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선거 후의 의정활동을 지켜보며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의 투표로 재신임과 견제를 행사하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더욱 더 굳건하게 지키며 발전시킬 수 있
[용인신문] 상갈동 지역 교육환경 및 인프라 개선을 위해 청원글 올립니다. 현재 상갈동 주민들은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보라동과 기흥 근처의 도서관을 방문해야 합니다. 상갈동 지역은 아모레퍼시픽 연구소를 포함해 금화마을, 빌라 등이 밀집돼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위한 환경은 열악합니다. 학교는 상갈초, 상갈중, 신갈고가 있지만 공부를 하기 위한 공간과 이를 위한 학습 프로그램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책을 빌리기 위해 보라동과 기흥 근처로 가는 일은 부모로써 마음 아픈 일입니다. 서울의 공원들을 가보면 보통 도서관이 자리 잡은 경우가 많습니다. 공원의 자연을 벗삼아 휴식과 여가활동을 하고 학생들과 아이들은 도서관을 통해 보다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약 23만㎡ 부지에 달하는 통삼근린공원 내에 도서관이 건립된다면 상갈동은 물론 타 지역 주민들도 통삼근린공원과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공원을 넘어서 공원과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모멘텀을 통해 상갈동과 인근 지역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통삼근린공원 내 도서관 건립은 상갈동의 교육환경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바람과 상갈동 전체 주민들의 요구사항임
[용인신문] 이사 왔다. 서울에서 용인으로. 14년만의 복귀다. 이곳에 부모와 누나들, 매형과 조카들이 오래 살았다. 대학 시절 용인은 안개가 잦았다. 텁텁한 안개. 술 깬 날보다 깨지 않은 날이 많았다. 용인에 살지만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중심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날마다 상경하고 싶었다. 돌아오지 않은 날들이 잦아지다 서울에 눌러앉았다. 서울은 용인보다 10배 더 사람이 많았다. 10배 더 경쟁해야 했다. 멈춰서면 뒷걸음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번잡한 도시에서, 번잡한 사람이 됐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다 깼다.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하던 때였다. 문득, 둘러보니 먼 곳에서 부모는 늙어 있었다. 캄캄한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방역당국에서는 “찾아뵙지 않는 게 효도”라고 강조했다. 내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동안 부모에게 기울이지 못한 관심을 벌충하려면 옷깃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그래서 이사 왔다. 용인, 안개는 걷혔을까. 이사 온지 일주 일만에 함박눈이 내렸다. 여섯 살 딸아이를 깨워 눈장난을 쳤다. 썰매도 타볼까. 아파트 주민들이 하나둘씩 나와 관리소장들과 더불어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딸아이와 힘을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주
내 입에서 당신의 뺨까지 안토니오 가모네다/최낙원 옮김 내 입에서 당신의 뺨까지 쓰디쓴 길이 뻗어 있다 벌거벗은 당신의 가슴 내 손에 재를 뿌린다 당신의 시선과 내 목소리 사이에 죽음이 떨고 있는가 안토니오 가모네다는 1931년 5월 30일,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역시 시인이었는데 『또 다른 더 나은 삶』이라는 시집을 남기고 가모네다가 한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아멜리아 로본의 건강 때문에 1934년 레온의 변두리 철도 옆 빈민가로 이사했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의 시집으로 글을 깨우쳤기 때문에 글자와 시가 함께 왔다고 술회한 바 있다. 가모네다는 자신을 “시를 쓰는 프롤레타리아”라고 말한다. 유년기의 가난으로 인한 고통스런 기억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의 절망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투쟁이 환상성의 언어로 응축된 그의 시편들은 고뇌와 갈등에서 피어난 붉은 꽃과 같다고 평가한다. 스페인의 문학평론가인 호세 안토니오 폰데 파르는 “그의 시는 감성에서 비롯된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시어들로 가득 차 있고, 어떤 언어로도 품을 수 없는 신비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06년에 전 세계 스페인어권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르반
[용인신문]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재산과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누리려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함과 미천함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려다가 가난과 미천함에 처해 졌다면 그것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명심보감 안분편 8문장에 나온 말인데 이글의 전거는 논어 이인편 5문장이다. 공자의 이 말은 많은 부분에서 길고 긴 우등불가에서 풍찬노숙의 날들을 견뎌온 노인의 인자함 보다는 잘 벼리 된 칼날의 단호함이 느껴진다. 공자는 득남 후 불과 몇 년 후에 무슨 이유에선지 아내와 등을 진다. 그리고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후취를 들이지 않았다. 당시 시대로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임에 분명했다. 그런 공자에게 있어서 온화한 미소로 제자를 이끄는 스승의 모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공자가 추구한 삶이란 ‘너 똑바로 정치해라.’가 그것이다. 논어의 문장 자체가 곧 정치다. 그럼에도 굳이 정치인이 되겠다면 급한 대로 육예를 어설프게나마도 익혀야 한다. 其一禮 마음의 사악함을 없애는 시경을 읽어라(讀詩). 其二禮 고대의 정치를 아는 서경을 읽어라(讀尙). 其三禮 빈부귀천의 예를 아는
[용인신문]
[용인신문] 사진의 신발은 ‘나이키 에어맥스 97 지저스슈즈 워크온워터’다. 요르단에서 떠온 성수(聖水)가 에어 쿠셔닝에 들어가 있다. 이 신발은 스무 켤레가 안 되게 제작되어 현재는 리셀 가격 450만 원 이상에 판매되고 있다. 20만 원대 에어맥스 시리즈를 커스터 마이징해서 한정 발매한 운동화다. MZ(밀레니얼+Z세대)들은 명품 가방만큼 희소가치 높은 한정판 스니커즈에 열광한다고 한다. 한정판 운동화는 ‘가치있는 재화’로 취급되며 문화상품으로 인식하고 소비한다. 스니커즈 거래를 홈트레이딩 주식처럼 사고팔고 제품마다 시세 그래프가 있는 앱이 있다고 한다. 여의도에 가면 전설적 스니커즈가 전시되고 있다. <본지 객원 사진기자>
[용인신문] 예전에 맘바바랑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다. 맘바바랑은 저주를 내리는 마법사이다. 맘바바랑은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자신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매일 저주를 내리는 주문을 외운다. 그런데 맘바바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마지막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왜냐면 저주를 내리는 마법사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상을 촬영하던 사람도 당혹스러워서 맘바바랑에게 무슨 기도를 하는지 물었다. 맘바바랑의 대답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는 독실한 신자다. 나는 능력 있는 ‘맘바바랑’이 되기 위해 저주를 내리는 능력을 달라고 항상 기도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사람을 죽이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면 기독교의 본질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6장 40절에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고려 전기 가마구조 변화·백자 발생시기·발달과정 한눈에 [용인신문] 처인구 이동면 서리 중덕에 남아있는 사적 제329호 고려요지는 용인대학교 앞에서 학고개 터널로 진입 후 직진하다보면 좌측으로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면 마치 작은 구릉과도 같이 규모가 엄청나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백자 가마터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가마를 굽다가 깨진 도편의 퇴적층의 폭이 50m, 길이가 80m, 높이 5m에 이르러 마치 신라 고분처럼 높다고 표현되기도 할 정도다. 이 요지는 1960년에 발견됐는데 1984년 호암미술관에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 초기의 백자 요지로서 9세기 중반부터 12세기경까지 청자와 백자를 생산했음이 밝혀졌다. 퇴적층에서 가마의 유구와 백자, 청자, 도기 조각과 건물터가 조사되면서 베일에 가려졌던 고려백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마는 벽돌 가마와 진흙 가마가 확인됐다. 벽돌 가마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고 진흙 가마는 길이가 83m의 대형 가마로 출입구가 27개나 확인됐다. 출토유물은 그릇이 가장 많았다. 특히 해무리굽을 가진 대접이 대부분이었다. 제작 시기는 10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전반까지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이 유적지는 벽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