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힘들다’ ‘무섭다’ ‘망하다’ ‘답답하다’ ‘싫다’ ‘불안하다’ ‘지친다’ ‘슬프다’. 인공지능·빅데이터 전문기업 바이브컴퍼니가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인터넷 게시물 42억 25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감정이 실린 단어 빈도수에서 상위에 오른 단어들이다. 부정적인 단어들이 대부분 상위를 차지해 빅데이터도 지난해 우리 사회가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앓았다는 것을 확연히 알려주고 있다. 그랬다. 지난해 우리 대부분은 힘들고 답답하고 불안했다. 나 자신 또한 불안하고 지쳐 스스로 망가져 갔음을 실감하며 반성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별 것 아닌 것에 버럭 화부터 났다. 참지 못하고 남에게 공격적으로 나갔을 때 ‘내 자신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라는 자괴감에 몇 날 며칠을 앓은 적도 있다. 지난 가을로 접어들 무렵 그런 자괴심, 스트레스가 하도 심해 급기야 대학병원 응급실에가 맹장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스트레스가 그동안 멀쩡했던 충수돌기에 염증을 일으켜 터져버렸던 것이다. 남들은 다 무료로 받는 코로나 검사를 입원하기 위해 돈 주고 받았다는 사실에 수술을 하고 나서도 배가 더 아팠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에 속상해하며 자꾸자꾸 마음을
[용인신문] 미국의 생태학자 앤드루 돕슨(Dobson, Andrew)은 『녹색정치사상(Green Political Thought, 1990년』에서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생태주의의 특성은 ‘지속 가능한 미래’의 중요성과 ‘성장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사람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벗어나, 인간이 아닌 자연생명 세계에 대한 윤리적 관심에 있다면서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 및 정치 패러다임(paradigm)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의 환경생태에 대한 녹색적 관심(green concern)은 시골 주택의 보존이나 동물의 구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생활 등 패러다임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녹색정치(Green Politics)로 집약된다. 인간의 의식과 사회구조 및 경제, 정치, 생활 등 모든 것의 재구성은 문명적 변화와 후기산업사회의 변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팬데믹(pandemic)이라는 터널에 우리가 갇히게 된 것은 사람중심주의(anthropocentrism)에서 비롯된 사람의 교만과 이에 따른 생태위기(ecological crisis)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용인신문] 평일 정오인데 식당은 텅 비었다. 슬프지만 저항을 포기한 듯한 주인장의 모습은 애처롭다. 고용과 노동의 종말이 가까운 것은 환호와 탄식의 교차점이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2021년 수능 응시자 수가 역대 최소였고, 응시 결시자 수도 최대였다. 저출산이 가장 뚜렷한 통계다.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의 패러다임에 대한 사피엔스들의 자발적 선택이 만든 상황이 접점으로 맞물린다. 가끔 학부모 대상으로 상담을 한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할 때이다. 공부는, 특히 대학입시를 전제로 한 공부는, 동기부여가 된, 체화된 몸의 소유자만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부하라’는 말은 이타적이다. ‘공부해라’ 라는 말을 듣고 공부하는 것은 이기적이다. 임시변통의 요령이다. 공부는 대신에 할 수 없는 양도 불가성의 문제이다. 개체화된 몸에서만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다. 한국 근대사회의 출발은 ‘하면 된다.’ 라는 의지적 인간들의 집단적 출현이다. 작금의 자본주의는 의지의 소유조차도 극소수로 제한해 버렸다. 그러므로 노력의 성과가 일치하지 않는 현재는 탈근대이다. 적은 노력으로 빠른 이익을 숭배하
[용인신문]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한 징계위원회가 12월 10일로 연기되었다. 서울 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에 등용된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상징하는 간판과도 같은 존재였다. 대통령과 여권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검찰총수의 자리에 오른 윤 총장은 이른바 조국사태로 인해 여권의 배신자로 전락했다. 여권은 조국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윤석열을 정점으로 하는 검찰의 조직이기주의로 판단했다. 즉 공수처 설치와 경찰의 수사권 부여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을 좌초시키기 위해 조국 법무부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여권의 공세는 윤석열 총장에게 집중되었다. 조 장관이 물러나고 후임 법무부장관에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가 임명되었다. 추 장관은 인사권을 휘둘러 윤 총장의 손발을 잘라내고 장관 수사지휘권을 3차례나 행사하는 등 본격적인 윤석열 압박에 들어갔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윤 총장은 법무부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올해 주요뉴스는 추-윤 갈등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코로나 창궐로 인해 가뜩이나 힘겨운 국민은 추미애-윤석열의 이전투구에 넌덜머리를 냈고 특히 추 장관에 대한 시중의 여론은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에
[용인신문] 아느 네스(Arne Naess)의 근본생태학(deep ecology)을 계승하고 확대, 심화시킨 드볼(Bill Devall)과 세션즈(George Sessions), 카프라(Fritjof Cafra), 스나이더(Gary Snyder) 등 근본생태론자들은 오늘날의 생태위기와 현대인의 자아 및 정체성 상실에 주목하고, 이것을 현대 문명의 쇠퇴 증후로 파악한다. 드발과 세션즈는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생명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을 지향하는, 유기체적 전체(organic wholeness) 또는 큰 자아(Self)라고 불리는 공동체에서 사람과 사람이 아닌 생명체들이 모두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머레이 북친(Murry Bookchin)을 개조(開祖)로 하는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은 생태위기의 원인을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 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시장 논리에 기인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기 때문에 사람이 지닌 지배 속성에 주목한다. 정치학에다 생태학을 접목시킨 사회생태학은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분열을
[용인신문] “주변이 주변인 것은 상황이 변했는데도 자기를 억압하는 기존의 위계를 스스로 고수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중심과 주변이 어디냐갸 아니란 것이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사라져가고, 유동적이다. 중심이든 주변이든 내외부의 시선보다 내부에서의 생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용인은 이제 서울의 주변도시가 아니다. 용인시 최대의 면적을 점유하는 처인구도 주변구가 아니다. 선거철 마다 ‘일류 수지’라고 찬사를 보내(?)는 낙하산 후보들의 낯뜨거운 구호에 전국구 스타를 만들어 줬던 수지구도 용인의 외곽이 아니다. 1973년 10만에 불과했던 용인은 2002년 50만의 중소도시로 성장했다. 팀 마샬의 주장대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돼 왔다.” ‘생거용인’의 마음으로 들어 와 살기 시작한 용인의 가치는 현재형이자 미래형이다. 그러므로 2017년 백만을 돌파한 대도시로 성장한 용인을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가 시대 착오이다. 사람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니 지금, 용인시야말로 발상의 전환, 그것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해볼 수 있는 막바지 기회다. 1789년 혁명이후 파리
[용인신문] ‘무상(無常)’이란 말이 있다. ‘인생무상’이란 말이 더욱 익숙한데, 사람이 살면서 항상 같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최근 처인구의 변화에서 ‘무상’을 절감한다. 10년 전에 수지구, 기흥구의 도시화를 목격하며 이젠 ‘용인’은 처인구에 국한될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였다. 용인은 조선 초기에는 용구현과 처인현의 합체요, 일제 강점기에는 용인군과 양지군을 합친 지역이다. 지금의 용인시내 권역은 지역의 정통성을 말살하려는 식민지 정책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역참과 주막이 도로에 있었을 뿐인 곳에 백년도 안 되는 기간의 변화를 수용하면서는 인구 100만 도시의 중심 시가지로 형성되어 있다. 한 때 원삼면 두창리에는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는데, 현재 국내 최대의 산업단지로 조성되고 있다. 요즈음 모현읍과 포곡읍에서는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변했다.”는 말을 실감한다. 길조차 없었던 곳에 고가도로가 교차해서 설치되고 있다. 산속 깊숙이 전원주택이 밀집해 있고, 집단주택이 건설되고 있다. 옛날엔 나루터가 있었고, 숲이 무성했다는 고림리 지역엔 1만 세대의 아파트가 조성되고 있다. 이젠 처인구에서도 ‘용인’은 볼 수 없겠구나 싶다. 토박이를 자처
[용인신문] 낙태법의 개정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새로 발의된 낙태법은 14주까지 허용, 24주 내에서는 조건부로 임신 중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자 동의 요건도 삭제된다. 모자보건법도 개정된다. 미성년자도 보호자의 동의 없이 시술이 가능해졌다. 신념에 따라 의사의 시술거부도 인정했다. 현재 청와대 청원에는 여성의 건강과 생명존중을 이유로 낙태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반대로 폐지를 위해 싸워왔던 이들은 주수 제한 없이 완전한 낙태를 허용하라는 청원이 나란히 올라와 있다. 여성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사정을 어찌 법이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떤 법도 인간사를 앞서갈 수도 따라잡을 수도 없다. 그나마 이제라도 허용 요건이 발의된 것만으로도 필자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어떤 여성이 자유롭게 가볍게 낙태를 할 수 있겠는가. 종교계가 주장하듯 생명을 경시하는 마음으로 낙태를 하는 여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을 비난하고 ‘낙태프리’ 라며 주장하는 이들이야 말로 여성의 삶은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생명존중 사상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임신 14주까지 허용하는 개정법을 낙태프리와 같다는 이들의 외침에 필자는 동조할 수 없다
[용인신문] 센트럴파크는 미국 뉴욕시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공원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자 세계 수백 개 도시에 산재해 있는 흔해 빠진 공원의 이름이기도 하다. 성남시를 대표하는 공원도 중앙공원이고 인천에도 센트럴파크가 있다. 유럽의 큰 도시들에 중앙역이 있듯이 수많은 도시에 센트럴파크가 있다. 중앙(센트럴)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 종합운동장 부지에 건설하고자 하는 공원의 명칭을 가칭 센트럴파크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용인시, 특히 처인구가 술렁이고 있다. 용인시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서 한국에서 공원은 어떤 정치적 과정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원은 한강공원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공원은 일정한 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장충단공원일 것이다. 한강공원이 넓은 면적을 가진 것은 평가할만하나 강변에 자동차 전용도로를 먼저 만들어 사람 중심의 접근성을 갖추지 못했다. 철저하게 자동차 중심의 사고로 만들어진 것이 한강공원이다. 공원에 접근하려면 길고 칙칙한 지하 보도를 통해야 한다. 차라리 강변도로에 100m 정도 너비의 건널목을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 인간적이었다. 넓은 한강변에 조성했음에도 불
[용인신문] 백군기 시장의 종합운동장부지 공원조성 계획은 뜬금없을 뿐만 아니라 황당하다. 전임시장 시절 종합운동장 부지에 공용터미널을 이전하기로 하고 여론수렴과 시행계획의 골간이 잡혔던 핵심 대중교통인프라 사업이 시장의 독단적 결정으로 백지화될 처지에 놓였다. 복합공용터미널이 불필요한 것이라면 백지화해도 무방하다. 현재 사용중인 공영터미널은 1980년대 용인이 시승격도 되기 이전에 조성된 것이다. 비좁고 불결하며 복잡하다. 자동차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중교통은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온 탓에 협소하고 불편한 공용터미널에 대해 큰 저항 없이 30여년을 버텨왔다. 베이비 붐 세대가 한창 경제활동을 하던 시절 대중교통은 노년층이나 이용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베이비 부머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노년층은 급격히 증가하여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은 3~4년 후 초고령사회 진입이 확실시 된다. 초고령사회가 된다는 것은 대중교통이 중요한 이동수단이 될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60대에서는 자동차 면허 반납이 유행이다. 자동차 유지비를 부담하기도 벅차고 순발력이 떨어져 운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별
[용인신문] 이미 다윈이 ‘진화론’에서 말했던 불편한 진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생각은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간다. ‘당연한 것’인데도 가끔 쓸데없는 이상향에 빠져들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내 탓이다. 그러므로 원망은 저들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련다. 모이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해도, 전국에서 모여든 일부의 사람들은 분노와 피해의식을 표출했다. 내일이 지구 종말의 날인 것처럼, 막무가내 악다구니로 소리 지르는 모습은 공포였다. 그동안 얼마나 한이 맺혔던 것일까. 그들의 외침이 광장에 가득한 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서 선(善)과 악(惡), 힘과 정의는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주관적이며 경쟁적인 담론이 돼버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민’,‘자유’ 같은 단어들은 두리뭉실하다. 논점이 흐려지고 의미가 분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말을 자주 인용하는 사람들의 오독(誤讀) 때문이다. 개인적인 삶의 경험치일 수 있으나, 타인을 열받게 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자주
[용인신문] 용인시는 2020년 현재 인구수 109만 명이 넘었고, 그 면적은 591.34㎢로 서울 면적 605.25㎢의 98%에 버금가는 대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2016년부터 수원, 고양, 창원등과 함께 특례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례시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행정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사법 서비스에 관한 면은 용인시의 규모에 걸맞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법원의 설치를 위하여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므로 쉽지 않다는 점은 안다. 이미 용인지원의 설치를 위하여 2013년도에 국회에서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발의한 바도 있었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2016년에도 용인지원의 설치를 위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역시 통과되지 못했다. 이에 반하여 2013년에는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이 설치되었고, 2020년에는 인천지방법원 북부지원이 설치되었다. 이제는 용인시에도 수원지방법원 용인지원의 설치가 될 때라고 보인다. 법원의 설치를 함에 있어 한결같이 ‘지역주민들의 법원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사법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기 위하여’, ‘지역주민들의 사법서비스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