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 시인의 시로쓰는 편지 의자 차성환 의자는 나보다 먼저 태어났다 형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궁둥이로 깔아뭉갠다 수많은 의자 위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나는 앉아있기 위해서 태어난 거 같기도 하다 의자는 계속 앉은 자세이고 늦게 태어난 나는 의자에 몸을 맞춘다 의자에 바퀴를 달고 앉은 채로 나는 어딘가로 간다 다시 태어나면 의자가 되어서 너를 앉혀주고 싶다 다 의자에게 배운 말이다 의자는 신나고 즐겁고 지루하고 끔찍하고 슬프게 앉아있다 의자는 책상과 상관없이 앉아있다 의자는 앉아서 잠이 든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때까지 앉아있다 --------------------------------------------------- 이 여름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을 자주 하시나요. 오늘의 시와 함께 김수영 시인의「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를 떠올려 보는 것도 흥미롭겠지요. 오래 전 시인이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라고 쓸 때 오늘의 시인은 투명에 가까운 존재의 슬픔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의자는 신나고 즐겁고 지루하고 끔찍하고 슬프게 앉아있다 의자는 책상과 상관없이 앉아있다 의자는 앉아서 잠이 든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때까지 앉아있”지요. 시인은 그
용인신문 시로쓰는편지 시간이 사각사각 최승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DA 300 아하 사실은 (통시성의 하늘 아래서 공시성인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 --------------------------------------------------- 최승자 시인의 근간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를 펼쳐 봅니다. 그는 시집 뒤의 짧은 산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기고 있지요. “구름의 말만 들으며 갈 길 못 가고 또다시 흐르기만 하였다 어디로 어디로라고 밤바람은 말하지만 고통처럼 행복처럼 기어코 올 그 무엇 그러나 참 더디다 하여간에 여하간에 갔다가 왔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의 시, 시간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모든 존재에게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 전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2017년 용인마라톤대회-개막식, 대회사 남녀노소 5000여명 봄바람 가르며 '행복질주' 용인시 대표축제 '2017 용인마라톤 대회' 남자 하프코스, 최진수 선수 1시간 19분 25초 기록 '우승' 여자 하프코스, 양점조 선수 1시간 38분 35초 정상 차지 10km코스 남자부, 강호 선수 38분 29초. . . 당당히 우승 10km코스 여자부, 강경아 선수 40분 20초 기록 1위골인 화창한 봄날 용인시에서 열린 ‘2017 용인마라톤 대회’가 지난 22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용인시와 용인신문사가 공동주최하고 용인시체육회, 스포츠와 사람들이 함께 주관한 이날 마라톤대회는 하프(half‧21.0975㎞), 10㎞, 6㎞건강달리기참참가자와 가족, 자원봉사자 등 5000여명이 함께 즐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열린 이날 대회는 정찬민 용인시장과 김중식 의장을 비롯한 이우현, 김민기, 표창원 국회의원, 홍재범 농협용인시지부장, 김상진 용인동부경찰서장 등 지역 내 각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참가자들의 완주를 기원했다. 45번국도와 경안천변 산책로를 따라 구성된 하프와 10km코스 참가자들은 상쾌한 봄 공기를 마시며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특히
2017년 용인마라톤대회-출발
2017년 용인마라톤-3 시상식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둘의 음악 김준현 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 귀와 귀로 이어져 있다 귀와 귀가 어긋나는 젓가락처럼 어긋나는 가락처럼 다른 귀와 닮은 귀 (…) --------------------------------------------------- 인간 너머의 세계에서 인간성을 사유하는 시 세계로 주목받은 신예 시인 김준현. 그의 첫 시집 제목은『흰 글씨로 쓰는 것』. 시인은 쓰였지만 보이지 않는 흰 글씨와 같이 모든 관계에 대해 ‘있지만 정말 있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듯 보입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저마다의 특수성으로 빛난다고 할 때, 사랑 역시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 너무 크고 무거운 슬픔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하는 사이가 있겠지요. 그 풍경은 마치 침묵으로 빚어낸 ‘둘의 음악’을 닮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스스로의 법칙을 쥐고 있는 자. “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귀와 귀로 이어져 있”음을 바라봅니다. 카프카는 말했지요. 언제든 달리는 말의 고삐를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용기란 결단이란 그로부터 시작된다고. 세상을 바꾸는 일도 그 손에서 시작됨을 믿으며! 이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4월 / 심보선 (…)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손가락 외에는 아무것도 어루만지지 않던 봄날에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너의 소식은 1월과 3월 사이의 침묵을 물수제비뜨며 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 5월에도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6월에는 천사가 위로차 내 방을 방문했다가 "내 차라리 악마가 되고 말지" 하고 고개를 흔들며 떠났다 심리 상담사가"오늘은 어때요?"물으면 나는 양미간을 찌푸렸고 그러면 그녀는 아주 무서운 문장들을 노트위에 적었다 나는 너의 소식을...... 물론 7월에도......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 8월에는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았고 9월에는 그것이 상수리나무만큼 커져서 밤에 나는 그 아래서 잠들곤 했다 10월에 나는 옥상에서 뛰어 날아올랐고 11월에는 화성과 목성을 거쳐 토성에 도착했다 우주의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저 멀리 지구를 바라보니 내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 늙은 개처럼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월에 나는 돌아왔다 그때 나는 달력에 없는 뜨거운 겨울을 데리고 돌아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왔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벚나무 실업률 손택수 해마다 봄이면 벚나무들이 이 땅의 실업률을 잠시 낮추어줍니다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꽃이 있어서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서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 노점을 차렸습니다 솜사탕 번데기 뻥튀기 벼라별 것들을 트럭에 다 옮겨싣고 여의도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 오르는 꽃들, 보다 보다 못해 벚나무들이 나선 것입니다 벚나무들이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 벚꽃과 사람들의 이야기. 특유의 정서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서정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손택수 시인. 전통을 견지함과 동시에 도시적 삶의 애환을 그리며 시적 갱신을 도모하고 있지요. 오늘의 시 <벚나무 실업률>에서도 삶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감각과 관찰력으로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을까요. 이 꽃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벚꽃만은 아닌 것 같지요. 시적 풍경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예보/ 임솔아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저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 일기예보, 오늘의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솔아의 첫 번째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출간 되었네요.
여수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질문과 대답처럼 이 시국에도, 봄은 시작
다시 눈을 떴을 때 이우성 모래는 모래 위에서 계속 길을 덮으며 나아갔다 나는 모래를 주워 먹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래였다 나는 맨발이었고 모래를 밟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래는 잊힌다 모래는 내 몸속에서 길을 낸다 그리고 바다에 닿는다 나는 그곳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멀리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이다 모래처럼 나도 노력을 한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에 모래는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래는 괜찮을까 의미 없이 바람이 불고 나는 한 개의 모래가 될 때까지 흩어지는 것이다 붙지 않는 살 나는 모래를 그렇게 부른다 몸에서 바람이 부는 사람은 바다에서 걸어왔고 눈에서 모래를 쏟는 사람이 나를 낳았으며 서둘러 죽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모래는 전생으로 가는 길을 낸다 그러니 나의 불화여, 울라 ------------------------------------------------------------ 모래와 나와 방향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 모래와 나는 “멀리 어디로 가고 싶은” 존재들. 그곳에 닿기 위해 “모래처럼 나도 노력” 하는 중. 그러나 모래와 나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에 모래는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
따뜻한 상징 정진규 어떤 밤에 혼자 깨어 있다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 따뜻하게 그것보다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따뜻하게 그것만큼씩 춥게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발이 시리기 때문에 깊게 잠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고 그들의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그렇게 밤을 건너가고 싶다 가장 따뜻한 상징, 하이얀 쌀 두어 됫박이 우리에겐 아직도 가장 따뜻한 상징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인에게 듣는 ‘따뜻한 상징’ 이야기입니다. 문득, 자주 멀리서 가까이서 잠든 한 사람을 생각하는 밤과 밤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땅의 사람들’을 떠올립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