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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30년 전 중국 둔황에 처음 갔었다. 고비사막이 펼쳐지며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관문, 오아시스 도시가 둔황이다.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기도 하는 사막을 걷고 또 걸어 모래산 명사산에 올랐다. 서역 하늘과 사막을 아득히 물들여가는 노을도 보았다. 그러다 해 지면 도심으로 돌아와 야외 무도회장을 구경하곤 했다. 극장 앞 조그만 광장에 남녀노소들이 모여들어 밴드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여럿이 군무를 추기도 하고 또 블루스 같은 쌍쌍의 춤을 추기도 한다. 러시아나 몽골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예의 TV 화면 속 평양도 그렇고. 그런 무도회를 며칠간 밤마다 구경하며 황량한 사막 가운데 있는 조그만 오아시스 도시에서 인간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예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블루스를 추면서 가슴이 닿을 듯 말 듯한 적당한 거리 유지가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낳고 또 야만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을 낳은 거라고. 이런 거리에 대한 실감적 명상을 위해 그 후로도 대여섯 차례 실크로드 사막기행을 해오고 있다. 사그라지던 코로나 19 집단전염 불씨가 서로 몸 부비고 소리소리 지르며 춤추는 이태원 클럽발로 되살아나고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64 남겨진 자들을 위한 기록 아침의 피아노 ◎저자 : 김진영 /출판사 : 한겨레출판/ 정가 : 13,000원 피아노 선율처럼 따뜻한 문장은 힘이 세다.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살아남아 우리를 그곁에 머물게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두고 간 최후의 기록이라면 더욱 그렇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이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전까지 병상에서 적어 두었던 글은 그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 되었다. 책의 끝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 끝을 알고 시작한 독서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 소중히 아껴가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는 이제 “아침의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 작은 사치를 더 이상 부릴 수 없게 되었지만 독자인 우리는 음악보다 힘센 치유의 문장을 듣는 사치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짧고 간결한 말이 불러오는 마음의 파장은 크다. 흔한 투병 일기나 사적인 기록으로 끝나버렸을 수도 있었을 그의 글은 우리의 삶을 회고하게 만든다. 철학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한 사람의 부재가 남길, 현실적인 슬픔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외출 준비를 하는 아내를 보며 “이 잘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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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햄릿>의 실존적 고민을 드러내는 명대사다. 음모와 술수,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궁중은 왁자지껄했다. 은폐와 모략을 감추려는 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햄릿을 유혹했다. 고뇌하던 햄릿은 침묵의 공간에서 독백으로 외쳤다. 하지만 빈 줄만 알았던 침묵의 공간은 결코 비어있지 않았다. 사악한 세력에 맞설 용기는, 꼭 말로만이 아닌 끊임없는 행위로 햄릿을 응원했다. 빈 공간 속 다수의 관객들은 ‘때맞춰 손뼉 치기, 깊은 한숨 쉬기, 대놓고 감탄하기’를 통해 말보다 격한 감정으로 지지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오래 살아남는 이유다. 가끔은, ‘분노’도 강력한 단합으로 표현된다. ‘분노’는 조절의 문제를 넘어, 주체자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남용되고 혼용되는 경우에서 그렇다. 특히 많이 가진 자의 분노 표출은 법적으로 선처되고, 약자의 분노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으로 범주화 시키는데 ‘화’가 난다. 그러니 분노의 ‘인과’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오래도록 도덕의 묵시적 규범으로 ‘흥분하지 말라’와 ‘참으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가만히 있으
소고기 육전과 지단… 미각 깨우는 '진주냉면' [용인신문]벚꽃 날리던 봄이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갑자기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이럴 때 가장 생각나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냉면이겠지요? 시원하면서도 매콤 달콤해 없던 입맛도 바로 살려주는 냉면! 겨울냉면이 제격이라지만 아직은 더울 때 더 생각나더라구요. 함흥냉면, 평양냉면, 분식집 냉면 모두 좋아하지만 가장 생각나는 냉면은 진주냉면이었어요. 냉면 종류 중에서 가장 보편화되지 못했지만 비주얼은 어느 냉면보다 출중합니다. 경상남도 진주의 향토음식으로 해물 육수로 만들어지는데요, 다른 냉면들이 보통 무 절임과 배, 삶은 달걀로 고명을 간단히 올리는데 반해 진주냉면은 소고기 육전과 지단, 잘 익은 배추김치, 오이, 배 등 푸짐함 고명으로 화려한 모양새가 특징이에요. 진주냉면도 여러 가지 상호로 전국에서 영업 중이긴 한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진주에 위치한 ‘하연옥’이란 곳으로 본점에서 그 맛을 보고 온 후로는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돕니다. 용인에서 ‘하연옥’ 본점까지는 294km, 세 시간 반에서 네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머나먼 곳이라 먹고 싶다고 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에요. 많이 아쉬웠는데 용인에
오리구이·백숙과 건강한 반찬 ‘환상 궁합’ [용인신문] 보양식으로 으뜸인 오리고기는 불포화지방산은 물론 단백질과 무기질, 풍부한 미네랄까지 여러가지 영양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면역력에 도움 되는 비타민A의 함량이 다른 고기에 비해 월등하게 많이 함유되어 있어 요즘 같은 시기에 꼭 챙겨 먹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인구의 ‘소금’이라는 식당은 오리구이, 백숙 등 메인 요리만으로도 건강한 메뉴들인데 함께 나오는 반찬들까지 예사롭지 않아 소개하려고 합니다. 대로변에서도 커다란 간판이 잘 보여 찾아가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주차장도 넓어 주차 걱정이 없으며, 1관은 모두 개별룸으로 되어있어 조용하게 식사할 수 있어 좋았네요. 메뉴는 황토 진흙 오리구이, 단호박 훈제구이, 오리 철판 주물럭, 동충하초 한방백숙 등이 있는데 제일 많이 찾는 메뉴는 황토 진흙 오리구이로, 3시간 전에 꼭 예약합니다. 진흙 오리구이가 나오기 전에 한상 가득 건강한 반찬들로 먼저 채워집니다. 몸에 좋은 연잎차를 시작으로 동충하초를 베이스로 만든 따끈한 국물이 나오네요. 아시는 대로 동충하초는 폐는 물론 해독작용, 항암효과, 당뇨병 예방 등 다방면에 효과가 있어 인삼, 녹용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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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고다이바 부인은 11세기 영국의 코벤트리 시(Coventry)의 영주(領主)인 레오프릭(Leofric)백작의 부인이었다. 어느 날 백작 부인은 영주의 혹독한 세금징수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는 사실을 알고 백작에게 몇 번씩이나 세금을 감면해 주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백작은 “당신이 알몸뚱이로 말을 타고 코벤트리 시내 거리를 한바퀴 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백작 부인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공중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라면” 알몸으로 말을 탄들 어떠랴 하는 심정으로 말을 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코벤트리 시의 시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부인이 말을 타고 거리를 돌 때에는 누구도 창문을 굳게 닫고 내다보지 않기로 결의를 하였다. 고다이바 부인은 긴 머리카락으로 앞을 가린 다음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내 거리를 돌기 시작했다. 시민들도 약속대로 말을 타고 거리를 누비는 고다이바 부인을 창틈으로라도 엿보는 사람하나 없는 듯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호기심 많은 재단사 톰(Tom)이라는 사나이만은 시민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창문 틈으로 그 부인의 알몸을 엿보았다. 그 순간 그 톰이라는 사나이는 그만 두 눈이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64 “당신은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저자 : 김숨 /출판사 : 마음산책/ 정가 : 13,800원 “당신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자명한 사실을 나는 잊고는 합니다. 나 자신 또한 우주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망각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많아지면서 나의 원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사는 우리는 ‘온전한 나’보다는 ‘사회적 나’로 변해야 살아가기 편하니까. 단 한 번도 무대에서 주인공인 적 없었던 배우, 선희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경희를 간호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편지 형식으로 펼쳐진다. 타인에 의해 깎여지고 혹은 나에 의해 스스로 다듬어져, 내가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 연극 무대 위에서 발작을 일으킨 후 무명배우의 삶을 끝내고 난생 처음 가보는 도시, 경주로 내려간 선희. 얼굴도 몰랐던 한 여자를 위해 간병인으로 살게 된다. 11년째 누워만 있는 경희, 가족에게도 잊혀져 가다 못해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63 인류 역사를 바꾼 운명의 순간들 광기와 우연의 역사 ◎저자 : 슈테판 츠바이크/출판사 : 휴머니스트/정가 : 13,000원 “어제는 기적으로 여겨졌던 것이 오늘은 마치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긴박하고 엄청난 사건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하고 무뎌지게 마련이다. 위대한 세계사를 결정짓는 한 순간을 멋지게 각색해낸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순간을 잊지 않도록 환기시켜 준다. 인류역사를 만든 중대하고 결정적이었던 사건의 어처구니없는 우연과 미친 광기의 순간들을 포착했다. 겉으로 드러난 역사,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과거의 순간을 넘어서 그 이면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과 인물들의 감정을 깊이 파고 들어간다. 역사책조차 문학작품으로 느끼게 만들어 주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아름다운 문장과 섬세한 묘사로 역사의 순간들을 절묘하게 낚아채어 들려준다. 헨델의 메시아가 탄생하는 운명적인 순간, 무능한 부하로 인해 패배자가 된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80세의 나이에 19세의 소녀와 결혼까지 하려했던 나이값 못하는 괴테, 스콧의 남극 정복을 향한 야심과 그로 인한 비극들, 러시아 혁명의 주역 레닌의 이야기, 악처를 피해 혼
[용인신문]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4차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해 연평균 경제 성장률 9.7퍼센트를 기록했다. 경제성장을 이룩해 북한공산주의자들을 이긴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박정희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 선포, 8.3조치, 유신헌법, 노동 3권의 제약 등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생존권을 유린했다. 이러한 개발독재에 의한 산업근대화는 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그 부작용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환경문제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해 왔던 사람들이 당면했던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개발독재 시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기 시작한 생태위기는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위기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위기였다. 그것은 인간 생존에 관한 위기이며, 인간 행위의 총체적인 위기였던 것이다. 용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용인’하면 떠오르는 말이 ‘난개발’이었다. 특히 수지구와 기흥구의 난개발은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 악명을 떨쳐내 버리려고 용인시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신도시급 택지개발지구가 동백지구이다. 용인시가 원대한 뜻을 품고 조성한 동백지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바래지고 있다. 동백지구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