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列子)』「설부(說符篇)」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말기 송나라의 착한 사람 집에 검은 암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흰 송아지다(黑牛生白犢). 놀란 착한 사람은 공자께 까닭을 물으니 공자 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흰 송아지를 하늘에 제사 지내면 됩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착한 집 아버지는 눈이 먼다. 그런데 그 착한집의 검은 암소가 또 흰 송아지를 낳았다. 착한집의 부자(父子)는 이일을 공자께 다시 묻는다. 착한 아들은 아버지의 그러한 일이 마뜩치 않아 여쭙길 지난번에도 그분께 물어봤다가 아버지 눈만 멀었는데 왜 또 그런 분께 물으려 하십니까. 착한 아버지 왈 어찌 말이 그리도 경망스러우신가. 본시 성인의 말씀은 처음에는 어긋나는 것 같다가도 살다보면 다 그 말이 맞는 법이지. 그렇게 해서 공자께 또 물으니 공자 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흰 송아지를 하늘에 제사지내면 됩니다. 그리고 1년 뒤에 이번엔 착한 아들 눈이 먼다. 뭐 저런 인간이 성인이냐라며 공자를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눈먼 아들을 달래지만 아버지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힘겨운 나날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데 강대국 초나라가 송나라를 쳐들어와 큰 전쟁이 벌어진다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인 김정은에 대해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은 체제 안정을 위해 전략적 측면에서 엉뚱한 행동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남북관계가 소강상태로까지 확대, 기본적 신뢰가 무너지는 이유가 됐다. 지난 11월 5일자 일간신문에는 서유럽을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BBC 인터뷰가 나왔다. 기사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인터뷰는 출국 전인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이뤄졌으며 4일이하 현지시간방송됐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방정맞게도 단어하나가 툭 불거져 나온다. 신뢰(信賴) 프로세스.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투표에 의해서 뽑힌 대통령의 할 일은 하나다. 국민께 공약한 것만 지키면 되는 것이다. 다른 애기는 다 필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약을 못 지켰다고 해서 대통령을 내 몰수는 없다. 국민 투표의 힘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약을 실행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그것은 대통령이 임명한 각 부처의 참모와 장들이다. 대통령이 공약한 것을 잘 지키라고 국민들은 피보다 더 귀한 돈을 세금으로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애공(哀公) 14년 좌전(左傳)자로가 묻는다. 위나라 왕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는 답한다.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하겠다(必也正名乎). 그러자 자로는 묘한 답을 한다. 선생님도 참 어리석군요. (子路曰 有是哉.子之迂也 奚其正?)라고 하는데 자로는 스승께 망령된 표현을 쓸 수는 없고 해서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멀리 돌아간다는 의미의 「우迂」를 쓴다. 쉽게 말해서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립니까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스승 공자는 몹시 불쾌한 어투로 소리친다. 이런 못난 놈 자로야 !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어긋나고, 말이 이치에 어긋나면 일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 또 일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않으며,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刑罰)이 부당하게 된다. 그러니 형벌이 부당하게 되면 백성들은 손발조차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은 반드시 그에 맞는 말을 해야 하고, 반드시 한 말에 대해 실천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임금이 자기가 한 말로 인해 욕(苟)이 몸(己)에 이르지 않는다논어 자로편 13-3문장. 국민들이 박근혜 후보께 물었다.
밥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사는 것은 아마도 다수의 지극히 평범한 국민들이 원하는 바 일 것이다. 요(堯) 임금이 나라 안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도성 안 밖으로 시찰(視察)을 나갔다. 저자거리에는 팔순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랴.」라며 배 두드리고 땅을 치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의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것이 목격 되었다. 임금은 노래를 한 참이나 듣고 난 후 왈. 「백성이 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사는 것이 태평성대」라고 했다. 이 격양가는 중국 당요(唐堯) 시대의 일로 해 뜨면 일하고 일출이작日出而作 해 지면 쉬고 일입이식日入而息 우물 파서 물마시고 착정이가鑿井而歌 밭 갈아 밥 먹으니 경전이식耕田而食 임금의 은혜가 뭘 어쩌자고. 제력하유어아재帝力何有於我哉 『세종실록 권8』우암(尤庵) 송모(某) 時字烈字의 문인이며 송설체로 명필의 반열에 오른 소두산(蘇斗山)은 왈, 인생살이 백년이면 족하나니 긴 세월을 요 임금 때 격양가 부는 늙은이처럼 살리라. 百年身世生涯足 長作堯衢擊壤翁백년신세생애족 장작요구격양옹 나라를 다스리는 관료나 정치인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고복격양가는 아닐 찌라도 안일(安逸)과 은일(隱逸)한 삶을 보장해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반드시 징조가 있다. 그래서 사필은 귀정을 하는 것이고 인과는 응보를 한다. 일찍이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 안자(晏子)는 제나라 경공에게 나라를 위태함에 빠뜨리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한다. 첫째는 빼어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인재인 줄 알면서도 등용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등용을 했음에도 믿고 맡기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지도자의 오연(傲然)이다. 오연의 가장 큰 이유는 외민(畏民)이다. 다산 정약용은 『서경』의 위민(爲民)과 애민(愛民)정신을 외민(畏民)의 수준으로 끌어 올려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가장 간절히 희구했던 실학자다. 일찍이 포숙아의 죽마고우 관중은 외민을 주석하길 국민을 존중 하는 것(尊民)과 국민을 따르는(順民)것과 국민을 활용하는(用民)것 이라했다. 쉽게 말해서 정치란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의 뜻을 따르고,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이를 전고(典故)에서는 합려의 아들 부차가 월나라를 치기 훨씬 전인 그의 아버지 오왕 합려 때 일이다. 초나라와 오나라는 강대국이라 그 간극의 자리에 작은 나라 진(陳)은 항상 두 나라의 눈치를 봐가며 국가 생존 전략을 짠다. 어느 한 쪽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오동잎으로 동생을 제후에 봉하다.- 은(殷)나라를 쳐서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워 천자가 된 무왕(武王)은 천자가 된지 2년 만에 죽는다. 뒤를 이어 태자 송(誦)이 위에 오르니 그가 성왕(成王)이다. 성왕이 나이가 어리므로 무왕의 동생이자 어린 성왕의 숙부인 주공(周公) 단(旦)이 7년여에 걸쳐 섭정(攝政)으로 나라를 다스리다가 조카인 성왕이 말 귀를 알아들을 쯤에 이르자 천자의 권한을 어린 조카에게 되돌려주고는 그 자신은 신하의 자리로 돌아오니 조카인 어린 성왕은 숙부인 주공에게 곡부(曲阜)를 식읍(食邑)으로 내린다. 이와 똑같은 사건이 요즘 관상이란 영화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수양대군과 단종과의 관계다. 훗날 수양 숙부는 주공 단과는 달리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천자의 자리에 오른 어린 조카는 동생인 당숙(唐叔) 우(虞)와 오동나무 아래서 함께 놀다가 오동잎이 떨어지자 그 잎을 주워 장난삼아 이렇게 말을 한다. 짐(朕)은 너를 진후(晋侯)에 봉한다. 이 오동잎은 너를 진후(晋侯)에 봉(封)하는 규(圭)니라. 옆에서 이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게 된 숙부 주공은 정색을 하면서 아뢴다. 천자께서는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공자의 마부 번지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뼛속까지 저쪽주의자다. 그런 그가 선생님 저는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많이 갖고 싶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가르침을 청한다. 이일 후 공자 일행은 주나라 사당을 들르게 된다. 孔子께서 주나라 사당을 둘러보다가 묘한 그릇(敧器)을 보시고 묻자 사당지기 왈, 이 그릇을 일러 다들 우좌(右坐)라 합니다. 공자 왈, 듣기로는 기기우좌는 가득차면 기울어지고 적당히 차야만 바르게 된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사당지기는 그렇다고 대답하자 공자는 자로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여 시험을 해보니 과연 사당지기의 말대로 가득차면 엎어져 물이 모두 쏟아지고 적당히 차면 바르게 서며 비우면 기울어졌다. 이를 지켜본 공자는 감탄 하며 말한다. 번지가 언젠가 내게 묻기를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많이 갖고 싶다고 했다. 잘 보거라. 가득 찼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기(敧器)처럼 가득 차는 것이 싫어서 기울어지는 것도 있느니라. 그러자 자로가 가득 찬 것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공자는 우좌기기처럼 덜어내면 된다. 하니 자로가 또 묻는다. 덜어내려면 어찌해야합니까. 공자는 덜어냄에 대한 오사(五思)를 말한다
일찍이 항우는 일곱 겹의 갑옷을 껴입고 삼백 근의 철퇴를 휘두르며 전쟁에 임 할 때는 언제나 장외투쟁 전술을 쓴다. 그 배후에는 아버지에 버금가는 존재란 뜻을 가진 아보라 불리는 명 참모 범증(기원전 278-204)이 있었다. 범증이 있는 한 항우는 모든 면에서 유방보다 몇수 위다. 항우가 40만 병사로 천하를 호령할 때 유방은 고작 10만 병사였다. 이때 범증은 유방을 쳐야한다고 하지만 거절됐다. 또 한 번은 100명의 기병만 이끌고 홍문연에서 유방을 제거하자고 했지만 항우는 우물쭈물 하다가 기회를 놓친다. 범증은 항우의 종제 항장(項莊)에게 검무를 추다가 유방을 죽이라 명하지만 항백의 방해로 실패한다. 이에 유방은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목숨을 건진다. 범증은 유방이 준 옥두(玉斗)를 땅바닥에 패대기치면서 통탄한다. 아. 어린놈과는 큰일을 도모할 수가 없구나. 항왕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반드시 패공이다. 우리는 패공의 포로가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유방은 진평의 계책을 받아들여 반간계(反間計)로 항우와 범증을 갈라놓고 항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뜨린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천하를 덮는 인물 항우는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 할 것인가?란 절명
도오(道吾)가 묻는다. 앎이 많은 자와 앎이없는 자 중에 누가 더 훌륭합니까? 공자는 답한다. 앎이 없는 자는 죽은 사람에 속한다. 비록 죽지 않았다 해도 남에게 누(累)가 되는 일을 심히 많이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많이 아는 것은 좋은 것이며 그런 자는 마음 씀씀이도 넓다. 앎이 많은 자가 남을 이롭게 하는 일에 나서면 훌륭하지만. 남을 해롭게 하는 일에 나선다면 훌륭하지 않다. 월석보는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스스로 어진 줄 알고, 우둔한 자일수록 스스로는 많은 것을 아는 줄 안다. 유향(劉向)의 설원하(說苑下)에 나오는 말이다. 지난 6월 27일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세칭 전두환 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간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통용되는 법을 시간을 너머서 적용시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모순과 충족 이유이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이성적 인식은 기본적으로 그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두 가지 이성의 근본 원리를 전제한다. 그것은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에게 받은 6억원을 아직 환원시키지 않는 모순율(矛盾律)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쳐야만 하는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미납 추징 노력을 안
중국 15억 인구 중 전고(古文)의 대가를 꼽으라면 곽말약을 비껴갈 수 없다. 그가 일찍이 재미있는 잡서 한 권을 강호에 내 놓았는데 풀어쓴다면 맹자 이혼에 관한 보고서의 전말 쯤 된다. 아성(亞聖) 맹자는 아내와 이혼을 하는데 이혼 사유가 아내의 외모가 경국지색이라는 기막힌 이유에서다. 아내의 외모가 너무 미색인지라 남편인 맹자는 학문에 정진하는데 지장이 있다하여 아내를 내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맹자는 미색의 아내까지 내쳐가면서 학문에 정진한 결과 당대는 물론 후대와 만고에 이르러 공자와 더불어 인류 스승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선다. 그 맹자가 제자에게 말한다. 너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바로 좋은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헛 똑똑이(賢者)는 보이는 것만 믿고, 뭐 좀 배워 안다는 자(識者)는 믿는 것만 보고, 어리석은 자(愚人)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만들어보고, 일반인(凡人)은 남들이 본 것만 떼로 몰려다니며 찾아가서 믿는다. 이는 모두가 근본을 잃은 탓이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맹자 이루하장 상에서 말한다.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天下之本在國),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고(國之本在家),가정(家庭)의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께 나라 다스리는 법을 묻자 공자 왈,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무엇이 임금다움이며, 무엇이 신하다움인가를 말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선시대 선비노애(蘆厓)유도원(柳道源1721~1791:조선후기)는「다움」에 대한 실천 사항을 경계의 글인 잠(箴)으로 해석을 한다. 하지 말아야 할 네 개의 사막잠(四莫箴)과 마땅히 해야 하는 사당잠(四當箴)이 그것이다. 動必招尤 莫如勿動(동필초우 막여물동) - 행하면 허물되니 행하지 않는 게 낫고. 言必致吝 莫如勿言(언필치린 막여물언) - 말하면 후회되니 말하지 않는 게 낫고. 做必無成 莫如勿做(주필무성 막여물주) - 하면 되는 게 없으니 안 하는 게 낫고. 求則自屈 莫如勿求(구즉자굴 막여물구) - 구하면 비굴해지니 안 구하는 게 낫다. 當動而動 動亦無尤(당동이동 동역무우)- 행 할 때 행하면 허물이 없고. 當言而言 言亦無吝(당언이언 언역무린)- 말 할 때 말하면 후회가 없고. 當做而做 做亦有成(당주이주 주역유성)- 일 할 때 일 하면 이루어지고. 求有
어린 시절 고아가 된 소년이 있었다. 삶에 부쳐 목숨을 끊으려하자 고부 왈, 남자의 인생에는 이불솜을 적시며 들을 만한 눈물겨운 인생사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훗날 독일의 문호 괴테에 의해 재해석되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로 유명해진다. 고부는 말한다. 남자는 자신의 키만큼 책을 쓰고 죽어야 한다. 고아가 된 소년은 축목(祝穆)이고 고부(姑夫)는 남송의 거유 주자(朱子)이다. 축목은 고부 주희에게 학문을 배워 일생에 자신의 키만큼 책을 썼는데 236권의 경사자집(經史子集)의 거질인『사문류취(事文類聚)』와 방기로 두 권의 책을 더 찬(纂)했는데『방여승람(方輿勝覽)』과 『당서(唐書)』문예전(文藝傳)에 마철저이성침(磨鐵杵而成針)이 있다. 당(唐)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젊은 시절 도교(道敎)에 심취해 파락아(擺落兒)로 산다. 이백은 불량배(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려 사천성(泗川省) 각지의 산을 떠돌던 중 상의산(象宜山)에서 공부 한다. 불량배들과 놀던 가락이 있다 보니 공부에 습(習)이 안 되어 10년을 못 채우고 하산 한다. 하산도중 계곡 바위에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쇠공을 갈고 있는 노파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