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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 서주태 원장의 번식이야기

내시는 왜 오래 살았을까

서주태 서주태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연세대 의대 졸업·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전 제일병원 병원장)

 

용인신문 | 역사책을 펼치다 보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이 있다. 권력 다툼에 휘말려 궁궐 한복판을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내시들이 오히려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대가가 오히려 수명 연장의 혜택으로 돌아온 셈일까.

 

조선왕조실록에는 내시들의 평균 수명이 일반 남성보다 길었다는 기록이 곳곳에 등장한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조선 후기 내시의 평균 수명은 당시 보통 남성보다 14년 이상 길었다. 역병과 기근, 전쟁으로 삶이 짧게 꺾이던 시대에 일반 남성의 평균 수명은 40세 전후였지만, 내시들은 50세, 60세까지 장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내시는 어떻게 이런 ‘예외’가 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열쇠는 호르몬이다. 내시는 고환이 없으므로 남성호르몬, 즉 테스토스테론이 거의 분비되지 않는다. 테스토스테론은 근육을 붙이고 뼈를 단단하게 하는 데 필요하지만, 동시에 혈관을 딱딱하게 만들고 전립선암의 연료가 되기도 한다. 의학자들은 “남성들이 여성보다 심근경색, 뇌졸중, 전립선질환에 더 잘 걸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테스토스테론”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내시는 이런 위험에서 비켜가며 의도치 않게 장수 요인을 얻은 셈이다.

 

두 번째는 성생활과 관련된 위험을 피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는 항생제 한 알로 치료되는 성병도 당시에는 치명적이었다. 출산으로 인한 여성들의 위험은 말할 것도 없다. 성생활 자체가 감염과 합병증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시대에 내시는 오히려 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노화 속도와 관련된 생식 호르몬의 감소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성호르몬이 줄면 세포의 노화 과정이 늦춰질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동물실험에서도 거세된 개체가 더 오래 사는 경우가 관찰됐고, 인간에게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된다.

 

물론 이러한 신체적 요인에 더해 궁궐이라는 특수한 생활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치열한 권력 다툼의 스트레스는 있었겠지만, 일반 백성처럼 기근이나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릴 위험은 적었다. 오히려 안정적인 의식주를 보장받고, 어의(御醫)를 통해 당대 최고의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점은 분명한 이점이었다.

 

덧붙여 생각해 볼 점도 있다. 남성의 발기부전은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발기는 음경 해면체에 혈액이 빠르게 유입되고, 정맥의 배출이 차단되어 유지되는 복잡한 혈관 반응이다. 그런데 음경 혈관은 심장이나 뇌혈관보다 훨씬 가늘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위험 요인이 있을 때 이 작은 혈관이 먼저 막히거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결국 발기부전은 노화가 아니라, 심혈관질환의 조용한 경고 메시지일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