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현의 과학태교
보릿고개, 어떻게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을까?

  • 등록 2025.11.10 10: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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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밥상 가난했지만 순수
제철 채소·멸치·간단한 된장국
오늘날 값비싼 ‘슈퍼푸드’ 먹어

 

용인신문 | 임신을 하게 되면 아기를 잘 키우기 위해 온갖 고민을 하며 영양제까지 동원이 된다. 비타민 D, 엽산, 오메가-3까지 꼼꼼히 챙겨도 여전히 불안하다. 불현 듯 의문이 생긴다. 보릿고개 세대 임신부들은 못 먹었을텐데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었을까?

 

사실 그때는 몰랐지만, 몰라도 괜찮았다. 환경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 시절 밥상은 가난했지만 순수했다. 흙냄새 나는 제철 채소, 손으로 다듬은 멸치, 간단한 된장국 한 그릇이 전부였지만 그 안에는 필수 지방산, 단백질, 미네랄이 자연스럽게 들어 있었다. 오늘날엔 ‘슈퍼푸드’라며 값비싼 포장에 담겨 팔리는 것들이, 그땐 그냥 반찬이었다.

 

영양제는 없었지만 방해물도 없었다. 미세먼지도, 환경호르몬도, 밤새 스마트폰 불빛에 시달릴 일도 없었다. 산책은 운동이 아니라 생활이었고, 햇빛은 비타민 D 보충제가 아니라 공기였다. 몸이 리듬을 타고 움직이던 시대, 태아도 자연의 리듬 속에서 자라났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의료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보릿고개 시절에 태아의 생존률은 턱없이 낮았다. 지금처럼 초음파로 매주 성장 속도를 확인할 수도 없었고, 유산이나 조산의 원인을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건강하게 버틴 아이들만 세상에 나왔다. 말하자면 ‘인체의 선택한 생존’만이 태어났다. “옛날에는 다 잘 태어났다”가 아니라 “태어날 수 있는 아이만 태어났다"가 맞을 것이다.

 

시대는 달라졌다. 지금의 엄마들은 풍요 속의 결핍을 겪는다. 먹을 건 넘치지만 진짜 영양은 줄었다. 흰빵, 설탕, 인스턴트식품, 포화지방. 칼로리는 넘치는데 뇌가 쓸 에너지는 부족하다. 태아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연료는 포도당이지만,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잡곡밥이나 고구마처럼 천천히 흡수되는 복합당질은 뇌에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설탕과 흰빵은 인슐린을 폭주시켜 염증을 만든다. 그래서 ‘당’은 무조건 줄일 게 아니라, ‘좋은 당’을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제 태교의 중심에는 세 가지 영양 축이 있다. 오메가-3, 단백질, 그리고 당질이다. DHA로 대표되는 오메가-3 지방산은 태아의 뇌세포막을 만드는 핵심 재료다. 특히 임신 후기에는 뇌 용량이 급격히 커지기 때문에 오메가-3 요구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현대 식단은 오메가-6(식물성기름, 튀김류)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오메가-6이 많아지면 염증 반응이 생기고 태반 혈류도 나빠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단백질은 뇌의 건축 자재다. 신경세포, 근육, 장기, 호르몬의 재료이며, 부족하면 성장 지연과 인지 발달 저하로 이어진다. 단백질이 충분해야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도 제대로 합성된다. 달걀, 두부, 생선, 콩류를 다양하게 섭취하되, 지방이 많은 고기보다는 살코기를 선택하는 게 좋다. 특히 아침 단백질은 하루 혈당을 안정시켜 태아의 뇌가 일정한 에너지를 공급받게 한다.

 

종합하면, 오메가-3는 세포막을 만들고, 단백질은 내부 구조를 세우며, 당질은 에너지를 흘려보낸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태아의 뇌 회로는 균형 있게 성장한다. 엽산은 신경관 결손을 예방하고, 철분은 산소를 운반하며, 요오드는 갑상선 호르몬 합성에 필수다. 아연은 시냅스 형성을 돕고, 콜린은 기억력 회로의 핵심 물질이다.
태교는 아기의 세포를 설계하는 일이다. 넘쳐나도록 많은 정보의 시대. 알면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면 통제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세상을 무사히 잘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은 어제도 오늘도 변하지 않는 태교의 시작이자 끝이다.

박숙현 기자 yongin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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