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달 아래ㅣ이정훈

  • 등록 2020.07.10 09: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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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달 아래

                              이정훈

 

돌이 튄다

끝없이 두런거리는 강가

돌무지 틈 쏘가리와 뱀장어를 다시 찌르고

놓쳤던 고기들을 또 놓친다

수면을 달려간 빗방울 돌 밑에 엎드린 둥근 입술

모두 흘러가는 하늘의 강

불을 피우렴, 우리 오래된 유목(流木)

천 년 전에도 작살을 메고

빛나는 물고기를 쫒아갔을까

무성한 이파리들을 헤치고

날아간 살별들이 어두워졌을까

물이끼 자욱한 달에 귀를 띄우고

나는 세상의 얼룩 한점

언제나 궁금한 물살로 죽어갔으면

강물이 더듬더듬 산을 돌아가는 새벽

별들을 몰아 강 건너는 달 아래

눈 털고 잤다

 

이정훈은 1967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의 첫 시집인 이번 시집은 토착 언어로 구체적인 사물과 일상의 사건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화물 트레일러를 모는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빵꾸를 때운다」에서 그의 직업을 엿볼 수 있다. 시인과 트레일러 운전기사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지만 그의 생업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고향 평창 주변의 강에서 유년시절부터 해왔던 작살로 쏘가리를 잡는 이야기를 여러 시편에서 보인다. 쏘가리는 그의 시편이기도 하고 그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돌무지 틈의 쏘가리를 향해서 작살을 던지면 돌이 튀고 쏘가리는 달아난다.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돌 밑에 엎드린 쏘가리의 둥근 입술이 겹쳐지는 순간 구름이 강물에 흘러간다. 강물은 차고 불을 피워 몸을 녹이노라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흘러가는 나무토막처럼 막막해진다.

밤이 되어서도 작살질은 계속된다. 살별 사라진 하늘은 다시 어두워지고 달빛에 귀를 기울이면 시인은 세상에 남는 얼룩 한점이어서 언제나 궁금한 물살에 쓸려가는 것이리라. 강물이 산을 돌아나가는 새벽, ‘별들을 몰아 강 건너는 달 아래’ 눈 털고 잠드는 시절이었다. 창비 간 『쏘가리, 호랑이』 중에서. 김윤배/시인

김윤배 기자 poet01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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