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숨*ㅣ정끝별

  • 등록 2019.08.23 09: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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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숨*

             정끝별

 

허공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처럼

종일 제 거미줄에 걸려 있는 거미처럼

 

모른 듯 모든 걸 걸고

 

내민 엄마 손을 잡는 아가손처럼

엄마 손을 놓고 달려가는 아가손처럼

 

모른 듯 모든 걸 놓고

 

벼락에 몸을 내준 밤나무가 바람에 삭아내리듯

절로 터진 밤송이가 제 난 뿌리로 낙하하듯

 

남은 숨을 군불 삼아 피워올리겠습니다

매일 아침 첫 숨을 앗 숨으로!

 

* 앗숨(Ad Sum) : ‘,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뜻의 라틴어

 

정끝별 시인은 독특한 상상력과 언어의 파괴적 운용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러나 앗숨은 그의 이와 같은 시세계에서 비껴있다. 시적 화자가 있는 곳은 허공에 쳐 있는 거미줄이다. 거미는 그러므로 화자의 은유다. 종일 거미줄을 치고나서 그 거미줄에 걸려 있는 거미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것을 허공에 다 걸고 있는 화자의 모습으로 읽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엄마의 손을 잡은 아가손처럼, 엄마의 잡은 손을 놓고 달려나가는 아가손처럼 모든 걸 놓는다. 모든 걸 거는 행위와 모든 걸 놓는 행위 사이의 간극에 인간이 있다. 인간의 온갖 욕망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시의 비의는모른 듯이라는 표현이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처럼이라는 의미로 읽히는모른 듯모든 걸 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라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걸 놓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놓는 것은 남은 숨을 군불로 삼아 삶을 다시 피워올리기 위한 용기 있는 행위임을 깨닫게 한다. 매일 아침 첫 숨을 앗숨으로,‘나 여기 있다고 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삶을 용기 있게, 희망차게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시편이다. 시집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에서. 김윤배/시인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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