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8
버찌
이정원
파편이 거리에 넘치던 밤 있었다 파편에 찔린 가로등 야위던 밤 있었다 가슴을 다쳐 압박붕대를 감고 앓던 밤
멍들이 자랐다 누르면 고집의 멍울들 울울해 지는 꽃 보면서도 눈치 못 챘다 꽃 진 자리에 산탄이 맺힌다는 걸
떫고 시큼한 주기율표의 원소들처럼 나란히 나란히, 서로 같은 듯 다른 표정으로 나란히 나란히, 산탄은 언제 터질지 몰라
멍이 익어갔다 속으로부터의 반란이었다 달거리의 시간 달이 차오를 때 꽃피는 혓바늘처럼
한 시절이 불쑥불쑥 터지고 있었다 멍들이 으깨지며, 앓고 난 발바닥을 깨물며 낙관을 찍고 있었다 검은 피의 날이 보도블럭으로부터 올라올 때
숨겼던 산탄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때론 가슴에서 꺼내기도 했다 검은 피의 목록들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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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의 열매, 버찌. 시인은 오늘의 시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파편과 압박붕대의 나날. 멍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도처에 자리한 산탄들이 그려집니다. 사회라는 공동체는 구성원의 연대감을 필요로 합니다. “서로 같은 듯 다른 표정으로 나란히 나란히” 선 구성원들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건, 잊어버린 건 ‘속으로부터의 반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한 시절은 “불쑥불쑥 터지고”, 터질 것입니다. 꽃들이 아무도 모르게 허공에 피어나는 것처럼. 버찌와 같은 멍들이 익어가고, 그 “멍들이 으깨지며” 보도에 낙관을 찍습니다. 시인은 이를 ‘검은 피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검은 피의 날’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숨겼던 산탄을 주머니에서 꺼”내야할 때는 언제나 ‘지금’이겠지요. 우리의 참조점이 되어줄 체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말했지요. 버찌처럼 붉게 익은 마음으로!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