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꽃

  • 등록 2009.07.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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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풍경사이/| 감동이 있는 시 감상9

홍신선

읍내 시장 갱로(坑路)같은 깊은 골목에
좌판들과 점방들 지천으로 몰려 있다
만두집과 생선 가게, 스티로폼 상자 속에 은화식물 꽃술처럼 박힌
먹갈치꽃, 대발 위 한 무더기씩 쑥개떡과 절편들 벌려놓은 떡집들
왁자지껄 시도 때도 없이
가장 낮은 이 진창 바닥에도 무슨 내용 없는 꽃이라고 목숨 꽃들 핀다
제각각 빛깔과 향기를 속 깊이서 끌어올려 혼신으로 핀다
사람이 혼몽하듯 취하는 것은
늦은 귀갓길 청옥을 투명하게 깎아든 새잎들 속의 만개한 산벚꽃들에게서만이 아니다

바람에도 뼈가 들었는지
장날 허공은 우두둑우두둑 무너져 내리는데
사람이 혼몽하듯 취하는 것은 목숨 꽃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세상에 목숨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홍신선 시인은 지금 시골의 갱로처럼 혹은 미로처럼 펼쳐진 시장 골목에 서 있다.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붐비고 장삿꾼들의 억척스런 호객소리들이 삶의 교향악처럼 펼쳐진다.
그곳에 목숨 꽃이 만개한 것이다. 생의 절절한 터전인 시장 골목에 놓여진 모든 것들이 목숨 꽃인 것이다. 갈치는 갈치대로, 절편은 절편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가장 낮은 진창 바닥에 핀 목숨 꽃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목숨 꽃에 취해서 봄날 하루를 바람의 뼈 무너지는 소리 속에 보내는 것이다.
(김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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