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이은규 | 시인
“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누리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민주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나는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 인권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前) 남아공 대통령
한 이상주의자의 자살. 그는 이상실현을 위해 기꺼이 죽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유보될 것이다.
감히 고백한다. 누군가의 기원과 그 기원이 돌아갈 곳에 대해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러니까 하나의 세계가 발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에 대해 말하는 방법은 죽을 때까지 기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삶은 정치적 과정을 살아내면서 온몸으로 진전했던 사고의 흔적일 것이다. 왜 엄청난 시련과 무수히 지새운 새벽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생을 바쳤을까. 그리고 그 대가는? 수억 시계 운운.
그는 새벽별을 바라볼 때마다 만약 미리 주어진 테제가 장악해 버린 정치를 할 바에야, 잠언이면 충분할 거라고 지친 마음을 다독였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잠언화 된 목표가 아니라, 결정적 판단의 술어와 사고의 전개, 궁극적으로 실천을 향한 발자국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던 사람.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아니 쓸쓸할 사람.
추모하는 이를 차마 부를 수 없는, 부르지 못한 추모사를 여기 놓는다. 바람에게 맡긴다. 다만 소월의 <개여울>에 나오는 시구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을 낭독하며 오직 끝까지 기억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 마음을 믿을 것이다. 두 손 모음.
용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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