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 한 편-8| 연애질 | 이덕규

  • 등록 2010.08.02 11: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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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질

 이덕규

북조선에선 남녀가 사귀는 걸 두고 연애질이라고 한다는데, 연애질!
그 질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게 보여
삽질 가래질 쟁기질 써래질 호미질 낫질로 일구어낸 만 평 푸른 보리밭 물결이 보이고
휘영청 달빛 젖은 이랑 사이로 밤새 축축하게 걸어놓은 물방아 소리 들려오는데
누가 거기 대고 손가락질을 하겠어
뭔가 질퍽대고 싶은 게 사랑인데
흘끔흘끔 곁눈질만 하다가 깔짝깔짝 입질만 하다가 돌아서는 당신
어디 이걸 낚시질이라 할 수 있겠어
핏대 세우고 삿대질만 해대는 당신들 쌈질은 발길질 주먹질로 걸어야지
연장 있으면 뭐해 연장질을 해야지
애정 전선에 균열이 생기면 즉시 구멍 난 냄비나 솥단지 때우듯
물 샐 틈 없이 온몸으로 땜질을 해야지
열흘 굶고도 도적질할까 말까 망설이는 당신 말이야
그 우라질 마음만 있으면 뭐하냐구, 몸이 떠나는데 그걸 뭣에다 쓰냐구 젠장!


삽질, 낫질, 낚시질, 손가락질, 연장질, 땜질……. 접미사 ‘~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 그 자체이다. 여러 가지 ‘~질’ 중에서 ‘연애질’만큼 흥미롭고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마음은 이미 보리밭에 가 있는데, 결국 ‘입질’만 하다가 돌아서야 하는 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조금은 슬프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랫말처럼, 뛰어난 해학에는 당연히 울림이 부록으로 따라오기 마련. 남양주 사는 이시백이 명랑 해학소설로 농촌의 실상을 풍자하고 있다면, 시단에서는 근동 화성에 사는 이덕규의 걸쭉한 입담이 단연 돋보인다. 농사도 짓고 식당도 벌여 놓았지만 시만큼 이덕규다운 것도 없다. 우리는 가래질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옆집 논두렁까지 살폈던 민족. 삽질이라고 다 같은 삽질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여유와 해학을 잊고 속도전에만 매달리게 되었는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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