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 47 | 배 교 | 조연호
색약인 너는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
만약 불타는 숲 앞이었다면 여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겠지
소년병은 투구를 쓰고 있었고 그건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하고
저편이 이편처럼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이다
조연호 시인의 시편들은 쉬이 읽히지 않는다. 그의 시세계는 경험의 세계가 아니라 그에 의해 창조된 세계의 상상력이 진화해가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그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시세계로 진입하는 일은 무망하다. 그가 자신의 시세계를 ‘우주가 음사된 우리의 세계’(아르카디아의 광견)라고 말하고 있지만 소리로 혹은 음악으로 우주를 그렸다고, 그의 정서나 혹은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어서 더욱 독해가 곤혹스럽다. 들뢰즈와 카타리가 말한 리좀적인 시상의 전개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진화가 눈부시다.
「배교」는 색약인 ‘너’가 보는 적색과 녹색의 세상이 있다. 적색과 녹색이 뒤바꿔
보이는 세상은 그가 보는 세상만은 아니다. 독자 모두는 자신의 이념의 색깔로 세상보기를 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기대지평이 다르고 해석이 다른 것이다. 적녹색약의 치명적인 세상보기는 여름의 초록과 불타는 숲을 뒤바꾼다는 것이다. 소년병은 피아의 구분에 서툴다. 어디서부터 진리인지를 알 수 없다. 소년병의 내면에는 불타는 숲과 여름의 초록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 것이다.
시적화자인 ‘나’는 이 모든 정황을 이성적으로 읽고 있다. 색약이 될 수도, 소년병이 될 수도 없는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으로, 온갖 욕망의 포로이어서 배교자 인 것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