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의 시편들은 유쾌하다. 그러나 유쾌함 뒤에 오는 불안과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편에는 희망으로 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김민정 시인의 시편에서 절제와 조화로움을 찾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녀의 시편들은 기쁨이나 사랑, 혹은 고귀함이나 순결함 등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그녀의 시편 속에는 김민정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는 해도 김민정은 사방으로 열려 있는 개방된 자아이다. 따라서 김민정 시인의 이미지들은 기괴하지만 유쾌하다.
「陰毛라는 이름의 陰謀」는 이와 같은 김민정 시인의 시편들이 달려가는 궤적 위에 놓인다. 자궁검사를 위해 난생 처음 산부인과를 찾던 날, 음모의 제모 권유의 음모를 겪고 나서, 난생 처음으로 죽은 자를 위해 조문을 가던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오줌 누며 읽던 광고 문구에서 만난 무모증 치료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음모를 만난다. 마르크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불평등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김윤배/시인)
陰毛라는 이름의 陰謀
김 민 정
머리털 나 처음으로 돈 내고 다리 벌린 날, 소중한 당신산부인과에는 다행히 여의사만 둘이었다 어디 한번 볼까요? 자궁경부암 진단용 초음파 화면 가득 잘 익은 토마토의 속살이 비릿한 붉음으로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깨끗하네요, 그런데 자궁 모양이 좀 특이해요. 뽀족하다고나 할까 거웃 나 처음으로 내 아기집을 구경한 날, 어쩌다 뽀족한 자궁이 된 나는 콘 헤드의 아이 하나 고깔 쓴 제 머리꼭지로 내 배를 콕콕 찌르는 상상만으로도 아 따가워 애라면 애초에 버르장머리를 싹둑 잘라버릴 참이었는데 제모 어떠세요? 내 아랫도리를 헤집다 말고 얼굴을 쳐든 여의사가 코끝까지 밀려 내려온 안경테를 추켜올리며 묻는 것이었다 레이저 기계 새로 들여 행사 중이예요. 겨드랑이 털과 패키지로 하세요. 휴가철인데 비키니라인 신경 쓰셔야지요 머리털 나 처음으로 거창까지 상가에 조문 가는 날, 안성휴게소 화장실에 쪼그려 오줌 누는데 문짝에 덕지덕지 이 많은 스티커는 누가 다 붙여놓은 것일까 여성 희소식, 당신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여성 무모증 빈모증 수술하지 않고 완전 해결! 02-969-6688 마르크스도 이런 불평등은 미처 예상치 못했을 거다.